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년간 축조된 월대 복원 단서 확보
축조 이후 4단계의 변화 과정 거쳐
임금ㆍ백성 만나던 공간, 10월 대중에 공개

문화재청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ㆍ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은 경복궁 앞에 펼쳐진 광화문 월대 남쪽 어도 계단지와 소맷돌 지대석 모습.ⓒ천지일보 2023.04.25.
문화재청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ㆍ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은 경복궁 앞에 펼쳐진 광화문 월대 남쪽 어도 계단지와 소맷돌 지대석 모습.ⓒ천지일보 2023.04.25.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경복궁 권역의 발굴조사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행 중입니다. 경복궁의 역사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데 있어서 ‘광화문 월대’ 발굴은 의미가 매우 큽니다.”

25일 서울 오전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광화문 월대의 복원ㆍ정비 성과 및 복원계획 발표’ 언론간담회에서 김연수 국립문화재연구원장은 이같이 말했다.

김 원장은 “오늘 공개된 월대 발굴조사 성과는 조선시대 영건 기록이나 사진 자료로만 알려진 곳”이라며 “이번 발굴을 통해 경복궁이 가진 상징성이 더욱 빛날 것으로 보이며, 경복궁에 대한 대단한 위용을 자랑할 것”이라고 전했다.

1890년대 광화문과 월대 전경(도서출판 서문당 제공) ⓒ천지일보 2023.04.25.
1890년대 광화문과 월대 전경(도서출판 서문당 제공) ⓒ천지일보 2023.04.25.

◆문헌 속에 기록된 광화문 월대

월대(越臺, 月臺)란 궁궐의 정전과 같이 중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臺)를 말한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덕수궁 대한문 등에서 확인되는데,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경복궁 영건일기’ 기록과 1890년대 이후로 전해지는 사진 자료에 따르면, 광화문 월대는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한 기단석과 계단석, 그리고 난간석을 두르고 내부를 흙으로 채워 만든 건축구조물이다. 실제로 1866년 3월 3일자 경복궁 영건일기에 보면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 모군이 궁 안에 쌓아둔 잡토를 지고 왔는데, 실로 4만여 짐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4.25.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4.25.

◆월대 규모, 구조 등 확인

이번 월대 관련 발굴 성과는 세 가지다. 월대 규모와 구조 확인, 월대 축조방식(건축기술) 확인이다.

복원ㆍ정비 성과에 따르면, 월대의 전체 규모는 남북 길이 48.7m, 동서 너비 29.7m로 조사됐다.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너비 약 7m의 어도지 기초시설, 월대의 서편과 달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동편의 모습을 통해 고종 대 경복궁 중건 시 월대의 전체 모습 등을 확인했다. 특히 광화문 월대의 복원을 위한 실물 자료를 확보한 것이 이번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다.

광화문 월대는 동ㆍ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 너비 30~50㎝, 두께 20~40㎝)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월대의 남쪽에는 장대석을 이용해 계단을 조성했는데, 이 가운데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부는 소맷돌을 이용해 동ㆍ서 계단과 분리했다. 어도계단지의 경우 일제강점기 전차선로에 의해 일부 훼손됐으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돼 월대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ㆍ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은 광화문 월대 유적 현장 모습 ⓒ천지일보 2023.04.25.
문화재청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광화문 월대의 복원ㆍ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은 광화문 월대 유적 현장 모습 ⓒ천지일보 2023.04.25.

◆고종년간 월대 축조 이후 4단계 변화 거쳐

특히 고종년간 월대 축조 이후 크게 4단계의 변화 과정이 있음이 확인됐다. 1단계에서는 월대 축조 당시로 남쪽에 경계가 나눠진 3개의 계단이 존재했으며, 당시 월대의 평면형태는 ‘역철자형’이었다. 2단계에서는 중앙의 어도계단지가 경사로로 변화되고, 3단계에서는 경사로의 범위가 확장되고 계단이 동ㆍ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됐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단선(외줄) 형태의 전차선로가 설치됐다. 4단계에서는 전차선로의 복선(겹줄)화로 월대가 파괴되면서 난간석 등이 철거되고 광화문의 이건과 함께 도로로 사용됐다.

‘광화문 월대’ 발굴 성과 전하는 김연수 국립문화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5.
‘광화문 월대’ 발굴 성과 전하는 김연수 국립문화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5.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에 훼철된 이후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월대 부재(난간석, 하엽석 등)를 재사용하고, 문화유산수리장인 등의 전문가와 함께 전통재료ㆍ기법을 적용해 월대를 진정성 있게 복원할 예정이다.

광화문 월대 복원공사가 마무리되는 오는 10월에는 ‘광화문 월대 복원 기념행사’를 궁중문화축전 등과 연계해 개최할 예정이다.

정성조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은 “광화문은 경복궁의 얼굴로서 과거 역사를 비춰볼 때 매우 의미가 크며, 광화문 역사성을 되살리려면 월대 복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광화문의 안과 밖을 이어주는 공간이자, 백성과 임금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인 월대 복원 성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 매우 뜻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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