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빠르게 사태 진압했지만
안팎에선 정권 유지에 의문
“결국 푸틴 통치 체제 균열”

정권 종말 임박 아니지만
지도자 교체 시나리오까지
“더 나쁜 후임자 나올수도”

[모스코바=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모스코바=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이솜 기자] “오늘의 푸틴은 지난주의 푸틴이 아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선임 연구원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가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한 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반기를 든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반란이 1주일을 넘기며 수습 국면에 들어섰으나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하루 만에 끝난 반란에 러시아는 이전의 모습을 빠르게 되찾았다. 또 푸틴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민의 단결을 강조하며 ‘모든 게 통제하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푸틴 대통령의 권위가 치명상을 입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표면적으로는 사태가 진화됐으나 러시아 안팎에서는 푸틴 정권의 종말이 시작됐는지를 여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쟁으로 국가적 역량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이번 반란으로 러시아는 새로운 국내적 도전에 직면했다. 그간 크렘린궁은 민주주의 운동가들로 인한 혁명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하는, 고도로 군사화된 포퓰리즘 봉기까지 막아야 할 상황이다.

23년 푸틴 대통령 철권통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모스크바=AP/뉴시스] 6월 27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 근처 니콜스카야 거리에서 구소련 지도자 요제프 스탈린 복장을 한 남성이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바그너 용병 그룹의 예브게니 프리고진 수장이 일으킨 반란이 하루 만에 끝나면서 모스크바의 삶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모스크바=AP/뉴시스] 6월 27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 근처 니콜스카야 거리에서 구소련 지도자 요제프 스탈린 복장을 한 남성이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바그너 용병 그룹의 예브게니 프리고진 수장이 일으킨 반란이 하루 만에 끝나면서 모스크바의 삶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반엘리트 포퓰리즘’ 프리고진

미 외교협회(CFR)의 리아나 픽스 유럽담당 연구원과 미 가톨릭대 마이클 키마개 역사학 교수는 지난달 27일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실은 ‘푸틴 종말의 시작’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푸틴 통치 체제의 균열에 초점을 맞췄다.

기사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과 이번 바그너 그룹의 반란으로 푸틴 대통령은 범접할 수 없는 독재자라는 신화가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반란은 푸틴 정권에 대한 첫 번째 주요 도전이 될 수 있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동기와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반란은 푸틴 정권의 심각한 취약점인 ‘일반인에 대한 경멸’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엘리트층은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으나 일반인들은 전쟁터에 끌려가는 등 목숨까지 잃는 피해를 입었다는 설명이다. 기사는 “많은 군인은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죽어가는지 알지 못한다”며 “프리고진은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왔다”고 지적했다.

실제 프리고진은 반란 전부터 반(反)엘리트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엘리트의 자식들은 화려한 여행을 즐기는 동안에 일반 시민들의 자식들은 전쟁터로 보내진다는 비난을 해 왔다.

그러면서 기사는 푸틴 대통령의 (일반인에 대한) 경멸과 러시아 군인들의 분노가 한 데 모인다면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크렘린궁은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서방에서는 러시아의 지도자가 교체되는 시나리오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도 나온다.

한 서유럽 외교관은 “혼란은 항상 위험을 수반하지만 푸틴의 입지가 약화되고 그가 교체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최근 미 정치매체인 폴리티코에 전했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러시아 전문가인 존 러프는 푸틴 대통령이 1년 후에도 집권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벌써 푸틴 대통령의 후임자에 대한 전망도 나왔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에밀리 페리스는 폴리티코에 “러시아 차기 지도자는 푸틴과 매우 유사한 인물, 즉 보안국에 귀가 있고 안보 배경이 있으며 과두 정치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 다음에 오는 사람이 바로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흐무트=AP/뉴시스] 프리고진 홍보부가 5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에 러시아 민간용병단체 바그너그룹의 예브게니 프리고진 수장이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 부대원들과 모여 유인물을 들고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바흐무트=AP/뉴시스] 프리고진 홍보부가 5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에 러시아 민간용병단체 바그너그룹의 예브게니 프리고진 수장이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 부대원들과 모여 유인물을 들고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옐친 도와 푸틴 만드는 실수 말아야”

그러나 푸틴 정권이 교체된 이후의 상황이 더 좋을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포린어페어스 기사는 “그(푸틴)의 후계자는 이 전쟁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으며 전쟁은 문제아를 낳는다”면서 “최선의 상황을 바라고 있지만 푸틴보다 더 급진적이고 노골적으로 우익적 성향에, 더 많은 군사 경험을 가지고 전쟁의 잔인함에 단련된 사람 등 최악의 후임자를 대비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제안했다.

중동 매체인 미들이스트아이는 지난달 29일 ‘바그너 반란: 서방은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는 기사를 통해 푸틴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진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1993년 10월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 정권에 대한 반란을 언급했다. 옐친 대통령은 의사당에 실제 포격을 가하는 등 육군 병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반대 세력을 제압했다. 옐친 대통령은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고 이에 무력 제압 다음 날 이코노미스트는 ‘필요악(A necessary evil)’이라는 제목으로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이 숨진 이 사건 이후 옐친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해 모든 행정 권한을 대통령에게 이양하고 의회를 더 약하게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변화는 오늘날 푸틴 대통령이 누리고 있는 권력의 토대가 됐다고 매체는 설명했다.

서방의 지지를 받은 정권이 현재의 푸틴 대통령의 독재에 힘을 실어준 셈이니, 이번 사태에 있어서는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미들이스트아이는 반란을 시도한 전직 전과자, 여러 국가에서 테러를 벌인 프리고진을 옹호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만약 실제 프리고진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도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매체는 “프리고진은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한 인물로 극우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을 것”이라고 봤다.

[로스토프나도누=AP/뉴시스] 6월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서 주민들이 이곳 군 사령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 병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유혈 사태를 피하고자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라고 밝혔으며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조건으로 그와 그의 군대를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로스토프나도누=AP/뉴시스] 6월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서 주민들이 이곳 군 사령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 병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유혈 사태를 피하고자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라고 밝혔으며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조건으로 그와 그의 군대를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강한푸틴보다 약한푸틴 더 위험?

예측 가능성이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강한 푸틴’보다 ‘약한 푸틴’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은 6월 29일 벨기에 브뤼쉘에 모여 바그너 그룹의 쇠퇴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정상회의에 참석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푸틴이 약해질수록 위험은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보렐 대표는 푸틴 대통령이 내부적으로 청산 모드에 있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우리는 내부 불안정성 때문에 러시아를 위험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마크 루테 네덜란드 총리는 6월 27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은 불안정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루테 총리는 “러시아의 불안정은 유럽의 불안정을 초래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리투아니아의 지타나스 나우세다 대통령은 “어떤 사람들은 강한 푸틴이 약한 푸틴보다 덜 위험하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지금이 역사에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단호해야 한다”며 푸틴 대통령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푸틴 정권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봤다. 유럽 고위 외교관은 폴리티코에 이번 반란과 관련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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