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전승절 78주년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전승절 78주년 열병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러시아에 대한 진정한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평화 협상 가능성은 없다”

2차 세계대전 승리의 날(Victory Day, 전승절)인 9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이 같은 날 각각 한 발언이다.

지난해 2월 세계 평화와 안보 유지에 나서야 할 유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침공으로 러-우크라 전쟁이 발발한 지 440일째를 맞았다. 이날은 전승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쟁 당사국들이 전투 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우방국들의 중재도 불발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쟁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승절인 이날 푸틴 대통령은 78주년 기념식 단상에 올라 8000여명 규모의 러시아군 앞에서 “우리 조국에 대한 진정한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며 “서방은 그들의 배타성을 주장하고 유혈 충돌을 일으키며 러시아 혐오증과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평화롭고 자유롭고 안정적인 미래를 원한다. 어떤 우월적인 이데올로기도 혐오스럽고 용납할 수 없다”며 러시아가 유럽의 평화를 파괴하고 불안을 조장한다는 서방의 입장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내놨다.

전승절은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소련)에 무조건 항복을 한 날을 말한다. 소련 붕괴 이후 서방 연합군과 같이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공화국들도 승리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역시 그동안은 같은 날을 전승절로 기념해 왔으나 올핸 8일로 당기고 9일은 EU와 ‘유럽의 날’을 기념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에 반대하는 이들은 누가 2차 대전 전쟁에서 끔찍한 세계의 악을 물리쳤는지 잊었다”면서 “이들의 목표는 러시아를 붕괴·파괴하며 2차 대전의 결과를 무시하고 세계 안보와 국제법을 완전히 깨뜨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9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2차 세계대전 전승절 78주년 열병식이 진행되고 있다. (타스통신/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2차 세계대전 전승절 78주년 열병식이 진행되고 있다. (타스통신/연합뉴스)

또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선을 긋고 정당성을 내세웠다. 우크라이나가 합법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건 푸틴 대통령의 오랜 견해다.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은 같은 민족이고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억지로 만든 나라, 심지어 봉건 시대의 봉신(封臣)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이 상존한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기에 우크라이나 내에서 벌이는 전쟁을 ‘특별 군사 작전’으로 부르는 건 정당하다고 보는 게 푸틴 대통령의 시각이다.

실제 이날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서방 지도자들이 이끄는 범죄 정권에 의해 인질이 됐다. 서방의 잔인하고 이기적인 계획의 볼모가 된 것”이라면서 “그러나 우리는 국제 테러리즘을 격퇴했고, (점령한) 돈바스 주민들을 보호하며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꼭두각시가 돼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는 시각과 관련해 비판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친 러시아 대통령을 몰아내고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뜻이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인들과 심지어 일부 러시아 국민들도 우크라이나 편에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견해에 힘을 더한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서방 진영 국가들이 주권과 자유 수호를 명목으로 무기와 전쟁 물자를 대규모로 지원하며 전쟁이 더욱 길어지는 양상이다. 강대국들의 전쟁 지원 속 진영대결로 번졌다는 비판 속에 전쟁 피해는 국가 지도자층보다 청년·여성·아이 등 민간인, 특히 약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면서 민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AP/뉴시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AP/뉴시스)

반면 같은 날 유엔 사무총장은 러-우크라 전쟁 종식에 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안타깝게도 나는 현재 평화 협상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러시아는 현재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하기를 꺼리고, 우크라이나 역시 무력으로 (영토를) 탈환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러시아 국영 RT가 전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과 브라질의 중재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유엔 사무총장은 “중재안이 작동하기에는 양쪽이 모두 적대행위를 계속할 거라고 결의에 찬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겨울엔 러시아가, 봄엔 우크라이나가 (대)공세를 할 것이란 이야기가 있다”면서 “향후 평화 협상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승리의 날을 맞아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폰데어라이엔 EU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는 용감하게도 유럽의 이상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응원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인 유럽연합(EU) 가입을 언급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EU의 관계에서 정치적 불투명성을 제거하고 EU 가입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긍정적인 결정을 내릴 때”라면서 내달쯤 이와 관련한 업데이트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회담을 갖고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AP/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회담을 갖고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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