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모호성’ 깨고 중·러에 소신 발언한 윤 대통령
中, 주중대사에 윤 대통령 ‘대만 발언 항의’ 내용 공개
대만 관련 언급에 영향 미치려는 시도… 한중관계 변수
러, 북한에 최신 무기 지원까지 거론해 위협 수위 높여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로 한국과 중·러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2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의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 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을 계기로 대만 문제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해 보다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경우 한·중, 한·러 관계 전반이 더욱 악화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로 한국과 중·러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2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의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 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을 계기로 대만 문제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해 보다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경우 한·중, 한·러 관계 전반이 더욱 악화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방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외교’로 한국과 중·러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2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의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19일 윤 대통령은 외신과 한 인터뷰에서 미·중, 미·러 갈등 격화 속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겨냥해 날 선 발언을 내놓으면서, 그간 한국 외교가 유지해온 ‘전략적 모호성’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평가다.

앞서 중국은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을 겨냥해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거칠게 반발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밝힌 윤 대통령 발언에 맞대응해 북한에 대한 무기 지원까지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위협 수위를 높였다.

중국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출국을 하루 앞둔 23일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통해 윤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힘에 의한 대만 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데 대해 지난 20일 공식 항의한 내용을 뒤늦게 공개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이날 공개된 발표에 따르면 쑨웨이둥(孫衛東) 외교부 부부장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거론한 뒤 “이 발언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중국 측은 엄중한 우려와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고 대만은 분할할 수 없는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며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 중 핵심이며 어떤 외부 세력의 개입이나 간섭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국 측이 한·중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며 대만 문제에 있어 언행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났다’는 제목의 23일 사설에서 한국의 중국 공세가 한미정상회담과 관련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설에서 “윤 대통령의 이번 대만 문제 발언은 1992년 중·한 수교 이후 한국 측의 최악의 입장표명”이며 “대만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가 아닌 내정으로, 남북문제와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지도자가 방미 전에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미국에 충성심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하게 한다”면서 “중국을 모욕해 미국의 환심을 사려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또 환구시보는 “한국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미국의 총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중 간에 대만 문제를 놓고 벌이는 이 같은 공방은 2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 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을 계기로 대만 문제에 대해 보다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경우 한·중 관계 전반이 더욱 악화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대만 관련 문구가 향후 한중관계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 의한 무력통일 시도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등의 표현이 회담 성명문에 포함될 경우 한·중 관계가 빠르게 냉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국무원 고문인 스인훙 인민대 교수는 지난 1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각국의 행동에 대한 중국의 참을성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중국은 미국이 극도로 나쁜 일을 했을 때만 상응 조치를 취하겠지만 한국은 조금만 그렇게 해도 타깃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언급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발언을 둘러싼 한·러 긴장도 증폭되고 있다. 타스 통신은 지난 19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분쟁에 개입하는 걸 의미한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그가 연임 제한에 걸려 출마를 못 했을 때(2008~2012년) 대신 대통령을 지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연방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에 “우리의 적을 도우려고 열광하는 이가 새로 등장했다. 우리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다면 한국 국민이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고 쓰며 노골적으로 보복을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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