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기술 탈취 횡포 증언
“롯데헬스케어가 도용” 주장
“피해 증명 어렵고 제도 미비”
업계에 숨은 피해 사례 다수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대기업의 기술 탈취 사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중소기업 대표들이 직접 나섰다. 정부와 국회가 나서 중소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도용하지 못하게 보호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본지는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자세히 들어봤다.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혁신의 90% 이상이 스타트업이라는 작은 회사에서 이뤄져요. 이런 식으로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빼앗으면 누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까요?”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만난 정지원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법조인 출신이며 알고케어의 창업자다.

알고케어의 서비스는 의료데이터, 문진데이터, 정밀검사데이터를 분석해 매일 개인에 맞는 영양제를 토출해 주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현재 롯데헬스케어와 아이디어 도용 분쟁을 빚고 있다. 앞서 정 대표는 지난 4월 19일 프링커코리아·키우소·팍스모네·닥터다이어리 대표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의 기술 침탈 실태에 대한 제도 개선을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정 대표는 분쟁이 일어나기 전 롯데헬스케어 측과 나눠온 대화가 담긴 음성 통화 녹음을 들려줬다.

정 대표가 롯데헬스케어와 접촉한 건 2022년 9월이다. 당시에는 롯데헬스케어 대신 롯데 지주에 헬스케어팀이 있었다. 우모 상무(현 롯데헬스케어 사업본부장)와 같은 부서 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투자를 명목으로 잡힌 미팅이었다.

정 대표는 첫 미팅에서 경쟁사가 될 수 있으니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롯데 측에서는 플랫폼(헬스케어 이커머스)을 만들기 위한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두 번째 미팅에서는 우 상무가 이미 롯데 회장의 동의까지 구해왔다고 했다. “이미 알고케어와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말했다. 전략까지 짰다”고 말했다.

세 번째 미팅 후엔 협상이 결렬됐다. 서로 원하는 방향이 달랐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협상이 결렬된 지 이틀 만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알고케어로 연락이 왔다. 알고케어는 제품 출시에 앞서 이미 식약처와 대면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식약처는 정 대표에게 “대면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왜 신문고에 질문을 올렸냐”고 따져 물었다. 알고 보니 롯데 측이 신문고에 알고케어의 제품 사진을 첨부하며 알고케어 솔루션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문의한 것이었다.

정 대표는 곧바로 롯데 측에 항의했다. 이때만 해도 롯데 측은 알고케어와 똑같은 제품을 출시할 의향은 전혀 없고 조금 다른 모델을 만들 것이라는 말만 했다.

이후 다른 헬스케어 기업이 어느 날 전화를 해왔다. 롯데가 “알고케어가 하는 사업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를 조심하라는 경고 전화였다.

전화를 받고 롯데에 다시 항의하니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우 상무는 “알고케어의 사업모델은 몇 년 전부터 자신이 하려고 생각했다”는 답변을 했다. 또한 사업모델을 베낀 게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롯데가 알고케어 제품을 카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올해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부터였다. CES에서 부스에 온 사람이 롯데 부스에서 알고케어 제품과 똑같은 것을 봤다고 말했다. 롯데 측 현장 관계자는 “알고케어의 경쟁사”라고 소개하다가 직접 정 대표가 방문하니 “알고케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정 대표는 “롯데가 현재 밝히고 있는 BM이 알고케어 BM과 아예 똑같은 수준이다”라며 “분석하는 데이터, 사용 방법, 구조, 원리 등이 다 알고케어의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 대표는 롯데헬스케어 측과 합의를 진행하고 있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후 롯데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일문일답이다.

-업계에서 드러나지 않은 피해 사례가 훨씬 많을 것 같다.

대기업이 특정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경우 피해를 입었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해당 분야에서 계속 사업을 하려면 눈 밖에 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해 사실을 알린 후 유사 사례에 대해 상담 요청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이 기술을 탈취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반복된다. 기술을 탈취한 후 해외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으면 면책이 되기 때문이다. 제품이 이미 해외에 있기 때문에 피해기업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완전 똑같은 제품이 아니더라도 이리저리 유사 기술을 부분적으로라도 찾으면 면책된다.

피해기업이 자사의 기술을 도용당했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도용을 당한 부분을 특정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런데 특정 부분을 도용당했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시장에 각각 언제 들어왔나.

알고케어는 2018년 12월에 처음 들어왔고 롯데는 2022년 9월에 들어왔다. 롯데의 제품은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롯데헬스케어는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고 있나.

자사가 하려는 것은 알고케어의 사업모델과 다르다, 알고케어의 사업모델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들의 제품은 ‘보급형’이고 알고케어의 제품은 ‘고급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롯데 플랫폼에서 함께 판매하겠다고 하고 있다.

-롯데헬스케어와의 합의 목표는 무엇인가.

기술 탈취에 대한 사과·인정, 손해 배상, 사업 중단 등이다. 하지만 이견이 많다.

-정부와 국회에서 도와주고 있나.

여야가 모두 도와주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당사자끼리 합의하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조정을 할 뿐 강제력이 없다. 원스톱 솔루션을 줄 수 있는 제도 혹은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오픈 이노베이션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잘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처음부터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베끼려고 접근하는 대기업이 많지는 않지만 협업이 틀어질 경우 차라리 본인이 하겠다고 태도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롯데헬스케어도 그런 사례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베끼려고 다가온 건 아닌 거 같았다. 두 번째 미팅에서부터인가 느낌이 이상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마른내로에 있는 알고케어 사무실에서 롯데헬스케어와의 기술 탈취 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5.15.

-피해기업으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알고케어가 피해에 대한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는 제가 법조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대표님은 기술 탈취를 당했을 때 어느 기관에 가야 하고 미디어에 어떻게 제보를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신다. 때문에 피해를 입었을 때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가 아이디어에 대해 너무 엄격하게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이 아쉽다. 피해 기업에게 피해 사실에 대한 모든 증거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런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 기업이 미팅 등에서 노출했던 사업모델과 대기업의 사업모델이 비슷하면 증거로서 받아들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큰 틀의 법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아이디어 입증에 대해 조금 덜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 수 있도록 법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사례를 찾으면 면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해외사례에서 착안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기술 탈취에 대한 경각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롯데는 우 상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롯데는 오히려 우 상무를 핵심 인재로 여겨 스톡옵션을 줬다. 이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상기 내용은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의 주장과 증거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해당 분쟁과 관련한 이해 관계자의 이견이 있을 경우 ‘천지일보’로 관련 자료 및 입장 표명을 전달해 주기 바랍니다. 아울러 기술 및 아이디어 도용과 관련된 모든 기업의 제보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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