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업계, 인기 품목 제외하고
가격 인하 단행… “인상 폭 절반”
추경호 부총리 공개 압박 결과
소비자단체, 반쪽짜리 인하 지적
전문가 “주거 안정 대책도 필요”
“규제 풀고 국민 상생하게 해야”

한 대형마트의 라면 코너. ⓒ천지일보DB
한 대형마트의 라면 코너. ⓒ천지일보DB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으로 일부 라면 가격이 내려갔지만 그 효과가 미미해 ‘생색내기’에 불과하단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인상 폭 대비 인하 폭이 작고 품목도 한정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라면 가격 상승 폭, 14년 4개월 만에 최고치

지난달 라면 물가의 1년 전 대비 상승 폭이 13.4%에 달해 14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5월보다도 상승 폭이 커지면서 한 달 만에 기록을 새로 썼다. 이는 지난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언급에 따른 일부 라면 출고가 인하분이 아직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6월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23.95를 기록해 지난해 6월보다 13.4%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5월 상승률이 13.1%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기록을 바꿨다. 라면 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2021년 4분기부터 상승세를 그렸다. 특히 지난해 9월 3.5%에서 10월 11.7%로 오르며 단숨에 10%를 넘어선 후 계속 10%를 웃돌고 있다.

이 같은 라면 물가 상승은 지난해 제품 가격 상승이 반영된 여파다. 국내 1위 라면기업 농심은 원가 상승분 등을 고려해 지난해 9월 라면 26종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했다. 이후 다음달 팔도, 오뚜기 역시 라면 평균 가격을 각각 9.8%, 11% 올렸다. 삼양식품은 같은해 11월 13개 브랜드 라면 가격을 평균 9.7% 상향 조정해 주요 라면기업 4사가 모두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달 라면 물가 추세는 점차 둔화하는 기조를 보인 전체 물가상승률과 상당한 격차를 나타냈다. 6월 전체 물가상승률은 2.7%로 라면(13.4%)과 격차가 10.7%p에 달했다. 2009년 1월(11.0%p) 이후 14년 5개월 만에 최대치다. 다만 라면뿐 아니라 가공식품, 외식 물가도 전방위적으로 상승했다. 6월 가공식품 물가는 7.5% 상승했고 외식 물가도 6.3% 올라 석유류 가격 하락 여파로 낮아진 전체 물가상승률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라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라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정부 압박에 라면값 ‘반쪽 인하’… “효과 미미”

7월에는 라면기업들이 정부의 물가 안정 시책에 맞춰 일부 제품 가격을 내린 만큼 라면 물가상승률도 둔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주요 라면기업은 이달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 대표적으로 시장 1위 농심이 신라면 출고가를 4.5% 내렸다. 신라면 가격 인하는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이와 함께 삼양식품이 12종, 오뚜기는 15종, 팔도는 11종 가격을 내렸다.

이는 제분사의 소맥분 가격 인하로 인한 조치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제분업계에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구했고 이에 제분(밀가루)·라면업계가 가격 인하에 돌입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라면 가격과 관련해 “지난해 9∼10월 (기업들이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단체들은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라면기업 제품 가격 인하에 대해 성명서를 내고 “인하율 및 제품 종류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며 “지난해 9월 농심은 신라면 10.9%, 너구리 9.9% 등 라면 26개 품목 가격을 인상했으나 이번에는 신라면만 4.5% 인하해 지난 인상분의 절반만큼만 인하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이번 라면 가격 인하는) ‘생색내기’ ‘흉내내기’에 불과하다”며 “일부 품목에서만, 그것도 조금 내린 건 언론홍보용인 것 같다. 소비자에게 와닿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인하)할 거면 강하게, 다양하게 해야 하는데 올릴 때는 다양하게 올려놓고 내릴 땐 그렇게 안 한다”며 “정부가 가격이 오르기 전에 막았어야 했다. 모든 품목 오를 때까지 내버려두고 이제 와서 찔끔 내리는 건 의미가 없다. 기업도 소비자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심은 안성탕면, 짜파게티, 너구리 등 가격을 유지했고,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오뚜기는 진라면, 팔도는 팔도비빔면 등 인기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좀 더 효과적인 민생안정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라면값 인하도 중요하지만 효과적인 민생안정을 위해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라면은 우리 국민의 필수품으로 가격이 얼마나 오르든 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1인당 라면 소비가 1위인 국가”라며 “라면 업계가 스스로 적당한 마진을 남기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라면 업계도 국민과 상생하는 차원에서 적정한 수준에서만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생안정을 위해서는 “서민들을 위한 정책보조금, 기업 법인세 인하 등이 필요하다”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돼서 국내 공장도 짓고 하면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장기적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제언했다.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많은 국가가 국민의 의식주랑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하기도 한다”며 “다만 그렇게 하려면 원칙이 중요해진다. 일회성으로 진행해서는 안 되고 개입하려면 라면과 같은 작은 업종 말고도 국민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인 주거비 등에서도 민생안정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작년에 정상 이윤 이상으로 돈을 버는 업종에 대해 황제세를 거둬서 국민에게 되돌려주자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런 건 듣지 않고 라면값만 내리고 있다”며 “소소한 것도 중요하지만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료 규제도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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