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 도시 잠기고 14명 사망
23개 강 범람에 2만여명 대피
280건 산사태로 실종 잇달아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유럽 이탈리아에서 100년 만에 최악의 홍수가 발생해 실종자와 사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탈리아 총리까지 이번 비상사태로 조기에 본국으로 발길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20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북부에 쏟아진 폭우와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14명으로 늘었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州)에는 지난 16일~17일(현지시간) ‘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이 일대 23개의 강이 범람하고 41개에 달하는 도시가 물에 잠겼다. 이달 초 이 지역 마르케에서 발생한 홍수로 2명이 사망한 데 이어서다. 당시 2주 만에 6개월 분량의 비가 한꺼번에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16∼17일 이틀간 200∼500㎜에 달하는 비가 쏟아졌으며 이로 인한 홍수로 약 2만명이 집을 잃었다고 가디언과 AP 통신이 전했다. 이로써 이번 홍수는 이탈리아에서 100년 만에 가장 치명적인 홍수로 기록됐다.
이에 G7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자국의 기록적인 폭우 사태로 조기 귀국할 수 있다고 외신이 일제히 보도했다.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폴리티고와 안사 통신(ANSA)은 G7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멜로니 총리가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기 귀국하고 있다고 전했다.
◆집 잠기고 산사태에 갇히고
폭우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총 280건에 이르는 산사태도 발생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후 이 일대 고속도로를 포함한 도로가 차단됐고, 열차 역시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구조대가 밤새 퍼붓는 비를 맞으며 구조 활동을 펼쳤으나 수만명에 달하는 수재민을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체세나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 파올로 메오니는 현지 라 나치오네 신문에 “밤새 비가 퍼붓는 동안 구조활동을 벌였다”며 “한 어르신과 장애인을 품에 안고 구명보트로 구호대원에게 데려가는 등 수재민들을 차례로 대피소로 이송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은 40㎝ 높이였지만, 새벽 내내 지속된 폭우가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덧붙였다.
포를리-체세나주에 있는 마을인 카바에서 집 안에 갇힌 노부부도 사망자 명단에 포함됐다. 한 이웃은 “우리가 이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물이 차올라 소용없었다”고 전했다.
이뿐 아니라 80세 한 남성은 자택에서 물건을 찾으러 갔다가 익사했고, 허브를 재배하는 회사를 운영하던 한 부부도 집 앞 들판에서 홍수에 휩쓸려갔다. 마르알디(70)라는 이름의 한 노인 시신은 강을 따라 19㎞ 하류로 떠내려가 아드리아해 연안의 한 해변에서 발견됐다. 76세 한 남성은 자신의 정원에서 산사태로 사망했으며, 43세의 다른 남성은 자신의 집에서 물을 퍼내다가 우물에 빠져 숨지기도 했다.
소방관들은 홍수로 피해를 본 중부 마르케 지역을 포함해 전역에서 2000건이 넘는 구조 작업을 수행했다. 지붕 위에서 대피할 곳을 찾던 노인들은 가족과 함께 헬리콥터로 구조됐다.
스테파노 보나치니 에밀리아-로마냐 주지사는 이번 재해를 이 지역을 강타해 28명을 숨지게 한 지난 2012년 대지진과 비교했다. 그는 “피해 복구에 수십억 유로(수조원)가 들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지진 때처럼 모든 것을 재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최대 농업협회인 콜디레티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주택과 상점이 파괴되고 5000개 이상의 농가가 침수됐다.
지난 1950년부터 주방용품을 판매해온 파센차의 한 상점 주인은 “지난 2014년에도 홍수가 났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 같은 홍수를 저도 그렇도 아무도 본 적이 없다”며 “새벽부터 청소하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현지 안사 통신에 말했다.
포를리-체세나 지역 시의 대변인 마테오 라지(Matteo Raggi)는 “문제는 산사태로 피해를 본 산비탈 지역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산사태로 고립됐지만 통신도 안 잡히고 버틸 음식도 없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역대급 자연재해는 최근 전세계에 불어닥친 폭염·폭우 등 기후위기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환경단체 레감비엔테(Legambiente)에 따르면 지난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 그해 310건의 이상 기후가 발생해 총 29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해 9월에는 마르케 지역에서 홍수로 13명이 숨졌으며, 11월 말에는 이시아 섬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어린이들을 포함해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에루이지 란디 Ampro 회장은 “이것은 기후 위기에 관한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