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책봉, 74살 즉위한 찰스 3세
‘새 시대’ 흑인·여성 역할 부각
규모 줄였다지만, 비용 1700억
환호 인파 속 군주제 반대 시위

6일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카밀라 왕비의 대관식이 끝난 후 왕의 행렬이 버킹엄 궁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AP/연합뉴스)
6일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카밀라 왕비의 대관식이 끝난 후 왕의 행렬이 버킹엄 궁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천지일보=방은·최혜인 기자] 찰스 3세가 6일(현지시간) 거의 평생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영국 왕실의 왕관을 썼다. 이로써 영국을 비롯한 14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가 됐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BBC 등에 따르면 찰스 3세 국왕은 이날 런던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은 채 “모든 종교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국왕으로서 정의와 자비를 실현할 것을 맹세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의 본보기로서 나는 섬김받지 않고 섬길 것”이라고 다짐했다.

찰스 3세는 이날 오전 10시 20분께 아내 커밀라 왕비와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을 떠나 대관식이 열리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향했다. 대관식은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했다. 찰스 3세는 성유를 바르는 도유식에 이어 무게가 2.23㎏에 달하는 성 에드워드 왕관을 썼다.

영국 왕실 일가를 포함해 전 세계 국가원수급 인사 등 하객으로 가득 찬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에서는 “신이시여 찰스 국왕을 지켜주소서”라는 외침이 여러 차례 울려 퍼졌다. 이를 통해 신과 국민 앞에서 찰스 3세 국왕이 ‘이견이 없는(undoubted)’ 왕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공식적으로 ‘찰스의 시대(Carolean Era)’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때보다 참석 인원을 1/4 수준으로 줄여 국가원수급 인사 100여명을 포함해 203개국 대표를 초청했다. 이날 대관식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질 바이든 여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등 22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 정부 대표로는 한덕수 총리가 자리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6일 대관식에서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통치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2년 만든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6일 대관식에서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통치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2년 만든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948년 태어나 9세에 왕세자로 책봉된 뒤 거의 평생을 영국의 왕이 되기를 준비해온 찰스 3세는 지난해 9월 모친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면서 국왕으로 즉위했다. 이번 대관식은 영국 왕실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이 치러진 지 70년 만에 열리는 초대형 이벤트다.

◆‘새 시대’ 다양성과 친환경 강조

대관식에는 현대 영국 사회를 반영해 다양성과 친환경 가치가 강조됐다. 다양한 종교와 언어를 포용하고 여성, 흑인에게도 주요 역할을 부여했다.

또 불교·힌두교·유대교·이슬람교·시크교 등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대관식에 참석해 찰스 3세에게 비종교적인 대관식 물품을 전달했다.

영어와 함께 웨일스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아일랜드어로 찬송가가 울려 퍼졌으며 여성 사제가 처음으로 성경을 낭독하고 흑인 여성 상원 의원, 카리브해 출신 여성 남작이 대관식에서 역할을 맡았다.

왕비의 왕관, 예복 일부와 장갑, 의자 등은 새로 제작하지 않고 선대 왕과 왕비들의 것을 재사용했다. 성유는 동물 친화적 재료로, 초청장은 재생용지로 만들었다.

◆축복-반대 동시에 울려 퍼진 대관식

“내 왕 아니다” “군주제 폐지하라”

찰스 3세 국왕이 머리에 왕관을 쓰고 새로운 국왕의 시대를 알린 이날 1000년 전통 속 성경을 낭독하며 축복을 나누는 모습이 있는 반면, 한쪽에선 군주제를 폐지하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국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이 열린 6일(현지시간) 런던 시내에서 반군주제 시위 참가자가 '내 국왕이 아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이 열린 6일(현지시간) 런던 시내에서 반군주제 시위 참가자가 '내 국왕이 아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왕실의 행렬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하는 길을 지나갈 때 반군주제 단체인 리퍼블릭(Republic) 등 대중의 1/4가량이 대관식 반대 시위를 벌였다.

리퍼블릭은 각종 현수막을 설치하거나 플래카드를 든 채 “내 왕이 아니다(NOT MY KING)” “키슈(quiche)를 먹게 하라”라고 외쳤다. 시위 참가자인 콜린은 “선출되지 않은 사람을 국가 지도자로 세우는 건 완전 잘못된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들이 외친 키슈는 돈만 쓰는 왕실이라는 이미지가 부담돼 내놓은 시금치가 든 파이 등을 말한다. 이번 대관식도 비용이 최소 1억 파운드(한화 약 1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 왔다.

이와는 반대로 축복되고 경건한 대관식 날에 굳이 저렇게 반대 시위를 벌여야 하는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다수였다. 노샘프턴셔에서 온 한 여성은 “오늘은 사랑스럽고 행복한 날이다. 시위자들이 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대관식을 위해 북아일랜드에서 왔다는 베스 글래스는 “리퍼블릭이 살 수 있는 우리 국경 바로 너머의 좋은 공화국을 알고 있다. 이들이 저쪽으로 가서 살 것을 강력히 제안한다”며 시위 참가자들을 비난했다.

이날 당국은 대규모 철통 보안 작전을 예고한 대로 경건한 대관식을 풍자하거나 비꼬는 이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오전 7시 30분께 그레이엄 스미스 리퍼블릭 대표와 시위 참가자들 5명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들에게는 ‘치안 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이와 함께 환경 운동단체 소속 회원들도 최소 19명이 현장에서 붙잡혔다.

당초 대관식을 저지하려는 이들이 1700명가량 운집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정부 차원의 강력한 경고가 내려지면서 시위 인원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카밀라 왕비의 대관식이 끝난 후 왕의 행렬이 버킹엄 궁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AP/연합뉴스)
6일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카밀라 왕비의 대관식이 끝난 후 왕의 행렬이 버킹엄 궁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 대관식에 앞서 영국 정부는 행사에서 도로·철도 등을 막는 시민단체를 1년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공공질서법’을 발효해 논란이 일었다. 이 법은 당초 대관식이 끝나고 발효될 것으로 관측됐으나 이보다 앞서 찰스 3세 국왕의 승인하에 3일(현지시간) 발효됐다. 이에 최근 손바닥 등 몸을 도로에 붙여 통행을 막는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이 법을 대관식 때문에 앞당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 경찰은 대관식에 앞서 경찰력 2만 9000명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번 철통 보안 작전을 ‘황금 보주 작전(Operation Golden Orb)’으로 이름 붙이고 탐지견과 특수 부대 출신의 경찰관, 저격수까지 투입시켰다. 영국 경찰은 “대관식 당일을 해치려는 이들에게 관용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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