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네 가지 모양의 보주로 구성

도자기 표면의 갖가지 문양

도자기의 추체임을 알아야

도 1-1. 녹유 보주문 사리기의 외와 내호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도 1-1. 녹유 보주문 사리기의 외와 내호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국립경주박물관에는 매우 큰 녹유 항아리가 전시되어있다. 천지일보에 도자기를 연재하며 <만병>과 <보주>에 몰두하며 추구하였던 때라 비로소 몇 달 전에 이 작품이 보였으며 매우 놀랐다. 바로 이 작품이 그 두 가지 난제를 풀어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채색분석하면서 그 두 가지에 접근하려면 <물>에서 시작해야 함을 새삼 깨달았다.

<물>이 만물생성의 근원임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용이 물의 형상화’이고, ‘보주가 이 세계의 물을 압축한 것’이라 설명하면 접근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높이 39㎝에 이르는 큰 항아리로 국보이지만 무엇인지 몰라 그리 널리 소개되지 못했다. 이 바깥 항아리 안에 사리를 담은 작은 안 항아리가 있다(도 1-1).

국립박물관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 뼈 항아리는 안 단지[內壺]와 바깥 항아리[外壺]로 나누어져 있는데, 안 단지에는 뼈를 담아 바깥 항아리에 넣었다. 불교의 도입으로 상류사회와 승려들 사이에 불교식 화장법이 유행하면서 유골을 넣어 매장하는 뼈 항아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특히 경주 남산에 묻어 둔 경우가 많다. 남산을 불상 조각이 많아 불국토 혹은 극락세계로 인식했던 것 같다. 항아리 안팎에는 녹색 유약이 고르게 입혀져 있는데, 이 유약은 구리에 납을 넣어 만든 것으로 800℃ 정도에서 녹는다. 항아리는 ‘원․꽃․나뭇잎․마름모무늬 등'의 도장 무늬’로 찍어 화려하게 꾸몄다. 바깥 항아리의 어깨에는 같은 간격으로 ‘도깨비 얼굴모양’을 한 네 개의 꼭지를 달았는데, 뚜껑의 꼭지와 네 개의 꼭지를 끈으로 연결하여 묶었다. 도깨비는 나쁜 귀신의 접근을 막으려 한 벽사(辟邪)적인 의미로 여겨진다.” 갖가지 보주를 ‘원․꽃․나뭇잎․마름모무늬 등'으로 알고 있으니 현재 미술사학계 수준이 대략 이렇다. 이제 독자들도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뼈단지라 하기보다는 ‘녹유 보주문 사리기’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화장한 후에 남는 것 일체를 ‘사리’라 부른다. 표면의 갖가지 문양들은 갖가지 다른 보주 모양이다. 원이나 사각 모양 보주 주변에 점으로 된 수많은 보주를 둘리고 있는 것은 원이나 사각 모양 보주로부터 무량한 보주가 발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보주들은 빼곡하게 사리기 표면을 장엄하고 있다.

나의 이론에 따르면, 보주들은 ‘무량한 물’을 상징하며 내부의 가득 찬 물을 표면에 보주 문양으로 가득 채운 셈이다. 그리고 무량한 보주들은 물론 네 군데의 용이 크게 벌린 입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작은 안 항아리의 표면 문양은 큰 항아리와 대동소이하고 형태도 같다. 만병은 보주를 항아리 모양으로 만든 것이므로 만병을 거쳐 보주로 인식하도록 연재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미 통일신라에 녹유를 입혀 훌륭한 만병을 창조한 신라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이보다 항아리가 만병과 보주임을 올곧게 웅변하는 도기가 있을까. 연재에서 자기만 다루어 왔지 도기는 다루지 못했는데 도기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을 연재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어 기쁘다.

