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달부터 시범사업 추진
재진만 허용하는 방안 검토 中
의사 반발은 다소 수그러들어
약사들 “시범사업 결사반대”
원산협 “협의체 구성해 논의”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가 다음달 1일부터 불법이 된다.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되면서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온 국민이 의료서비스 이용에 적잖은 편익을 제공한 비대면 진료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이전부터 위기 단계 하향에도 비대면 진료를 운영하기 위해 입법화를 시도했지만, 현재까지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이해관계자인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 등의 갈등으로 인해서다. 정부는 내달부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초·재진 허용 여부 등 시범사업의 범위와 세부안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이에 본지는 비대면 진료를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확인하고, 올바른 법제화 방향을 모색해본다.

2022년 2월 7일 서울 중구 보아스 이비인후과병원에서 오재국 원장이 어제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보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22년 2월 7일 서울 중구 보아스 이비인후과병원에서 오재국 원장이 어제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보고 있다. (출처: 뉴시스)

◆비대면 진료 ‘만족도·안전성’ 긍정 평가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에 의사와 환자의 안전을 위해 2020년 2월에 시작됐다. 국민은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지난 3년 동안 감염병에 취약하거나 반복적 처방이 필요한 만성질환자,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 육아 맘, 바쁜 직장인 등에게 비대면 진료가 얼마나 큰 편의성을 주는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3년 동안 2만 5697개 의료기관에서 국민 4명 중 1명 꼴인 1379만명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 3661만건이 이뤄질 만큼 이용이 활발했다. 또한 경미한 실수 5건을 제외하면 중대한 의료사고가 없었고, 대형 병원 쏠림이나 의약품 오남용 등 우려했던 문제들도 전무했다. 특히 복지부 설문조사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의 88%가 다시 이용할 의사를 밝히는 등 사용자와 의료기관 모두 만족도 및 효과성·안전성을 긍정 평가했다.

이에 정부는 코로나19 종식 이전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핵심 이해 당사자인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 등의 갈등으로 국회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국회에는 초진부터 허용하는 개정안과 재진부터 허용하는 개정안 4건 등 비대면 진료를 상시 제공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 5개가 상정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회에서 비대면 진료의 입법화를 추진한 만큼 입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 포기할 수 없는 만큼 시범사업 형태로라도 비대면 진료의 끈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 당선 후 지난해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약속한 바 있다.

서울시약사회 소속 약사들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반대 대국민 홍보에 앞서 손팻말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서울시약사회 소속 약사들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반대 대국민 홍보에 앞서 손팻말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의사·약사·플랫폼 입장 놓고 갈등 첨예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둘러싼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 간 갈등이 첨예하다.

쟁점은 허용 범위와 의약품 배송 등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비대면 시범사업과 관련해 재진만 허용하고, 비대면 진료 수가를 현행 130% 이상으로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약사회(약사회)는 ‘재진’ 허용에 의협과 뜻을 같이 하면서 약 전달은 ‘약사’ 주도 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플랫폼 업계는 초·재진 모두 열려 있는 현행 한시적 비대면 진료 체계를 유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계 반발을 우려해 시범사업에서 재진만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진 허용은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협의 제안을 받아들인 셈이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초진을 제외한 재진만 허용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시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사들의 반대는 일정 부분 사그라들었다.

플랫폼 업체들은 초진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의약계·산업계·소비자가 함께 ‘범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면 재진만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는 지난 12일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3년 동안 시행해온 ‘한시적 허용’안과 동일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협의체를 구성해 국내 실정에 맞는 새로운 시범사업안을 도출하자”고 제안했다. 원산협은 닥터나우, 굿닥, 메라키플레이스, 솔닥, 헥토클리닉 등 18개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장지호 원산협 공동회장은 “정부와 의료계가 ‘재진 중심’이라는 원칙을 깨기 힘들다면 적어도 경증 환자들에 대해선 초진을 열어줬으면 한다”며 “업계가 너무 우리만의 원칙을 고수하면 결과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바라보는 국민께 혼선을 줄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재진을 중심으로 하되, 초진을 허용하는 예외조항을 두자는 게 장 회장의 견해다.

이제 시범사업의 공은 약사회로 넘어가게 됐다. 약사들의 입장은 또 다르다. 약사회는 팬데믹 상황과 같은 체계의 비대면 진료 약 전달은 ‘절대 수용 불가’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우선 약사회는 비대면 처방을 통한 약물 오남용, 약 배송 과정에서의 안전성 문제 등을 우려하고 있다. 약사회는 지난 14일 ‘비대면 시범사업 저지 결의대회’를 열고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전면 중단을 촉구했다.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은 이날 “정부는 충분한 대화 노력도 없이 국민 생명과 안전은 도외시한 채 플랫폼업자의 이익과 사업 연장만을 위한 시범사업에 몰두하고 있다”며 “보건의료체계를 국민건강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플랫폼업자들 이익 챙겨주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사회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전제로 ▲표준화·개방화된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 구축 ▲환자 중심 약국 선택권 보장 ▲플랫폼 개입 없는 약사 주도의 합법적 약 전달 등을 요구했다. 병·의원 근처에서의 처방약 판매가 거의 유일한 수익원인 약국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대면 약 배송을 결사적으로 저지하겠다는 결의로 보인다. 약사회는 환자의 약국 선택권을 보장하고 약국의 플랫폼 종속을 막기 위해 ‘약사회 플랫폼’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국내 비대면 진료 입법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국내 비대면 진료 입법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국회, 비대면 진료 입법화 노력해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주요 7개국(G7)은 모두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G7 국가 중 코로나19 기간 미국과 영국, 캐나다, 일본, 프랑스가 초진을 허용했고 이탈리아와 독일은 초진을 허용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종료된 이 시점에서는 프랑스와 일본, 영국은 일부 예외 상황만 초진을 허용하고 있고, 미국은 2025년부터는 재진만 허용한다. 별도의 제한 없이 초진이 가능한 국가는 G7 국가 중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캐나다밖에 없다는 게 의협 측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대다수 선진국이 허용하는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국민의 건강과 편익을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의료 인력과 병원이 부족한 도서·벽지 환자 등 의료 취약지·사각지대 환자의 건강권을 챙기기 위해선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국회에는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5건 제출돼 있으나 의료계 출신 의원들의 반대 속에 심의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비대면 진료 업계 한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5개의 법안이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많은 국민이 원하고 방향이 맞는다면 진통이 따르더라도 과감히 갈등을 조율해 입법을 서둘러야 맞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의 한 병원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는 의료 취약지 환자들과 주중 낮 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내원이 어려운 워킹맘 등에게 가뭄의 단비 역할을 했다“면서 “이익단체들의 부작용 우려는 협의 과정을 통해 최소화하고 비대면 진료 법제화에 대한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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