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동 연인 살해’ 등 잇단 범죄
보복 두려움에 신고 못 할 수도
“사람 만나는 것 겁나고 의심돼”
관련 법 논의 없이 국회 계류中

데이트폭력 신고에 불만을 품고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가 1일 오전 서울 금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데이트폭력 신고에 불만을 품고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가 1일 오전 서울 금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유영선, 이한빛 기자] 최근 한때 연인이었던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여성이 늘고 있다. 특히 교제폭력(데이트폭력)이나 살인의 경우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와 달리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입법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6∼28일 3일간 서울 금천구에서 교제한 여성을 ‘보복살인’한 사건에 이어 서울 마포구와 경기 안산시에서도 연인을 살해하거나 전 연인을 폭행·감금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A씨는 지난달 26일 오전 7시 17분께 서울 금천구 시흥동 한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이별을 원하는 동거녀 B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A씨는 B씨가 자신을 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자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헤어진 여자친구의 목을 조르고 멱살을 잡아 강제로 차에 태운 C씨도 마찬가지다. C씨는 교제폭력을 저지르고 경찰 조사를 받은 이력이 있었다. 28일 새벽 경기 안산시 단원구 주택에서는 사귀던 30대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뒤 흉기로 자해한 30대 남성 D씨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상당수의 여성은 교제폭력의 잠재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관련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송유빈(31, 여)씨는 “급하게 낯선 사람과 가까워지지 말고 좀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관계를 맺어야 할 것 같다”며 “데이트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계속 도망 다녀야 하므로 제도적으로 관련 법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유진(가명, 30대, 여)씨도 “저출산에 결혼도 늦어지고 있는데 사람을 만나는 것이 겁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부터 의심을 하게 된다”며 “데이트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트폭력 사건이 빈번히 발생해 ‘주변을 살피게 됐다’는 여성도 있었다. 박민서(23, 여)씨는 “데이트폭력 사건이 일상에서 너무 흔하게 일어나고 있어 사람을 만날 때 걱정된다”며 “주변에서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법적 장치 없어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만 9940건이었던 ‘교제폭력’ 신고는 1년 만인 2021년 5만 7297건으로 약 3배 늘었다.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된 경우는 2016년 8367명에서 2021년 1만 554명, 지난해에는 1만 2841명으로 지속 증가했다. 범죄 유형으로는 폭행, 성폭력, 주거침입, 살인, 감금 등 다양했다.

하지만 교제폭력은 피해자 보호에 대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교제폭력은 접근금지 명령이나 가해자 분리 조치를 법적으로 규정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과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과 달리 피해자를 보호할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킹처벌법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기 위해 경찰이 가해자를 법원의 영장을 받아 구속하거나, 법원의 잠정 조치로 유치장에 가둘 수 있다. 가정폭력처벌법에도 가해자를 주거에서 퇴거시키거나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교제폭력을 권력형 성범죄·디지털 성범죄·가정폭력·스토킹범죄가 담긴 ‘5대 폭력’에 포함시켰으나, 아직까지 관련한 입법 논의는 시작조차 되고 있지 않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가해자 격리하고 법 지원 촘촘해야”

국회도 마찬가지다. 교제 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발의된 법안들이 별다른 논의 없이 2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1년 1월, 3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박광온이 각각 대표발의한 ‘가정폭력방지법 일부 개정안’과 지난해 7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두 법안 모두 사각지대에 놓인 교제폭력 피해자들에게 가해자 접근금지, 신변조치 등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발의된 상태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 한 채 소관 상임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교제폭력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가해자를 분리시키는 스토킹 처벌법 잠정조치 4호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교 교수는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교제폭력은 지금 법이 없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있다. 가정폭력에 관한 법이든 새로 단독으로 법을 만들든지 가장 중요한 게 가해자를 일단 격리하고 법·제도 지원을 촘촘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스토킹 처벌법의 잠정조치 4호가 그렇게 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경찰에 대한 교육이 새롭게 이뤄져야 하고, 검사와 법원을 거치면서 보통 5~7일 걸리는 부분도 신속히 할 수 있는 법·제도의 변화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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