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언론인의 날을 맞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언론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언론인의 날을 맞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언론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우크라이나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 이어 총사령관 등 군 최고지도부가 그간 수차 예고했던 ‘대반격’을 공식화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반격과 방어 작전이 진행 중”이라면서 “현재 단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CNN과 BBC가 이날 전했다.

이 발언은 동부·남부 전선 등 다방면에 동시다발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왔다. 그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격퇴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이에 대해 입을 다물며 보안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바흐무트와 남부 자포리자 인근에서 진격하고 있으며, 장거리 공격으로 러시아 목표물을 타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측은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진전을 주장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공격을 모두 격퇴하고 있다고 피력헀다.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캐나다 총리를 만난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쫓겨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대규모 반격을 개시했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예고 없이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우크라이나에 5억 캐나다 달러(약 4800억)의 대규모 신규 군사 지원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캐나다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는 것을 조건이 허락하는 한 즉시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이 사안이 내달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 영토 수복 위한 대공세

최근 서방의 전폭적인 무기 지원을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가 잃어버린 영토 수복을 위해 댐 붕괴 사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대적인 공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7일(현지시간) 그간 러시아로부터 빼앗긴 바흐무트를 비롯해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자포리자 등 3개 주요 전선 축을 따라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이날 전했다. 불과 며칠 전 기계화·전차부대와 드론을 동원해 러시아가 점령한 도네츠크·크름(크림)반도뿐 아니라 러시아 본토인 벨고로드까지 공격을 감행한 데 이어서다.

모스크바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드론 공습과 반러 민병대, 이번 댐 붕괴 등을 둘러싼 여론전과 함께 동서남북으로 주요 전선을 흔들면서 이른바 하이브리드 총력전이 도래했다는 평가다.

실제 러시아 용병대장은 주요 전선에서 방어선이 뚫렸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대표는 우크라이나군이 이미 여러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총동원령’까지 촉구했다.

(바흐무트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에서 철수하고 정규군에 지역을 이양한다고 밝혔다. 2023.5.25
(바흐무트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에서 철수하고 정규군에 지역을 이양한다고 밝혔다. 2023.5.25

그는 “바흐무트 인근 3개 지역과 도네츠크에 우크라이나군이 대규모로 집결하고 있다”며 “조만간 도네츠크 지역을 포위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벨고로드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병력이 20만명이 안 되면 루한스크-도네츠크(돈바스 지역) 전선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피력했다.

전쟁 상황이 총력전으로 치닫는 가운데 우리나라 최대 호수인 소양호의 약 6배 규모의 카호우카 댐이 폭파, 붕괴돼 대홍수가 발생한 점도 핵심 변수다.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의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진격할 수 없게 되는 등 전선 지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이 구축한 방어진도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겼으나 향후 몇 달간 우크라이나군이 이 지역에서 진격할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 시각에 따르면 러시아가 ‘제 살을 깎으면서’ 남부 자포리자 지역 등 공격 루트에 더 많은 군대를 배치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공격 소식은 공격에 나선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미국과 서방이 ‘대반격’에 대해선 유독 입을 다물며 이른바 ‘보안 작전’으로 보안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영상을 제작 공개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공개된 이 영상에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두 번째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하는 포즈를 취하며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 담겼다. 한나 말리아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영상과 함께 “계획은 침묵을 사랑한다. 개시 선언은 없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에 성공할 것이냐는 질문에 손가락으로만 대답했다. 손가락을 들어 중지와 검지를 교차해 보였는데(finger crossed) 이는 ‘행운을 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 군 당국이 4일 자국민에게 대반격을 성공시키고자 작전상 정보에 대해 침묵을 지켜달라고 당부한 것도 이러한 침묵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침묵 전술’ 지키는 이유 있나

우크라이나는 이번 반격에 매우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 살펴봤듯 군 당국이 자국민을 향해 대반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작전상 정보와 관련해 침묵을 지켜달라고 촉구할 정도다.

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헤르손 홍수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주민들을 구조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있다. (AP/뉴시스)
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헤르손 홍수 지역에서 구조대원들이 주민들을 구조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있다. (AP/뉴시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대변인은 대반격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을 대표해 말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난 6~8개월 이상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확신한다” 강조했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서방 첨단 무기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대반격은 성공 또는 실패에 따라 향후 서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교 및 군사지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1년 넘도록 일관되게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반면, 일부 국가에서는 이에 따르는 예산 부담 등을 이유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조차 러시아와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 재출마를 선언하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부 여론도 마찬가지다. 아직 푸틴 대통령과의 평화협상 체결에 선을 그으며 영토 완전 수복을 외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있지만, 반격 성과가 신통치 않을 경우 더 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항전을 지속하겠다는 명분과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우크라이나 안팎의 정치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번 러시아 대반격에 실패할 경우 다음 기회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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