도 1-2. 녹유 보주문 사리기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도 1-2. 녹유 보주문 사리기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도 2. 갖가지 보주 문양을 도장으로 만들어 하나하나 찍어서 문양을 구성했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도 2. 갖가지 보주 문양을 도장으로 만들어 하나하나 찍어서 문양을 구성했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녹유 한 가지 색으로 보면 알아보기 어려우므로 채색분석하여 보니 갖가지 모든 문양이 보주를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도 1-2). 보주들을 채색분석해 보니 네 가지 다른 모양의 보주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았다(도 2). 네 가지 다른 보주 모양을 각각 도장으로 만들어 그 수많은 보주를 찍어서 재구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도 3-1. 사리기 석함과 녹유 보주문 사리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도 3-1. 사리기 석함과 녹유 보주문 사리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도 3-1. 사리기 석함과 녹유 보주문 사리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도 3-1. 사리기 석함과 녹유 보주문 사리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역시 경주 남산 발견 국보 통일신라 녹유 보주문 사리기는 각지게 아름답게 다듬어진 화강암 석함 속에 봉안했었다(도 3-1, 도 3-2).

도 4. 도제 보주문 사리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도 4. 도제 보주문 사리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21.

그런가 하면 반드시 녹유로만 만들지 않았으며 도기로 만든 것도 있다. 그러나 도기라 해도 반드시 무량한 보주로 장엄했다(도 4). 그런데 만병에 둥근 보주를 가득 담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을 중앙아시아 키질 석굴의 벽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도 5. 드로나(Drona) 분사리도. 키질 석굴(원굴사 벽화, 5~6세기) ⓒ천지일보 2023.04.21.
도 5. 드로나(Drona) 분사리도. 키질 석굴(원굴사 벽화, 5~6세기) ⓒ천지일보 2023.04.21.

기원후 5~6세기에 굴착된 원굴사(原窟寺) 벽화에 석가모니의 제자인 드로나(Drona)가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석가모니의 사리가 가득 한 항아리가 가리키는 바가 매우 크다(도 5). 그로 인해 분사리(分舍利)가 이루어진 이야기는 유명하다.

화장한 후에 왜 보주들이 항아리 가득 들어 있을 리 없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그린 팔상도(八相圖) 가운데 마지막 광경에 죽음에 이르러 화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화장한 불길 속에서 수많은 가지각색의 보주들이 비 오듯이 쏟아지는 갖가지 색의 영롱한 보주들이 있으나 물론 학계에서는 보주로 인식하는 경우는 없다.

아, 드로나가 들고 있는 항아리가 보주로 가득한 만병(滿甁)이 아닌가. 만병은 곧 보주다. 이제는 그 벽화의 그림에서 보이는 항아리가 분명히 보주가 가득 찬 만병으로 보이고, 만병은 곧 보주로 보인다. 항상 마음에 간직해오던 키질 석굴 벽화의 만병 사진을 이번에 널리 알리게 되어 기쁘다.

도자기 연재 마지막 회를 마무리하며,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두 해 동안 쉼 없이 달려오며 고려청자와 조선분청자를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의 많은 격려가 있어서 고마운 마음 그지없다. 도자기 연재는 도자기가 단지 그릇이 아니라, 건축-조각-회화-금속기 등 모든 장르를 탄생시키는 근원적인 장르로 끌어올리는 작업이었음을 독자들은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도자기의 원류와 상징>이란 미증유의 주제로 다루어 왔으므로 처음에는 당황했을 것이다. 기존의 세계 여러 나라의 도자기 전공자들이 다룬 적이 없는 형이상학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도자기가 ‘만병’이며 ‘보주’라는 조형세계에서 궁극적 진리를 전해주는 고차원의 세계라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하는 글이라 고난도의 주제를 쉽게 쓰려니 매회 고민이 많았으나, 독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두 해였다.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친 용어이지만, 도기는 한 점도 다루지 못했다. 그래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통일신라 시대의 걸작인 녹유 사리기를 다루기로 했다. 실은 신석기시대의 즐문도기와 삼국시대의 도기를 다루어야 하나 워낙 방대해서 언제 모두 다룰지 모르겠다. 하늘이 도와주면 서양의 그리스 도기를 비롯하여 세계의 도자기를 함께 다루는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병>과 <보주>를 모르면 도자기 연구를 올바로 진행할 수 없으며, 종래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학계에서 쓰여 온 도자기 표면의 문양의 명칭이 그 일체가 오류임을 분명히 밝혀두고 연재를 마친다. 도자기 표면의 갖가지 문양이 바로 도자기의 주체임을 명심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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