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따라 합심해 유찰 유도 가능
KT·LG헬로비전 880억 담합 의혹
2년 전에도 유사 사례 있었으나
알고도 손 놓은 조달청과 공정위
일각 “전북교육청도 문제 있어”
“대기업에 유리한 조항 넣었다”

이종욱 조달청장. (출처: 뉴시스)
이종욱 조달청장.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막대한 세금으로 진행되는 공공조달 사업에서 사업자들이 의도적으로 담합할 수 있는 사각지대가 생겼다. 이를 노린 ‘담합 신종수법’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현행 제도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공공입찰 의도적 유찰 가능한 ‘대기업 원팀’ 작전

전라북도교육청은 이달 조달청을 통해 ‘2023년도 에듀테크 교육환경 구축 사업(스마트기기 등 구매)’이라는 사업의 위탁 공고를 냈다. 지난 13일이 1차 공고 마감일이었고 유찰됐다. 도교육청은 2차 공고를 올렸지만 또다시 유찰됐다. 이에 3차 (재)공고를 열기에 이르렀다.

거듭되는 유찰의 배경에는 경쟁사 관계인 두 대기업이 ‘원팀’을 구성한 것이 있다. 스마트기기를 대규모로 납품하는 유사 사업들에서 경쟁하던 기업들이 이번 사업에서는 돌연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이들이 컨소시엄을 맺은 행위가 담합이라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의혹의 대상은 기존에 압도적인 수주율을 보였던 KT, 최근 울산교육청, 충청북도교육청 등의 유사 사업에서 수주를 따낸 LG헬로비전이다. 이들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다음 단독 응찰을 하면 입찰 경쟁이 무력해져 수요기관과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수의계약 시 경쟁에 따른 낙찰과 비교했을 때보다 월등히 높은 금액으로 계약하는 게 가능하다.

의혹이 확산됐던 건 다른 사업자가 이 사업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는 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조달 규정에는 사업 발주 금액에 비례하는 상당한 사업수주 경력이 있어야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유형의 다른 사업들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수주 이력이 없다면 응찰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사업자 간의 의사 합치에 따라 컨소시엄이 구성되는 만큼 이들 기업이 컨소시엄 구성에서 이 같은 사정을 몰랐을 리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북지부는 KT와 LG헬로비전의 컨소시엄 구성이 공공입찰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불법 행위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요청한 상황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 (출처: 연합뉴스)
한기정 공정위원장. (출처: 연합뉴스)

◆수요기관도 당황한 ‘담합 사각지대’… 방지책 없어

이번 사업에 대한 의혹처럼 조달 참가 기업들이 경쟁 입찰 방식을 무력화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해 단독 응찰할 경우 이를 제어·금지할 수 있는 법,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컨소시엄 구성 행위는 외견상 즉시 발견되는 위법 요건이 없다면 사적자치 원칙에 따라 정부에서 이를 임의로 제한할 방법이 없다.

사업자 간 담합 논란뿐 아니라 공고를 위탁해준 조달청의 입찰 감시 기능이 미비하다는 문제점도 있다. 특히 이번 건은 2년 전에 유사 사례가 있었음에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조달청 등 감사 기관이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생긴 ‘담합 사각지대’로 볼 수 있다.

