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모든 LG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객가치를 모아 고객의 삶을 바꾸는 감동과 경험을 만들어 가자.” 이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한 말이다. 구 회장의 말과 같이 LG그룹은 ‘고객 중심’을 핵심가치로 둔 기업이다. 이는 구인회 창업주의 기업정신과도 맞물려 있다. 구인회 창업주가 1947년 1월 락희화학공업사(現 LG화학)를 설립한 이래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며 지금의 LG그룹이 있기까지의 스토리를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LG전자에서 근무했던 박광수 칼럼니스트를 통해 파헤쳐본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전자 등에서 40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기업경영 컨설턴트, 기업초빙강의 전문가와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박광수 한국과학기술원 자문위원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전자 등에서 40년간 근무했다. 연구개발·생산기술·기획·품질관리·영업·구매 관련 분야를 망라한 것은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해 미국 일본 등 해외주재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기업경영 컨설턴트, 기업초빙강의 전문가와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LG그룹의 창업자는 연암 구인회 회장으로, 그는 1931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부친으로부터 지원받은 자본금 2000원으로 포목상을 열었다. 상호명칭은 본인의 이름을 본뜬 구인회상점이다.

구 회장은 구인회상점을 1940년 주식회사 구인상회로 변경하고, 무역업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시킨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구 회장은 하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부산으로 사업터전을 이전한다.

구 회장은 당시 남동생인 구철회(LIG그룹 초대회장)와 동업을 했는데 사업이 날로 번창하면서 1941년 사돈 관계인 허만정(현재 GS그룹 초대회장, 김해 허씨) 일가와도 거래하며 6대 4의 지분을 투자하고 동업을 시작한다.

1945년도에 ‘조선’이라는 명칭을 본떠 사업을 크게 일으키자는 의미로 ‘조선흥업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1947년 LG그룹의 창업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하고 사업이 번창하자 1958년 대한민국 최초의 전자회사인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했다.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전자제품인 라디오를 개발·생산하면서 비로소 오늘날 LG그룹의 역사가 정식으로 출발한다.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사실상 공중파인 라디오 방송은 1927년 일본이 한국을 식민통치와 대륙 침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당시 조선인들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설립한 경성방송이다. 당시 새로운 문명체인 라디오는 조선 민중에게 근대적 대중매체로 각인됐고, 이에 따라 대중음악인 조선인들의 한을 간접적으로 담은 트로트가요도 유행한다.

해방 이후 미군정은 경성방송을 ‘서울 중앙방송’으로 개명시켰고, 1946년 10월 18일부터 도입된 정시방송체제에서 15분 쿼터제로 편성했다. 15분이 지나면 반드시 콜사인을 넣어야 했다. 이때 시행된 콜사인이 KBS(This is Seoul Korea Key Station of the Korean Broadcasting System)로, 한국방송 KBS가 정식 탄생된다.

아울러 1947년 9월에 국제무선통신회의를 통해 ‘HL’이라는 한국 고유의 호출번호를 할당받아, 그해 10월 1일부터 HLKA(KBS)라는 콜사인 방송을 한다. 그리고 KBS는 미국식 상업방송을 시작하고 미국의 상법 이념을 전파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라디오방송은 국가권력에 예속되면서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대국민들의 홍보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연이어 기독교방송 CBS, 문화방송(MBC, 1961년), 1963년 동아방송 등의 민간 방송이 탄생한다.

1961년 12월 31일 개국한 KBS TV, 1964년 12월 7일 개국한 TBC TV, 1969년 8월 8일 개국한 MBC TV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TV 방송시대가 열린다. 이런 방송환경에 적응키 위해 연암은 국내 최초로 흑백 TV를 개발하라고 금성사 연구진에 지시한다.

금성사의 핵심 연구진은 일본으로 건너가 TV에 대한 전문서적과 유통시장에서 일제TV를 구매하고 국내로 들여와 해체하고 부품을 보면서 재조립하는 시행착오를 겪고, 부족한 기술은 우방국 미국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1966년도에 금성사의 19인치 흑백 TV가 국내 최초로 생산된다.

또한 연암 구 회장은 국가에 보답한다는 신념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당시 재래식으로 살았던 국민의 생활환경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 기술을 토대로 플라스틱을 활용한 화장품케이스를 개발하고, 케이스 안에 저렴한 화장품인 동동구루무를 개발·생산·판매하면서 국민의 건강한 미용의 일종인 얼굴가꾸기에 나선다.

또한 반고체 형상의 럭키치약을 개발하고 생산·판매하는데 이 제품 역시 대박을 터트리면서 럭키화학은 국민의 사랑하는 기업으로 변모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LG그룹은 탄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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