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주도 서방 내 대중 견제 ‘균열’로 강경에서 대화로 전환 관측

기시다 “北과 새 시대 열것”… 北무반응 속 김영철 통전부 복귀

미중, 북일 대화국면에도 강경기조… 내달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주목

블링컨 장관(좌)과 회동하는 시진핑 주석(중앙) (출처: 연합뉴스)
블링컨 장관(좌)과 회동하는 시진핑 주석(중앙)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그간 마주하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렸던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해빙무드로 돌아섰다. 북일 정상 간 만남을 향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발걸음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일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가치(이념)외교를 전면에 내걸고 미일에 과도하게 밀착하는 한편, 북중러 등 권위주의 진영과의 싸움에서 ‘자유의 전사’를 자청하고 있는 양상이다.

중러와는 척지고 미일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윤 정부 외교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는데, 외교가 일각에서 윤 정부가 ‘고립무원의 신세로 전락했다’거나 ‘낙동갈 오리알의 처지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결 아닌 ‘대화’ 택한 한중

블링컨 장관은 지난 18~19일 1박 2일간의 방중 일정을 소화하며 중국의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을 각각 만난데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을 접견했다.

이번 만남이 미중 간 패권 갈등이 여전한 상황 속 국면이 급격하게 전환될 만큼의 가시적인 돌파구는 없었지만, 양측이 모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미국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즉 강경에서 대화로의 정책 전환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린 중국 정부의 전 세계적 영향력 확대와 함께 프랑스와 독일 등 서방 동맹국 내에서의 중국과의 관계 강화가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 대체적이다.

특히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책에 서방 동맹국 내에서 균열이 생긴 셈이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이후 인도‧태평양 전략을 앞세워 서방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함께 군사를 넘어 경제적(다커플링) 분야까지 대중 포위망 구축에 주력해왔는데, 그래서인지 이번 만남에서 갈등이 아닌 경쟁 관계임을 분명히 했다. 시 주석과의 만남도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하면서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19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중 관계의 근본적인 진전은 없었다면서도 양국이 “올바른 길 위에 있다”고 평가한 뒤, “블링컨 장관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채한도 문제가 봉합된 이후 당장 막대한 국채 발행을 해야하는 미국 정부로서는 내년 미 대선을 앞두고 이를 사줄 수 있는 나라가 중국밖에 없고, 따라서 관계 회복이 다급했다는 분석이 많다.

아울러 미중 간 ‘가드레일’ 마련 등 관계 안정화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고위급 소통 채널을 가동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만하다. 친강 부장이 올해 안에 미국을 방문할 것이 유력해 보이는 이유다. 다만 고위급 대화와 달리 군사 소통 채널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2월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 계획이 무산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중국의 ‘정찰 풍선(고고도 정찰용 기구)’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면, 친강 부장의 답방이 이뤄질 경우 한동안 미중 양국은 현안 접근법에 있어 갈등이 아닌 ‘경쟁’을, 대결보다는 ‘대화’를 우선 순위에 둘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AP/뉴시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20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외신과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그의 뒤로 이달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정상회의) 로고가 보인다. 2023.05.17.
[도쿄=AP/뉴시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20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외신과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그의 뒤로 이달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정상회의) 로고가 보인다. 2023.05.17.

◆기시다 총리 “김정은과 회담” 거듭 밝혀

북일 정상의 만남도 가시화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21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정기국회 폐회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지난달 27일 일본인 납북자의 귀국 촉구 국민 대집회에서 처음으로 운을 뗀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앞선 발언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서 어느 정도 물밑 간 접촉이 이뤄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건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관점에서”라는 표현이었는데 당면한 납치자 문제 해결 등을 위한 북일 정상회담 개최는 물론, 일제 강점기 식민지배 배상과 적대관계 청산을 통한 향후 국교 정상화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기시다 총리의 어조도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나의 결의를 김 위원장에게 계속 전달하겠다” “정상회담을 조기에 실현하겠다” 등의 강조법을 쓰는 등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의욕이 묻어났다. 북한과의 고위급 협의체를 총리 직할로 두겠다는 뜻을 밝힌 대목에선 이미 성사 임박을 시사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북한은 기시다 총리의 제안 이틀만인 지난달 29일 박상길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통해 일본인 납북자 문제 등과 관련한 일본의 변화를 요구했지만,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화답한 바 있다. 이날 기시다 총리의 기자회견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눈에 띄는 움직임은 감지됐다. 지난 19일 북한 노동당 제8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김영철 전 노동당 대남비서가 통일전선부 고문 직책으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복귀한 것인데,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일본과의 고위급 협의에 대비한 인사가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미고위급회담대표단을 만나 워싱턴 방문 결과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2019.1.24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미고위급회담대표단을 만나 워싱턴 방문 결과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2019.1.24

◆‘나홀로’ 반북‧반중 외치는 尹정부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과 대만 독립 반대 입장 표명을 계기로 미중 간 해빙 기류가 완연하고 기시다 총리는 북한뿐 아니라 국익 관점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 방침을 밝히는 등 화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윤 정부만 ‘나홀로’ 가치외교를 내건 채 반북, 반중, 반러 기조를 고수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미국 주도의 반중 전선의 최선두에 서서 ‘돌격대장’ 역할을 자임해온 윤 정부가 상당히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데, 그럼에도 최근에는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을 오히려 키우는 등 한중 관계를 파국 직전까지 몰아가 주목을 받는다.

좁아지는 입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모습인데, 실제 그간의 윤 정부의 행태를 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당인 대표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 “우리나라를 침략한 중국” “위안스카이와 비슷하단 얘기가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비난을 쏟아내더니 중국에 대사 경질까지 요구해 놓은 상태다. 반면 중국은 윤 정부의 대응이 과도하다고 보고 현재는 이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대중국 수출 부진에 무역 적자가 쌓이고 있는 지금의 형편에서 일정 정도를 넘어 중국을 자극하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쏟아졌는데, 대중 포위망의 선봉에 서는 게 북핵‧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한 방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해석이 있는가하면 혐중 정서를 끌어내 정치적 이득을 챙기겠다는 심리가 깔려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다만 후자의 견해에 보다 힘이 실리는 건 중국 측이 싱하이밍 대사와 같은 맥락의 발언을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필리핀 등에 대해서도 내놨으나 이에 대해 미국은 아무런 반응을 내놓치 않은 채로 지나갔고 일본은 대사 초치로 마무리 지었으며 필리핀은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외교가 안팎에서 가까운 시일 내 한중 간 고위급 소통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들려오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주목되는데 13~14일에 걸쳐 한·아세안,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잇달아 열릴 예정이어서 한중 간 만남 여부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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