‘별개의 국가로 보겠다’는 입장 공식화 분석

지난해 8월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토론하는 김여정. (출처: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토론하는 김여정.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연이틀 담화에서 미국 공군의 정찰비행을 문제 삼으면서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과정에 관심이 쏠렸던 건 김 부부장이 남쪽을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언급한 대목인데, 이제는 남한을 특수관계가 아닌 ‘별개의 국가관계’로 보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북, 남북 특수관계서 국가관계로 전환하나

김 부부장은 10∼11일 이틀에 걸쳐 발표한 두 건의 담화에서 미 공군의 정찰 활동을 정당성을 주장한 남측을 향해 비난하며 ‘대한민국’을 거론했다. 더욱이 북한은 대한민국이라는 단어에 ‘겹괄호’를 사용하면서 강조한 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분명히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 주목을 받는다.

북한은 그간 남측을 같은 민족 통일의 대상인 특수관계로 보는 관점을 반영해 보통 ‘남조선’이나 비난할 경우 ‘남조선 괴뢰’ 등으로 지칭해왔다. 우리 헌법재판소나 남북관계기본발전법이 북한을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잠정적인 특수관계 대상‘으로 규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김 부부장이 오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발표한 담화에서 직접 대한민국 표현을 쓰면서 이제 남측을 별개의 국가로 보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간 강대강 기조와 맞물린 한반도 정세 악화와 함께 대남·대미 협상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북한의 정책이 협력을 통한 관계 변화의 모색에서 적대적 공존에 무게를 둔 두 개의 한국(Two-Korea) 정책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8차 당대회에서는 비서국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던 대남담당 비서 직책이 사라졌고, 남북대화를 비롯해 중요한 남북관계 현장의 핵심이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도 2021년 제8차 당 대회 이후 모습을 감췄다.

지난 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의 방북 계획에 대해 북한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을 때도 조평통 등 대남기구가 아닌 국가 간 관계를 관장하는 외무성을 발표 주체로 내세워 같은 관측이 나온 바 있다.

◆통일부, 대남 비난 담화 속 ‘대한민국’ 언급 처음

물론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공식 전환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북한이 이틀에 걸친 담화에서 남측을 ‘대한민국’이라고 명시한 건 상당히 이례적인 건 맞다는 평가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등 회담 관련 사항, 남북 합의문, 국내외 언론이나 제3자 발언 인용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공식 문건과 관영 매체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통일부 당국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쪽이 공식 성명·담화 등 입장 발표 때 우리를 대한민국이라 지칭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고, 이날 정례브리핑에서도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번 김여정의 두 차례 담화와 같이 대남 비난 메시지 차원에서 대한민국을 언급한 것은 최초”라며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일단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구 대변인은 북한의 의도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은 채 “최근 북한 외무성이 현대아산의 방북 계획에 거부를 표명했고 김여정이 대한한국을 지칭한 일련의 움직임에 정부는 북한의 의도와 향후 태도에 대해 예단하지 않고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관계가 경색국면을 넘어 ‘단절’의 시대가 접어드는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도발’에 맞선 ‘비례 대응’이라는 강대강 기조 속 남북 연락통신선이 모두 끊겼고 극우 성향의 통일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북대서양조약구)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강력한 힘과 억제력을 통한 평화가 가장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평화”라거나 ”대북제재가 북핵 고도화 막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며 북한과 또다시 대척점에 서는 등 올해도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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