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이문재(1959 ~  )

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한구석

자전거 한 대 누워 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누가 소년을 놓고 갔나 보다

체인이 녹슬었다

왼쪽 페달이 없다

소년이 소년을 벗었나 보다

자전거가 버려진 이곳에서

어떤 길이 시작되었으리라

먼 곳이 시작되었으리라

[시평]
‘소년(少年)’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개화기 이후라고 생각된다. 그 이전에는 소년이라는 말이 없었다. 나이가 15세가 되면 성동(成童)이라고 해서, 비로소 어린아이를 면하는 나이라고 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소년’이라는 말은 개화가 되면서 나온 단어다. 육당 최남선이 춘원 이광수와 함께 일본 동경에서 ‘소년회’를 결성한 것은 1907년이고 귀국해 ‘소년지(少年誌)’를 창간한 것은 그해 11월이다. 그러니 그의 나이 불과 18세라는 소년의 나이였다. 최남선과 함께 소년회를 만든 이광수는 최남선보다 두 살 연하이니, 이때 나이 불과 16세라는 어리다면 어린 소년이었다. 이 당시 ‘소년’은 우리 민족의 미래에의 희망이었다. 그래서 미래를 향해 커다란 꿈을 펼치는 소년마냥 우리는 내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함이 강조된 단어다. 그래서 최남선은 그의 첫 신체시인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에서 먼 미래를 향해 펼쳐있는 바다의 광활함을 통해, 밀려드는 개화의 거센 물결과 소년의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무한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노래했다. 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한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자전거 한 대는, 마치 이 자전거를 타던, 이제는 자전거가 필요 없게 된 소년이다. 소년은 소년을 벗어나 또 다른 먼 길을 향해 떠난 것이다. 개화기 초, 그 새로움에 목말랐던 우리들, 육당 최남선이나 춘원 이광수 마냥, 소년은 더 큰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디딘 것이다. 소년 시절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를 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한구석에 버려두고. 소년은 소년을 벗어난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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