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찰기 10일 8차례 무단침범”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 지칭해 눈길

군, 성동격서식 北도발 가능성 예의주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출처: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1일 미국 공군 전략정찰기가 동해 배타적경제수역(EEZ) 상공을 침범했다며 이를 반복하면 군사적 대응 행동에 나서겠다고 재차 위협했다.

전날 국방성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 이어 같은날 오후 9시께 김 부부장이 직접 담화를 내더니 9시간 만에 또 낸 것인데, 미군의 통상적인 공해 상공 정찰비행을 문제 삼은 것이라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무단침범 시 미군 위태로운 비행 경험”

김 부부장은 이날 새벽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 공군 전략 정찰기가 북한 경제수역 상공을 무단 침범했다면서 “나는 위임에 따라 우리 군의 대응 행동을 이미 예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난 10일 미 공군 전략정찰기는 5시 15분부터 13시 10분까지 강원도 통천 동쪽 435㎞∼경상북도 울진 동남쪽 276㎞ 해상 상공에서 조선 동해 우리 측 경제수역 상공을 8차에 걸쳐 무단침범하면서 공중 정탐 행위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전날과 달리 위치와 횟수까지 상세하게 언급한 건 무턱 댄 위협이 아니라 나름의 근거가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반복되는 무단침범 시에는 미군이 매우 위태로운 비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특히 “대한민국 군부는 또다시 미군의 도발적 행동과 관련하여 중뿔나게 앞장에 나서 ‘한미의 정상적인 비행 활동’이라는 뻔뻔스러운 주장을 펴며 우리 주권에 대한 침해 사실을 부인해 나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당 공역과 관련한 문제는 북한과 미군 사이의 문제이니 대한민국의 군부깡패들은 당장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남측을 향해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으로 지칭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는데, 남북 간 강대강 기조와 맞물린 한반도 정세 악화로 이제 남측을 ‘별개의 국가’로 보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북한은 전날 새벽 국방성 대변인 담화에서 최근 미군 정찰기 RC-135, U-2S와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RQ-4B)가 동해 영공을 침범해 공중 정탐행위를 했다면서 “미 공군 전략정찰기가 조선 동해상에 격추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허위 사실 주장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반박했고, 그러자 김 부부장이 전날 밤 담화에서 미군의 정찰 활동을 비난하면서 “또다시 우리 측 경제수역을 침범할 시에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행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거듭 위협했다.

◆이틀 걸쳐 세 건 비난 담화 발표한 배경은

북한이 미군의 정찰 활동을 트집 잡아 이틀 사이 세 건이나 비난 담화를 발표하면서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인 셈이다. 다만 국제법상 영해가 아닌 EEZ는 통상 무해통항권이 인정되는 공해이기 때문에 주권 침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인데 북한 측이 이런 억지 주장을 하는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일각에서 북한이 EEZ를 방공식별구역(ADIZ)처럼 운용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다만 합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경제수역엔 추가적인 사항이 더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EEZ는 국제적인 용어이며 ADIZ는 군이 정하는 구역이라 큰 연관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군 안팎에선 이달말 북한이 크게 기념하는 정전협정일(전승절)을 앞두고 있는 데다 내달 한미연합훈련을 의식하는 등 한반도 긴장을 조성해 내부 결속을 꾀하고 도발 명분을 쌓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라는 관측을 제기한다.

합참도 북한이 거듭 이 문제를 제기한 것과 관련해 “그걸 빌미로 삼아서 무엇인가를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내부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라며 “도발 명분을 축적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5월말 위성을 탑재해 쏴 올린 우주발사체가 서해에 추락하면서 체면을 구긴 북한이 미군 정찰기 카드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것이라는 분석과도 같은 맥락이다. 미군 정찰활동 트집 잡기는 우주발사체 실패로 북한 내 가라앉은 상황을 한반도 긴장을 끌어올리면서 분위기를 역전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군 당국은 ‘미국 정찰기가 EEZ 상공을 침범했다’는 북한의 거듭된 주장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 뒤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실제 군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이 같은 행태는 도발을 위한 명분 축적용일 수 있다”면서 “나아가 북한의 특징상 동해로 시선을 돌린 다음 성동격서 식으로 전혀 다른 곳에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군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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