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서 한 주민이 차량에 탑승 중인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셀카를 찍고 있다. 프리고진은 ”유혈 사태를 피하고자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라고 밝혔으며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조건으로 그와 그의 군대를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AP/뉴시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서 한 주민이 차량에 탑승 중인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셀카를 찍고 있다. 프리고진은 ”유혈 사태를 피하고자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라고 밝혔으며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떠나는 조건으로 그와 그의 군대를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AP/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조차 뚫지 못했던 러시아 ‘심장’ 모스크바가 단 하루 만에 뚫릴 뻔했다. 한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던 5만명 규모의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돌연 러시아를 향해 총구를 돌리면서다.

이들이 향했던 곳은 승승장구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조차 러시아 원정에서 약 70만명의 병력 중 65만명에 육박하는 ‘떼죽음’을 당하면서 한 시대의 몰락을 초래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을 단 하루 만에 밀고 올라왔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의 주도인 로스토프나노두 군 시설을 장악한 데 이어 800㎞ 거리에 달하는 모스크바 코앞까지 빠르게 진격했다. 그것도 단 한명의 병력 손실 없이 이뤄진 일이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서 주민들이 이곳 군 사령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 병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서 주민들이 이곳 군 사령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 병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모스크바 200㎞ 앞까지 도달한 이들에게 러시아 시민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보냈다. ‘최고’라는 뜻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들, 우연히 프리고진 대표를 발견하자 연예인이라도 발견한 듯 기뻐하며 기념촬영을 하는 이들 등 각양각색이었지만 그 모습은 환호 일색이었다.

바그너 그룹 차량이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를 지날 때에도 많은 시민들은 도로로 나와 ‘갈채’를 보냈다. 이들이 병력을 철수할 때도 탱크를 배경 삼아 친구나 연인과 기념사진을 찍거나 바그너 그룹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환호하는 모습 등이 포착되기도 했다.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주민이 24일(현지시간) 철수 준비 중인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병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주민이 24일(현지시간) 철수 준비 중인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병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의 한 거리에서 주민 두 명이 군 사령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 병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의 한 거리에서 주민 두 명이 군 사령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 병사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이에 대해 프리고진은 “로스토프주 군 사령부를 접수할 때 총알 한 발도 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면서 “왜 국민이 우리를 지지하는가. 우리가 정의의 행진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그너 그룹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는 부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푸틴 대통령을 향해 총구를 돌린 이들은 왜 러시아 시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을까. 여기에는 프리고진 대표가 쌓아온 대중적 영향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반대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를 간과한 채 반란까지 허용하며 지도력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실제 프리고진 대표는 SNS를 통해 러시아군 지도부가 능력이 없다는 비판을 노골적으로 제기해왔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병사 수만명이 숨진 사실 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고, 최격전지로 꼽히는 바흐무트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여왔지만 러시아 국방부가 물자보급을 거부하면서 심각한 병력 손실을 봤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러시아 준군사조직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5일(현지시간) 특정되지 않은 장소에서 전사자들 시신 앞에서 러시아 국방부가 탄약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바흐무트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AP/뉴시스)
러시아 준군사조직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5일(현지시간) 특정되지 않은 장소에서 전사자들 시신 앞에서 러시아 국방부가 탄약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바흐무트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AP/뉴시스)

바그너 그룹은 대다수가 단순 사기와 강도뿐 아니라 살인과 강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죄수 용병이었지만 오히려 자식들을 전쟁에 내보내지 않은 러시아 지도자·부유층과 엘리트 무리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1년 반이 넘게 장기전으로 접어든 전쟁으로 직간접적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들을 대신해 러시아군과 엘리트층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긍정적 이미지를 가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주민들이 바그너 용병 그룹 깃발을 들고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 병사들을 향해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주민들이 바그너 용병 그룹 깃발을 들고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 병사들을 향해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러시아군의 허술한 대응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의 전력이 우크라이나 ‘대반격’을 막기 위해 주요 전선에 배치된 상태이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인 데다 푸틴이 최근 헬기연대 등 대규모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는 수도권이 순식간에 뚫리면서다. 러시아 특수부대와 기지를 공유하는 등 ‘러시아 편’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시각도 나온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 정규군 중 일부가 바그너 그룹을 묵인하며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디언지도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군과 오랜 기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며 “바그너 그룹을 막기 위해 배치된 러시아군이 어느 편으로 움직일지는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점령 중이던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면서 주민과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점령 중이던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면서 주민과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이 하루 만에 러시아 대통령이 있는 수도 모스크바의 턱밑에서 멈추면서 ‘하루 천하’로 일단락됐다.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는 극적 타협이 이뤄지면서인데, 실각 위기까지 내몰렸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번 타협으로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전에서만 5만명이라는 대규모 용병들을 투입한 용병 기업이다. 이들 용병은 동부 전선에서 일부 성과를 내면서 권력 실세로 떠올랐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바그너 용병 그룹 병사들이 전차를 트럭에 실으며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바그너 용병 그룹 병사들이 전차를 트럭에 실으며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2015년 시리아에서 알 아사드 정권을 돕기도 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에도 참여하는 등 영향력을 넓혀왔다. 이밖에 리비아·말리·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등에서도 다이아몬드·금 광산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찰떡궁합’을 자랑하던 프리고진 대표의 바그너 그룹과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군이 하루아침에 갈라서게 됐다. 심지어 얼굴에 자상 또는 총흔으로 보이는 긴 상처가 확인되는 등 프리고진 대표는 암살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그야말로 알 수 없는 권력의 세계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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