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반응 속 다양한 분석

 

 

(출처: 연합뉴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북한이 5일에도 대북 확장억제 강화를 담은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지난달 27일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 발표 이후 거의 매일 강도 높은 반발성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례적이라는 반응 속 그 속내에 관심이 쏠린다.

남측 정부는 북측의 이런 행태가 그만큼 워싱턴 선언에 대한 두려움을 방증하는 게 아니겠느냐며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 척도로 활용하려 드는 모양새다.

◆통신, 5번째 연재물 통해 비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고조되는 비난과 조소, 심각한 우려를 몰아온 괴뢰 역도의 구걸행각’이라는 제목의 5번째 연재물을 보도했다. 지난 1일부터 닷새 연속 같은 제목으로 해외와 남측 언론을 인용하며 워싱턴 선언을 비난하는 내용을 실었다.

이날 통신은 중국 매체를 인용해 “미국은 일본, 남조선과 ‘남방 3각’을 형성하려 한다”면서 “동북아에서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유지된다면 앞으로 대결 위험성이 조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미가 확장억제를 강화할수록 북한은 더 큰 도발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통신은 “미국 핵무기가 남조선을 들락날락하면 북이 기가 죽어 물러설까, 아니면 더 강력한 핵·미사일을 개발할까”라고 반문하며 미국이 전략자산 전개를 늘리면 무기 개발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결국 한반도 정세 불안정에 대한 책임을 한미에 돌리며 군사력 증강의 구실로 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북이 핵·미사일을 사용하지 않게 하려면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어야지, 미국·남조선 연합훈련을 증강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라고도 따져 물었다.

또 농업 근로자들이 전날(4일) 모임을 갖고 한미를 비난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통신은 “침략과 전쟁의 괴수 미제와 사대 매국의 무리 역적패당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세기를 이어오는 반미·대남 대결전을 총결산하고야 말 영웅 인민의 멸적 투지와 필승의 신심은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여정 막말 시작으로 연이은 비난

워싱턴선언 발표 이후 북한은 지난달 29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입장 발표를 시작으로 연이은 비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통신에 따르면 김 부부장은 바이든 대통령과 윤 대통령을 향해 각각 “미래가 없는 늙은이”, “그 못난 인간”이라고 막말 비난하는 한편 워싱턴 선언으로 인해 “보다 결정적인 행동에 임해야 할 환경이 조성됐다”고 위협했다.

이튿날 통신도 논평에서 “(한미가) 반공화국 핵전쟁책동에 계속 집요하게 매여 달리려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이) 상응한 군사적 억제력을 키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강변했다.

이달 2일에는 북한 신천박물관에서 열린 청년학생 집회에서 한미 정상을 겨냥한 ‘허수아비 화형식’이 진행됐다고 통신이 밝혔다. 북한은 그간 한미 연합훈련 등을 계기로 각계각층의 시위를 조직해 대미·대남 적대감을 고취해왔지만, 한미 정상을 겨냥한 화형식까지 진행한 것은 전례가 없어 이목이 쏠렸다.

지난 3일에는 북한 당국과 관영매체를 넘어 각종 사회단체를 비판 대열에 동참하도록 하고 대미·대남 메시지를 담은 선전물 배포 활동을 전개하는 등 워싱턴 선언에 대한 적개심을 전국 각계각층으로 확산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날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도시인 개성시에서는 노동계급과 조선직업총동맹원이 참가하는 성토모임이 열렸고,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간부들과 여맹원들의 복수결의모임도 중앙계급교양관에서 개최됐다.

◆대형도발 포석‧체제결속 관측

북한이 워싱턴 선언을 채택한 한미 정상을 향해 막말 담화로 포문을 열더니 ‘허수아비 화형식’까지 벌이다가 주민 대상으로 범위를 넓히는 등 연일 한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며 힘을 쏟고 있는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의 반발은 그들 입장문이나 논평에 이미 들어가 있다는 평가인데, 한반도 정세 불안정에 대한 책임을 한미에 전가하며 자위적인 차원임을 강조하는 등 국방력 강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형 도발을 저지르더라도 그 책임은 북한이 아닌 한미에 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사전 포석을 깔아둔 것으로도 여겨진다는 진단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한미와 대결 구도가 더욱 선명해지는 상황에서 대내 체제결속 의도도 바탕에 깔렸을 것이라는 전문가 관측도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도 전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화형식 집회 보도와 관련해 “북한이 내부용인 노동신문을 통해 이런 동향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으로 볼 때 외부의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주민 통제에 활용하려는 선전적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이례적일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두고 윤석열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등치해 이용하려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4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담에서 “북한이 워싱턴 선언에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을 보면 이 선언이 얼마나 강력하고 효과적인 것인지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두려워하니 잘 된 선언이라는 얘기다.

또 워싱턴 선언은 한미 상호 방위조약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도 했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 방식과는 달라서 제기되는 ‘빈껍데기’ 논란을 의식한 것인데, 일단 핵협의그룹(NCG)이라는 협의체를 신설하기로 하는 등 한 발 더 나갔다는데 방점을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윤 정부가 큰 성과라고 주장하는 NCG조차도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뿐더러 그간 이런 한미 간 협의체가 여러 문제점을 만들어 낸 사례(한미워킹그룹)를 들어 되려 한국 측의 핵 관련 움직임을 감시하는 통로로 쓰이는 등 부정적인 요소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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