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 비너스' 홍보 캠페인도 혹평·세금 낭비 지적

슬로베니아에서 찍은 사실이 들통난 이탈리아 관광 홍보 영상.[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슬로베니아에서 찍은 사실이 들통난 이탈리아 관광 홍보 영상.[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탈리아 관광부가 전 세계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든 홍보 영상 중 일부가 실제로는 슬로베니아에서 촬영된 사실이 들통나 논란이 되고 있다.

2분 52초 분량의 홍보 영상에는 한 무리의 젊은 남녀가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와인을 마시며 웃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전형적인 이탈리아의 풍경으로 묘사된 이 장면이 실제로는 인접국인 슬로베니아의 코타르 지역에서 찍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탈리아 일간지 '일 파토 쿼티디아노'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눈 밝은 누리꾼들은 영상 속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병에 코타르 와인 라벨이 부착된 사실까지 찾아냈다.

또 다른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네덜란드의 한스 페터르 스헤이프 감독이 이 장면을 연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촬영지·촬영 소품·연출자까지, 가장 이탈리아다워야 할 영상에 이탈리아적인 요소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탈리아 관광부가 '경이를 열다'(Open to Wonder)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새 관광 캠페인은 이 문제 외에도 그전부터 조롱받았다.

관광부는 새 관광 홍보대사로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발탁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명작 '비너스의 탄생'에서 묘사된 비너스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현재의 인플루언서로 재탄생한 것이다.

관광부의 새 캠페인에서 비너스는 가상 인플루언서가 돼 미니스커트, 청재킷 등 현대적 의상을 입고 이탈리아의 주요 관광명소를 누빈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셀피를 찍고, 콜로세움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코모호숫가에서 피자를 먹는다.

비너스는 이러한 모습을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뒤 "난 서른 살이에요. 그래요. 조금 더 나이가 많을 수도 있죠"며 "난 가상 인플루언서예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누구나 아는 관광 명소를 배경으로 한 데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인 피자를 먹는 장면까지 등장하자 소셜미디어(SNS)에선 이 캠페인에 대해 '촌스럽다', '창피하다', '진부하다' 등 혹평이 잇따랐다. 정부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예술 평론가 출신인 비토리오 스가르비 문화부 차관은 "비너스는 그렇게 차려입을 게 아니라 그림 속처럼 나체로 나오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경이를 열다'가 무슨 말이죠? 무슨 언어인가요?"라며 캠페인 제목도 형편없다고 조소했다.

이번 홍보 캠페인에 900만 유로(약 132억원)가 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미술사학자인 토마소 몬타나리는 "기괴하고, 터무니없는 돈 낭비"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다니엘라 산탄체 관광부 장관은 900만 유로라는 돈은 전 세계 공항과 도시에서의 홍보를 포함한 총비용이라고 해명하며 "비너스를 인플루언서로 묘사한 것은 젊은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로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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