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투병 중 숨져…장례식은 14일 밀라노 대성당에서 국가장으로
성추문 의혹에 총리 낙마, 유죄선고로 의원직 박탈도…지난해 상원의원으로 복귀
'20년 절친' 푸틴 대통령 "소중한 사람이자 진정한 친구 잃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출처: 연합뉴스, 로이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출처: 연합뉴스, 로이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6세.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이날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밀라노의 산 라파엘레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그의 동생인 파올로와 슬하의 다섯 자녀 중 네 자녀(마리나, 엘레오노라, 바르바라, 피에르)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와 임종을 지켰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약 2년 전 만성 골수 백혈병(CML) 진단을 받은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왔다.

올해 들어서는 CML에 따른 폐 감염으로 지난 4월 5일부터 5월 19일까지 45일간 산 라파엘레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지난 9일 정기 검사차 병원을 들렀다가 입원한 그는 이날까지 나흘째 입원 치료 중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장례식은 오는 14일 밀라노 대성당에서 국가장으로 치러진다.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은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시신은 이날 오후 밀라노 인근 아르코레에 있는 그의 별장으로 옮겨졌다.

이후 13일에는 그가 소유한 방송사 '메디아세트' 제작 센터에 안치돼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멜로니 총리는 이날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멜로니 총리는 "우리는 함께 많은 전투에 나서 이기고 졌다"며 "그를 위해 우리가 함께 세웠던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잘 가세요. 실비오"라고 말했다.

멜로니 총리는 2008년 당시 베를루스코니 총리 내각에서 청년부 장관으로 발탁돼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31세) 장관 기록을 세웠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1936년 9월 29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1961년 건설업에 뛰어들어 부를 축적했고, 1980년대에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언론 재벌이 됐다.

이탈리아 최고의 갑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1994∼2011년 사이 총리를 세 차례 지냈다.

2005년 이뤄진 개각을 포함하면 4차례에 걸쳐 9년 2개월간 총리를 지내며 전후 최장기 총리 재임 기록을 갖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집권 기간 내내 온갖 성 추문과 비리, 마피아 커넥션 등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아 '스캔들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1년에는 미성년자와의 성 추문 의혹과 이탈리아 재정 위기 속에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고, 2013년에는 탈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재기에 나선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지난해 9월 조기 총선에서 10년 만에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대표인 전진이탈리아(FI)는 집권 연정에 속해 있지만 그는 현 정부에서 별다른 직책을 맡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옹호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지난해 10월 그가 이끄는 FI 소속 의원들에게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부를 정직하고 분별 있는 사람들로 교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가 공개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20년 절친'으로 휴가를 함께 보냈을 정도로 생전에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보낸 전보에서 "내게 실비오는 소중한 사람이자 진정한 친구였다"며 "그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자 큰 슬픔"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후 TV 연설에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러시아와 유럽 국가·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간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며 "그의 죽음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국제 정치에도 큰 손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현 이탈리아 연립정부를 떠받치는 세 가지 기둥 가운데 하나인 FI는 작년 9월 조기 총선에서 8.11%를 득표했다.

나머지 두 정당인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I),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의 동맹(Lega)은 각각 25.98%, 8.7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FI는 연정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가장 적지만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후계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연정이 내분과 갈등에 휩싸이는 등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에 그의 별세가 가져올 여파에 이탈리아 정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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