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용병 아프리카 떠나는 중”
차악 아닌 최악 맞이한 지역
시리아선 IS 유전 공격 우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희대의 용병 반란 사태 여파로 수만명 규모의 바그너 그룹이 그동안 위세를 떨쳐왔던 세계 각지에서 철수할 거라는 전망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 틈을 타 러시아 용병들에 밀렸던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 등 급진주의 세력과 현지 반군이 빈자리를 노리면서 지역 안보가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유럽 보안 당국은 바그너 그룹이 그간 영향력을 행사해 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에서 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북부 한 야영지에서는 장갑차 8대로 구성된 호송대가, 다른 두곳에서도 200여명 규모의 용병들이 점령지를 떠나고 있다. 비행 추적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도 방기에서는 러시아산 항공기 2대가 본국을 향한 복귀길에 올랐다. 이날 바그너 그룹 소속으로 보이는 용병들이 공항에서 짐을 들고 있는 모습도 찍히면서 용병 해외 철수설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간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에도 참여해 왔다. 지난 2015년 시리아에서 알 아사드 정권을 도와 무장 단체 IS를 격퇴했고,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모잠비크·시리아·리비아 내전에도 참여하는 등 영향력을 지속 넓혀왔다.
이날 주민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 용병들은 조리 도구나 매트리스까지 청산하고 있는 데다 대체 인력도 얼마 없어 영구적으로 떠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 안보도 경고등이 켜졌다. 현재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라고 토로하는 주민들은 그간 지역 치안을 맡아온 바그너 그룹의 빈자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IS 등 당장 무장 단체들의 공격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바그너 그룹은 리비아를 포함해 말리·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일대에선 다이아몬드·금 광산 사업까지 손을 뻗어왔다. 석유·가스·광산 산업 계약 등 이권을 노리며 이제 막 성장 가도를 밟고 있는 여러 개발국에서 체제와 정권 유지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말리 중부에서 수백명의 주민들을 학살하는 등 바그너 그룹에 대한 여러 인권 침해 논란이 있었지만 어렵사리 정착된 지역 치안이 다시 흔들릴 위기가 발생하자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용병 반란 사태로 차악 대신 최악을 맞이한 셈이다.
이로 인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뿐 아니라 시리아나 말리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해 온 바그너 그룹을 대신해 급진세력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 시리아 한 정부 고문과 유럽 관료는 남부 유전과 가스전이 IS 급습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시리아 내전 중 바그너 그룹과 이들이 훈련한 민병대는 IS가 차지한 유전과 가스전 시설을 탈환하면서 치안을 지켜주는 대신 그 수익의 1/4가량을 요구한 바 있다.
이번 용병 반란 사태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 그룹이 세계 곳곳에 구축한 용병 사업을 흡수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시리아 전직 관료는 러시아 국방부가 반란 사태 이후 시리아 팔미라 유전과 가스전에서 바그너 그룹 용병들을 IS 겨냥 민병대로 대체했다고 전했다. 바그너 그룹의 지휘에서 벗어나면서 민병대 급여도 삭감되는 등 앞으로도 당분간 반란 사태로 인한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