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차량들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차량들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정부는 한국산 전기차의 수출길을 열어야 한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지침을 정함에 따라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화돼 현대자동차와 기아 차종이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 조치로 미국에서 생산된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 제네시스 GV70 전기차는 보조금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미국 정부가 지난 17일(현지시간) 발표한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16개(하위 모델 포함 22개) 가운데 현지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는 현대차와 기아는 포함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채굴·가공해야 한다는 요건을 맞추지 못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빠졌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IRA 도입 초기부터 예상된 일이기에 담담해 보인다.

안 좋은 소식 속에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본과 독일 업체들도 IRA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돼 보조금 지급 대상 차종 숫자도 줄었다. 보조금을 받는 미국 업체를 제외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IRA 세부 지침상 리스 등 상업용으로 판매되는 전기차는 북미 현지 조립 등의 요건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으로서는 현지 시장에서 리스 비중을 높이는 등 어느 정도의 대응이 가능한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시장에서 리스 판매 비중을 30% 이상 수준까지 확대해 보조금 수급 요건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다.

미국 시장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전기차 시장의 격전지로 꼽힌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고가인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중국(1위 시장)보다 높은 미국의 시장이 더 매력적이다.

다만 IRA 여파로 미국 전기차 시장 내 현대차·기아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는 작년 상반기까지 판매 2위를 지켜왔지만, 하반기 들어 IRA 여파에 따른 판매감소로 3위로 밀려났다. 올해 1분기에는 3위 자리까지 내줘 4위를 기록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COX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현대차·기아가 5.5%로 4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IRA 시행 전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13%까지 치솟았지만 올 1분기 5.5%까지 축소되고, 테슬라에 이어 2위를 지키던 현대차·기아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폭스바겐에 밀려 4위까지 내려갔다.

점유율 싸움에서 이 같은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는 미국 업체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업체들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더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신공장 완공 시점을 2025년에서 2024년 3분기로 앞당겨 건설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IRA가 요구하는 배터리 핵심 광물의 비율이 통과된 배터리를 사용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제네시스 GV70 전기차는 탑재된 SK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이 미국이나 FTA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비율이 40%를 넘지 못해 올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해당 비율은 매년 높아질 예정이며 오는 2027년 핵심 광물은 80% 이상, 2029년부터 배터리 부품은 100%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중국 공급망에 벗어나 광물 확보 지역을 넓혀야 하는 숙제다.

IRA 도입으로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 한국산 전기차 수출길이 ‘원천봉쇄’됐다. 뼈아픈 일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이 대응에 나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한국산 전기차의 수출길을 열어야 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정부와 기업이 노력해 현 상황까지 만든 것이라며 미국이 원천봉쇄를 했기에 당분간은 달리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국가 입장에서는 수출이 필요하다. 특히나 미국 시장은 유럽연합(EU) 시장보다 커 수출 규모도 다르다.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기를 쓰고 IRA를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재 미국은 강경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협상을 통해 수출길까지 열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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