2년 전 경쟁사 관계인 KT와 롯데정보통신도 부산광역시교육청이 진행한 약 600억원 규모의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에서 단독 컨소시엄으로 들어가 수의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당시 KT와 롯데정보통신은 경쟁사로서 해당 교육청 사업에 응찰할 준비를 각각 따로 하고 있었다가 마감 임박 시점에서 돌연 한 팀을 이뤘다. 당시 공정위와 조달청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했지만 담합 조사 및 대책 마련에 힘쓰지 않았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수의 사업자가 참여해야 하는 입찰에 ‘들러리’를 서러 들어온다거나 가격 등을 사전에 공유하는 게 지금까지 일반적인 ‘담합’의 의미에 해당했다”며 “이 외에는 사업자 담합 정황이 느껴질 만큼 수상한 부분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전라북도교육청의 사업은 재공고가 진행 중이라 현시점에서 특정 업체의 낙찰이 의도됐는지 등 부당한 공동행위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입찰 마감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컨소시엄 구성’ 자체를 담합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북교육청 관계자의 증언에서는 ‘담합 정황’을 엿볼 수 있는 표현이 나왔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그동안 KT와 LG헬로비전이 따로 사업 준비를 해왔고 교육청도 기술 견적을 따로 받아왔었다. 교육청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해 당혹스러운 면이 있다”며 “교육청 입장에서도 더 나은 건을 제안받고 사업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려면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데 유찰되면서 좋은 상황이 아니다. (사업자끼리) 경쟁하는 구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신고서가 제출된 만큼 조사 여부를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에게 손하트로 인사하는 서거석 전북교육감. (출처: 뉴시스)
학생들에게 손하트로 인사하는 서거석 전북교육감. (출처: 뉴시스)

◆“결국 中企와 입찰 생태계, 학생들에게 악영향”

교육청 사업에 참여하는 한 제조사 관계자는 “큰 프로젝트인데 대기업들이 경쟁 없이 나눠 먹게 되면 그들의 밑에 있는 많은 중소기업과 부품업체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부품업체의 마진을 최소화하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제안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에 응찰해온 대기업들의 컨소시엄 구성 관례상 제안서를 작성하고 수요기관과 계약하는 역할을 맡은 SI 업체(KT·LG헬로비전) 등을 제외한 나머지 중소기업이 실질적인 사업 수행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태블릿PC, 노트북, 충전보관함 등 사업에 필요한 물품은 제조사를 선정해 교육청 규격에 맡는 제품을 들여온다. 문제는 예산 분배다. 대기업 컨소시엄이 이뤄지면 양 기업이 가져가야 할 고정 수익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을 갖고 사업을 진행한다. 제품을 사고 하청업체의 고용비에 써야 할 돈이 줄어들어 제품 가격이나 서비스 품질이 떨어진다.

2년 전 부산시교육청 사업을 수주했던 KT와 롯데정보통신은 수의계약으로 100%에 달하는 사업 예산을 받았지만 사업 수행에서 미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공급 부진, 납품 태도 엉망으로 학교 측의 원성을 샀고 특히 롯데정보통신은 사업 과정에서 맡은 포지션이 거의 없었다. 이 피해는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불량한 납품 태도에 대한 뒤처리 및 저렴 제품으로 보급된 충전보관함의 폭발 문제를 학교 선생님과 교육청이 해결해야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수요기관의 잘못도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전남교육청이 사업을 준비하면서 결정한 사안들이 대기업 독무대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교육 사업 한 관계자는 “최근 3년간 에듀테크 교육환경 구축을 위한 스마트 기기 보급사업에서 시도교육청들이 자체평가하지 않고 조달청에서 평가위원을 구성해 선정할 경우 최근 3년간 특정 대기업이 독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앞서 사업을 추진했던 시도교육청의 사업실적들을 평가점수로 높게 책정하게 되면 그동안의 수행실적이 과다해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특정 대기업을 내정해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고 비판했다.

전교조 전북지부는 “지난 3년간 전국 스마트기기 보급사업 17건 중 82%인 14건을 대기업 1곳이 독식했고 나머지 3건도 대기업 1곳이 나눠 독점했다”며 “애초부터 독점적 시장 질서를 용인한 것이 잘못이다. 다양한 업체들이 경쟁할 수 있도록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의 방식을 수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전북도의회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는 있다. 진형석 전북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예결위 정책 질의 과정에서도 특정한 스펙을 넣어 한 곳의 회사만 들어올 수 있게 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복수의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전교조 전북지부가 공정위에 제출한 신고서. (제공: 전교조 전북지부) ⓒ천지일보 2023.06.27.
전교조 전북지부가 공정위에 제출한 신고서. (제공: 전교조 전북지부) ⓒ천지일보 20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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