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의 척 팔라닉이 다시 한 번 ‘굉장한 녀석’을 들고 돌아왔다.

동명 연쇄살인범의 생애를 담은 장편소설 ‘랜트’는 구술 기록 형식으로 기록됐다. 다양한 참고인들이 랜트라는 주인공을 그려내지만 정작 ‘랜트’는 한 번도 등장 하지 않는 독특한 설정의 책이다. 독자들은 ‘랜트’라는 기묘한 퍼즐을 맞춰가는 동안 ‘척 팔라닉’의 그로테스크면서도 독특한 향기에 매료된다.

모든 사물의 맛을 보고 냄새를 맡는 기묘한 성향의 ‘랜트 케이시’는 동물들에게 물어 뜯기는 동안 ‘쾌락’을 느끼는 독특한 캐릭터다. ‘독’에 특별한 내성이 있는 랜트는 동물들의 독이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를 때마다 발기를 하는 등 쾌감을 느낀다. 랜트에게 독은 그저 ‘예방주사 백신’에 지나지 않으며, 급기야는 이리저리 ‘광견병’을 옮기고 다닌다. 그리고는 그 광견병으로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를 세계최고의 살인범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책의 세계관 역시 랜트만큼이나 독특하다. 몇 년인지도 알 수 없는 ‘아무튼 미래’라고 소개된 시대에는 두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도덕적이고 정상적인 인간들은 햇빛이 비칠 때 생활하고, 타락하고 과격한 부류는 야간에만 생활한다. 야간생활자들은 살아가는 방식을 잊은 채 파괴하고 부수다가 결국은 랜트에게 병이 옮아 정부로부터 격리를 당한다.

거기에 시간 여행이라든지 남의 지식을 이어 받을 수 있는 신기한 기술 등이 소개돼 한껏 호기심을 자극하다가 급기야는 사회의 부조리, 종교의 본질, 영생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척 팔라닉만의 과격하고 능청스러운 필체 뒤에 숨겨진 우울하고도 파멸적인 냉소도 여전하다.

랜트는 ‘비프스테이크’다. 씹을수록 더 맛이 난다. 독자는 작가가 이리저리 숨겨놓은 퍼즐조각들을 뒤집어보고 흔들어 볼 때만 반짝이는 큐브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작가가 펼쳐놓은 혹은 독자 자신이 만들어 낸 내면의 편린들이 아물아물 피어나는 듯하다가도 다시 한 번 실마리들이 꼬이며 거미줄처럼 엮이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그 거미줄의 다양한 가능성을 풀어내면 딱딱한 외피로 착생된 ‘진실’이 반짝일 것이다.

척 팔라닉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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