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 발표
고1 공통과목, 상대평가 유지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키로
외고·국제고는 통합 유형 신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올해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고교에 진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된다. 다만 기존에 고교학점제 안착의 선결 조건으로 논의됐던 고1 공통과목 전면 성취평가제(절대평가)는 도입하지 않는다.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체계는 계속 유지하는 대신, 전국 단위 선발 자사고의 모집정원 20%를 지역 인재로 채우도록 의무화한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전면 시행 시기를 놓고 이견이 있었던 고교학점제는 예정대로 2025년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현재 고교 내신의 경우 1학년은 대입전형을 위해 성취평가(A·B·C·D·E)와 9등급 상대평가를 함께 실시하고, 2∼3학년은 성취평가만 시행한다. 1학년은 상대평가, 2∼3학년은 절대평가인 셈이다.

상대평가는 주로 고1 때 공부하는 공통과목에 적용된다.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 등 의무적으로 이수하는 공통과목은 지금처럼 석차 9등급제가 계속 시행되는 것이다. 성취평가제는 성취도를 A·B·C·D·E 등 5단계로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 부총리는 “공통과목의 경우에는 최소한의 내신 변별력을 위해 석차 9등급 병기를 유지하겠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될 경우 제도 도입 취지에 맞게 학생들이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이 아니라 실제로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게 하려면 모든 과목에서 성취평가제를 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이 부총리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12월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라 전 과목을 5단계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로 전환할 뜻을 밝혔지만, 시도교육감 및 교원단체 등의 반대로 무산된 셈이다.

◆이주호 “고교 공통과목 절대평가, 현장 부담 커”

이 부총리는 이날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에도 공통과목 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마지막까지도 찬반이 굉장히 팽팽했는데 현장 부담이 크다는 의견이 강해 미뤄두기로 했다”며 “학교 현장의 성취평가 역량을 강화하는 쪽에 역점을 두고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성취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학교-교육청-외부점검단의 3단계 점검 체계를 만들고, 평가관리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기로 했다. 학교별·지역별 개설과목 편차가 큰 점을 고려해 현재 4개인 공립 온라인학교를 2025년까지 17개로 확대하고 공동교육과정을 늘리는 한편, 지역 고교학점제 지원센터를 설치해 고교-대학-기업 협력도 강화한다. 이와 함께 프로젝트 학습 등 참여형 수업을 늘리고, 객관식 문항 대신 논·서술형 평가에 집중한다.

김연석 교육부 책임교육정책관은 “현재는 (정기고사를) 수행평가와 지필고사로 치르고, 통상 지필고사에서는 30% 정도 논·서술형 문항을 출제할 수 있다”며 “이 비율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논·서술형만으로도 평가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했던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존치하기로 하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올해 말까지 개정해 이들 학교의 법적 근거를 되살릴 계획이다.

다만, 기존 외고와 국제고가 희망하는 경우 ‘국제외국어고’로 전환해 두 학교체제의 교육과정을 함께 운영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사교육 유발과 우수 학생 선점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당정은 지난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이른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출처: 연합뉴스)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당정은 지난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이른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출처: 연합뉴스)

◆전국단위 자사고에 ‘지역인재 선발’ 도입

우수 학생 선점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지금처럼 일반고와 ‘후기 선발’을 유지한다. 또 전국단위 모집 자사고에 ‘지역인재 선발’을 도입한다. 모집정원의 20% 이상을 해당 학교 소재 시·도 학생으로 선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미 실시 중인 사회통합전형의 경우 20% 의무선발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되 미충원 인원의 절반을 일반전형으로 충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회통합전형 미충원 인원의 50%를 일반전형으로 충원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선발 과정에서 선행학습 유발요인이 없었는지를 평가하는 ‘입학전형 영향평가’도 개선한다. 이와 함께 5년 주기로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운영성과를 평가해 결과가 좋지 않은 학교는 정원을 감축하기로 했다.

현재 전국 단위 자사고는 ▲서울 하나고 ▲인천 하늘고 ▲울산 현대청운고 ▲강원 민족사관고 ▲경기 용인외대부고 ▲경북 김천고 ▲경북 포항제철고 ▲전북 상산고 ▲전남 광양제철고 ▲충남 북일고 10곳이다.

이 부총리는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는 공교육의 다양성·자율성을 확보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라며 “자기주도학습전형 강화, 지역인재 선발 의무화 등을 통해 새로운 사교육 요인이 유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대 최고 사교육비가 도마 위에 오른 상황에서 대표적인 사교육 유발 요인인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가 사교육을 잡겠다는 정부의 새로운 기조와 충돌한다는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총리는 외고·자사고 존치가 사교육 유발요인이라는 비판과 관련해 “이미 있던 것을 존치하는 것이고, 사교육 유발요인 제거를 위한 대책이 들어가 있다”며 “사교육을 줄이는 것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의 다양성·자율성을 위해서는 이것을 존치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이와 별도로 시·도 교육청이 지역별·학교별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자율형공립고 2.0’을 추진한다. 교육계에서는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공교육 경쟁력이 높아지고 지역 명문고가 부활해 지방소멸을 늦출 수 있다는 찬성론과, 학교 서열화가 심화할 것이라는 반대론이 맞선다. 교육부는 이와 별도로 교원들의 자발적인 수업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사제도를 비롯한 교원정책 전반을 개편하기로 했다.

김연석 정책관은 “그것을(기업형 공립고) 꼭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교육감과 교육주체가 협의해 새로운 유형의 학교를 설립한다면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3·중1 ‘책임교육학년’ 지정해 학업성취도 평가

교육부는 또 교과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책임교육학년’으로 지정해 학습 지원한다. 학년 초 성취 수준을 진단하기 위해 맞춤형 학업성취도 평가에 초3·중1 학생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청에 권고하고, 참여 여부를 교육청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맞춤형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급별로 신청해 치르는 진단평가(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인데 자율이다 보니 전국 평균 참여율이 학생 수 기준 12.2%에 불과하고 지역별 편차도 크다. 진단 결과에 따라 중점적으로 학습을 지원하는 대상을 현재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서 2025년에는 ‘중·하위권’ 학생까지 계속 확대한다. 이렇게 하면 전체의 5% 규모인 지원 대상이 30%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4년부터는 ‘학습도약 계절학기’를 도입해 방학을 이용한 기초학력 보충학습을 시행하고, 중1 학생은 자유학기제 취지를 고려해 진로·적성진단과 진로 탐색을 강화한다. 이와 함께 올해 하반기부터는 학생들의 학교생활 적응, 교우관계 등을 사회·정서 지표 조사로 측정하고 ‘학생 사회·정서 지원법’을 제정하는 한편, 인성교육과 예술·체육활동도 강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오는 27일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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