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지원에 속도내는 EU

‘탄약생산지원법’ 도입도 추진

일단 美비축분 채워질 韓포탄

22일 尹-EU 지도부 정상회담

(키이우 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9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포옹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전승절 열병식이 열린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으로 자국에서 5월 9일을 '유럽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전날 발표했다. 2023.05.09
(키이우 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9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포옹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전승절 열병식이 열린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으로 자국에서 5월 9일을 '유럽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전날 발표했다. 2023.05.09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지난 9일(현지시간) 유럽의 날을 맞아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포탄 100만발에 대한 지원 약속을 재확인했다.

EU 정상들이 지난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승인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 지원 방안을 이날 또다시 밝힌 것인데, 정작 우리는 이미 독일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산 포탄이 이 100만발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관심거리다. 자칫 포함될 경우 한러 관계에 큰 변수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U 포탄 지원에 젤레스키 감사

로이터,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포탄 100만발에 대한 지원 약속을 재차 확인했다.

또 “가장 빠른 방법은 회원국에서 보관 중인 탄약을 즉시 반출하는 것으로, 10억 유로(약 1조 4500억원)를 할당해 이 같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상당량의 탄약이 이미 전달됐거나 전달 중이지만, 더 많은 조처가 긴급하게 필요하다”고도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포탄 100만발 제공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한편, ‘더욱 신속한’ 탄약 지원을 거듭 요청했다. 또 최근 전황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러시아는 스스로 정한 목표 기한인 이날까지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를 점령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3월 23일 EU 정상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사흘 전인 20일 EU 외교·국방장관 회의에서 합의된 안인, 즉 향후 12개월에 걸쳐 탄약 100만발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당시 이를 신속히 이행하는 동시에 EU 각국의 재고를 빠르게 비축하는 대책으로 ‘탄약생산 지원법(ASAP)’도 추진했는데,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공동기자회견 직전 유럽의회가 투표 결과,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3일 발의한 ASAP 제정을 위한 이른바 ‘패스트 트랙’ 절차를 밟기로 했다.

통상 EU 집행위가 제안한 초안 시행이 확정되려면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EU 이사회와 유럽의회가 각각 내부 협상을 거쳐 최종 타협안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 지원 등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유럽의회의 경우 관련 절차를 생략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집행위가 지난 3일 발의한 ASAP 초안은 2025년 중반까지 한시적으로 방산업계에 유럽방위기금(EDF) 등 EU 예산을 활용해 최대 5억 유로(7400억원 상당)를 지원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법안이 시행되면 방산업체의 탄약 생산라인 확장, 구형 생산시설 업그레이드 등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될 경우 필요한 자금의 최대 절반까지 EU 예산으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대여방식으로 독일 간 한국산 포탄 33만발

우크라이나 지원에 속도내는 EU와 달리 당장 우리 외교가 안팎의 관심사는 이미 독일 노르덴함항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산 포탄이 이 100만발에 포함되는지 여부다. 러시아 크렘린궁(대통령실)이 지난 4월 “한국산 포탄이 우크라이나 현장에 인도되면 한국도 전쟁 참가국이 된다”며 보복을 경고한 바 있어 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 포탄의 경로에 대해서는 “한국군이 보유한 포탄 중 일부를 미국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이행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여 수량은 33만∼50만발가량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보도가 4월 12일 나왔고, MBC는 같은달 19일 충청도 소재 군 탄약창 기지로부터 대형 화물차들이 ‘폭발물’이라는 표시가 붙은 컨테이너들을 경남 진해항으로 수송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4월 9일 공개된 미국의 도청 문건에는 한국산 155㎜ 포탄 33만발 수송 계획이라는 말과 함께 경남 진해항에서 출발해 독일 노르덴함항으로 포탄이 이송된다고 적혀 있는데, MBC의 보도와 관련 정황이 일치되는 대목이다. 또 다른 문건에는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155㎜ 포탄 33만발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대신 폴란드에 수출하자고 제안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독일의 노르덴함항으로 반출된 것으로 보도된 이들 한국산 탄약은 미군에 대여하는 형식이었지만,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4월 12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포탄 지원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이뤄지도록 개입해야 한다”는 요지로 말한 바 있다. 노르덴함항은 독일에 위치한 항구지만 미군이 실질적으로 점유중인 군사항이다.

한국산 포탄이 대여 방식이라 포탄 소유권이 한국 정부에 있고 나중에 돌려받아야 해 미국이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로도 윤석열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현재 ‘전쟁 중인 국가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윤 정부가 미국·폴란드 등 제3국을 통해 155㎜ 포탄 등을 우회 지원함으로써 사실상 무기 지원에 준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며 우려를 제기한다. 윤 대통령도 지난 4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과 대량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 등을 조건으로 전제한 뒤,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해 이 같은 해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물론 미국 정부는 한국산 포탄 33만발을 곧바로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미군 비축분으로 채워 넣은 뒤 미군의 기존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포탄 지원을 재촉하는 형편인 데다 사실상 미국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라 실상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형식이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U, 다음주 尹 만나 우크라 탄약 직접 지원 요청할 듯”

이런 가운데 오는 22일(한국시간) 한국을 방문하는 EU 지도부가 윤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탄약 지원을 요청할 것이란 보도가 지난 16일 나왔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장기화하며 우크라이나가 지속해서 탄약 부족을 겪고 있는 만큼 지원능력이 있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매체 유랙티브는 이날 EU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한국 방문 기간 윤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직접 탄약을 보내도록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22일 EU 지도부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EU 고위관계자는 “(서방 진영이) 오랫동안 요청해왔지만 한국은 탄약 및 기타 군사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걸 거부하고 있다”면서 “(EU 지도부는) 한국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EU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탄약 생산 추진법을 추진하는 등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생산량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높이는 데까지는 수개월이 더 걸리는 상황이다. 이에 EU는 한국이 이른 시간 안에 군사 지원을 제공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유랙티브는 밝혔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브뤼셀자유대 안보외교전략센터장은 “한국은 단기간에 탄약을 제공할 능력을 갖췄다”며 “한국산 탄약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기준에도 부합한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다량의 장비와도 호환 가능하다는 의미”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공개적으로 진행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한국과 이미 우크라이나 탄약 지원 문제를 논의해왔다”며 “미국은 (한국의) 군사 동맹이지만 EU는 파트너이기 때문에 EU 압박 자체가 한국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미셸 상임의장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마치고 서울을 방문한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뒤 EU 지도부와 정식회담을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9년 취임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미셸 상임의장의 첫 한국 방문이기도 하다. 양측은 한-EU 수교 60주년을 맞아 다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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