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25일 서울 서초구 반포심산아트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더 유니크(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 서초문화재단) ⓒ천지일보 2023.05.26.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25일 서울 서초구 반포심산아트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더 유니크(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 서초문화재단) ⓒ천지일보 2023.05.26.

모든 건축물은 관계를 조정하는 ‘컨트롤러(controller)’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과 저하고 있는데 이 사이에 벽이 하나 갑자기 생겨요. 그러면 단절이 됩니다. 반면 그 벽에 창문이 하나 뚫리면 서로를 쳐다볼 수 있고, 문이 생기면 오갈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건축 요소를 통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컨트롤하는 게 건축입니다. 그래서 저는 건축 설계가 관계를 디자인하는 거라고 믿어요. 좋은 건축은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거죠.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인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토크콘서트에서 이같이 말했다. 

고금리 여파와 인천 검단 붕괴, 전세사기 사태 등으로  부동산시장이 어지러운 가운데 300여명이 넘는 인파는 한 건축학과 교수의 ‘조금은 낭만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였다.

봄이 지나가는 25일 저녁, 서초문화재단 주최로 서울 서초구 반포심산아트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더 유니크(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콘서트는 유 교수의 재치 있는 입담과 함께 ‘레자르 앙상블’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3중주로 구성됐다. 연주곡은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 퐁세의 에스트렐리타(작은별), 슈만의 트로이메라이(환상·공상·꿈) 등이다.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레자르 앙상블. 왼쪽부터 김유경(바이올린), 김세실창겸(피아노), 이수정(첼로). (제공: 서초문화재단)ⓒ천지일보 2023.05.26.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레자르 앙상블. 왼쪽부터 김유경(바이올린), 김세실창겸(피아노), 이수정(첼로). (제공: 서초문화재단)ⓒ천지일보 2023.05.26.

◆돈벌이 수단 전락한 ‘집’… 그게 다일까

전세사기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최근 부동산 시장은 ‘어지럽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시장경제의 울타리 안에서 무자본 갭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수백~1천여채의 주택을 사들이는 ‘빌라왕’ ‘전세왕’ 등을 보고 있자면 회의감마저 든다.

건물, 특히 주택은 사람들이 살면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재화이고,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자본 축적의 수단으로써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날 콘서트에 참석한 관객들도 ‘비슷한’ 생각하지 않았을까. 추억이 깃들고 삶의 터전이 돼야 할 집이 자산 증식 수단으로만 전락해 버린 오늘날, 집과 건물이 주는 다른 의미를 찾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비일상인 ‘건축’에 시선 몰리는 이유는

인기를 끄는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씨, 아동 전문가 오은영 박사,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 등. 이들은 통찰력을 갖고 자신들이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다만 공통점은 생활과 밀접하고 누구나 관심 있을 법하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건축설계사의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것은 독특하다고 볼 수 있겠다.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이나 요리를 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어도 건물을 설계하거나 짓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건설업에서 종사하기를 기피하고, 부동산에선 연신 불편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학과 교수가 전해주는 ‘건물 이야기’는 건물에는 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25일 서울 서초구 반포심산아트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더 유니크(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 서초문화재단) ⓒ천지일보 2023.05.26.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25일 서울 서초구 반포심산아트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 ‘더 유니크(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 서초문화재단) ⓒ천지일보 2023.05.26.

◆유현준에 웃는 관객들… 왜?

콘서트가 끝나갈 즈음 유현준 교수는 “오는 5월 30일에 제 책이 나옵니다. 그걸 꼭 사서 보셨으면 좋겠고, 유튜브 ‘셜록현준’ 구독·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구독자가 96만 6천명인데 아직 3만 4천명 모자랍니다”고 농담을 던졌다.

사람들이 다소 노골적인 유 교수의 멘트를 듣고도 웃음을 터트린 이유는 그가 던진 메시지가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날 콘서트의 주제는 유 교수의 저서와 같은 제목의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였다. 그래서 레자르 앙상블도 별을 주제로 음악을 선곡했다. 다만 콘서트의 내용은 천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 교수는 본인의 저서를 두고 “사람들이 다 무슨 천문학책인 줄 안다”며 “사실은 여러분이 산 곳, 여러분이 지나쳐 온 공간들을 점처럼 찍으면 지도상의 별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우리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느냐에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며 “저는 건축가다 보니 어떤 공간에서 자랐느냐를 중요하게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건물과 사람 그리고 관계에 대해

유현준 교수는 토크콘서트 내내 ‘건물이 사람 간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해 설명했다. 어떤 건물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또 어떤 건물에서 사람들이 가까워지고 어떤 건물에서 사람들이 멀어지는 지와 같은 내용이다.

먼저는 작은 상점들이 즐비한 미국 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가 있다. 유 교수는 뉴베리 스트리트를 두고 “거리가 아름다울 수도 있는지를 처음 느낀 곳”이라고 설명했다. 빨간 벽돌로만 만들어진 거리지만 가게 입구 숫자가 많고 복잡해 사람들이 걷고 싶은 분위기를 형성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흰 건물에 파랑 지붕 건물들이 즐비한 유럽의 ‘산토리니’가 있다. 유 교수는 “형태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재료가 단순해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완벽한 규칙도, 완벽한 불규칙도 아닌 그 중간의 어딘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MIT 채플(성당). 사진은 외관(왼쪽)과 내부. (출처: 위키피디아)
MIT 채플(성당). 사진은 외관(왼쪽)과 내부. (출처: 위키피디아)

유 교수가 MIT 재학시절 자주 갔던 채플(성당)도 있었다. 해당 성당은 에로 사리넨이라는 건축가가 설계했다. 유 교수는 성당 주변에 물이 흐르고, 붉은 벽돌로 만든 원기둥인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물결 무늬로 돼 있어 신성한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또 천장이 뚫려있는 계단형 구조로 설계돼 다른 사무실이 다 들여다볼 수 있는 하버드 건축대학 별동, 캠퍼스 전체가 하나의 통로로 연결돼 있어 다른 학과를 구경할 수 있는 MIT의 인피니티 코리도어 등도 있었다.

특히 유 교수는 일상에서 건축 요소가 관계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설명하면서 “에스컬레이터가 제일 센슈얼(관능적)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컬레이터 위에 남녀가 있으면 관계가 어떤지 가늠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유 교수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은 다른 칸에, 가까운 사람은 옆에 선다”면서 “좀 더 가까운 사람은 다른 칸에 서고, 한 명이 뒤를 돌아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저는 키가 크지 않기 때문에 여성과 비슷한 눈높이가 된다”면서 “하지만 에스컬레이터에 서는 순간 여성을 온전히 가슴으로 안을 수 있는 그런 컨셉이 된다”고 설명했다.

유현준 교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관객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웃음 짓기도 했다. 왕십리에서 태어나 4살 때 구의동 2층 양옥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객들도 본인들이 자라온, 추억이 서려 있는 집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집과 건물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관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부동산 침체와 전세사기에 몸살을 앓는 오늘날 부동산 시장은 조금 씁쓸하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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