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협의체’ 韓핵무장론 의식한 결과물… 전술핵 배치‧핵사용 결정권도 없어

미 전략자산 자주 전개‧연합훈련 강화… 美, 韓독자핵무장론 포기에 주력한듯

(워싱턴=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환영사에 답사를 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4.26
(워싱턴=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환영사에 답사를 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4.26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워싱턴 선언’을 두고 미국 측의 핵 기득권만 확인한 결과였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핵 기득권을 꽉 쥔 채 한국의 자체 핵무기 개발 포기가 미국의 주된 관심사였고 그 대가로 내놓은 미국의 핵사용 결정 과정 참여를 위한 한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 설치는 부차적인 요소였다는 취지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통령실이 큰 성과라고 주장하는 NCG조차도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뿐더러 되려 남북 간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 역할을 했던 한미워킹그룹 같은, 즉 미국의 요구를 관철하는 창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핵협의그룹’ 상징적 의미만

한미 정상이 이날 발표한 워싱턴 선언의 핵심은 대북 확장억제 가운데 특히 핵전력 부분에 대해서 협의하는 새로운 협의체인 한미 NCG 신설, 확장억제 일환으로 미 전략자산인 핵추진 잠수함 한반도에 자주 전개, 그리고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하지 않고 미국의 정책인 확장억제를 중심으로 북핵 문제에 대응한다는 것 등이다.

윤석열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한미 NCG는 핵공유를 바라는 한국 정부와 이에 부정적인 미국 정부가 절충한 결과물이다. 갈수록 고도화되는 북핵‧미사일 위협이 극대화됨에 따라 한국민의 불안이 커지면서 불거져 나오는 한국 내 자체 핵무장에 대한 일부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얘기다.

한미 NCG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식 다자협의체인 핵공유와는 달리 신속하고 상시적인 협의가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앞서 여러 한미 간 협의체들이 긍정적인 역할만을 해오지는 않았다는 점에서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제도화한 확장억제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란 상징성도 있다.

기존의 한미 양국 간 확장억제협의체가 있었지만 상시 소통하는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양국 외교·국방부 차관이나 실국장급이 참가하는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는 부정기적으로 개최하다가 윤 정부 출범 이후 매년 열기로 합의했다. 국방부 정책실장급이 참여하는 억제전략위원회(DSC)도 부정기적인 채널이다.

다만 한미 양국 간 핵무기 사용 관련 논의의 틀은 꾸렸지만, 나토식 핵공유 방식처럼 기획 단계부터 관여하는 게 아닌 참여하는 방식이 제한적‧한정적일 뿐인데다가 유사시 핵 버튼을 관할하는 의사 결정 구조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점은 한계다. 또한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도 아니다.

◆“美관심사는 한국 핵포기”

한미 핵협의그룹이 상징적인 협의채널일 뿐 실효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건 이 때문이다. 미국이 워싱턴 선언에서 대신 미국의 핵탑재 전략자산, 특히 핵잠수함 한반도 수시 전개와 한국군 재래식 자산을 통합해 북한 위협을 억제하는 연합훈련 등을 강화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한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작동한 셈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핵잠수함(SSBN), 장거리 폭격기 등 3대 핵전력 가운데 SSBN을 한국에 기항토록 한다는 사례도 들었다. 미국은 2만 810t급의 컬럼비아급 SSBN을 2031년까지 12척 확보할 계획이다. 이 잠수함은 현재 운용 중인 14척의 오하이오급(1만 8750t급) SSBN을 대체하는 신형 핵잠수함이다. 하지만 미측의 전략자산 전개도 훈련과 관련한 모든 비용을 한국에 청구하게 돼 ‘생색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 미국의 관심사는 결국 한국의 독자핵무장론 포기에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인데, 실제 미측은 한국이 독자핵무장론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게끔 하는데 주력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선언문에서도 윤 대통령의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를 확인하는 내용이 상단에 배치됐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한국 일각에서 나오는 전술핵 배치나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목소리에 상당한 골머리를 앓았던 것 같다”면서 “미국이 별도의 문건까지 내서 선언을 한 건 이런 내용을 못박는데 방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한국으로부터 촉발될 수 있는 핵 도미노 현상 차단과 맞물린 핵 기득권 유지에 목적이 있었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의 신문들도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에 관한 미 정부 고위 관리들과 전문가 평가 등을 인용해 한국이 자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의 핵사용 결정 과정에서 더 큰 역할을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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