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학폭 엄벌주의 대책 강화
소송 시 처리 지연 문제 여전
“대책 실효성에 의문 제기돼”
“사법처리로 갈등만 더 키워”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공: 교육부) ⓒ천지일보 2023.04.13.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공: 교육부) ⓒ천지일보 2023.04.13.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학교폭력(학폭) 가해 처분 기록을 대입 수시와 정시에 모두 반영하는 등 정부가 학폭 가해 학생에 대한 ‘엄벌주의’ 대책을 강화한 것과 관련해 실효성이 떨어지고 ‘학교의 사법화’가 지금보다 더 심해져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받게 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13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19차 학교폭력 대책위원회를 열고 ‘학폭 근절 종합대책’을 심의·의결해 발표했다.

정부는 학폭 가해학생에 대한 처분 결과를 수시는 물론 정시모집 전형에 모두 반영하기로 하고 대입 수능, 논술, 실기·실적 위주 전형에도 학폭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조치를 필수적으로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2026학년도 대입전형 기본사항’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중대한 학폭 가해학생에게 내려지는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조치의 학생부 보존 기간을 졸업 후 최대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실효성 면에서 우려가 된다며 근본적인 학교폭력 대책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들은 학생 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갈등 상황이 학폭으로 신고되는 일들이 더 많아지고 사법적으로 처리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교육적 측면의 해결은 점차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질적 대응책 있는지 의문”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 가·피해학생들을 만나 상담을 진행하는 이재영 한국회복적정의협회 대표는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당연히 엄벌을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가해 학생 측에서 집행정지 가처분을 걸고 버티면 교육청에서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응책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대표는 “변호사를 고용한 가해학생 측의 방어에 과연 일선 교사와 장학사들이 버텨낼 수 있을지,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그 논란과 갈등 속에서 교권이나 학교의 권위가 과연 세워질 것인지 의문”이라며 “(이번 대책은) 엄벌정책이 골자로 여전히 실효성 면에서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이번 대책이 적용되더라도 학폭 가해학생 측에서 집행정지와 동시에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제기하면 해당 재판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학폭위에서 내린 조치 이행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도 학폭위에서 8호(전학) 조치를 받았지만 정 변호사 측에서 집행정지와 행정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학폭위 조치가 이행되지 않았고, 정씨의 아들은 그 후로 7개월 가량 더 학교에 다녔다.

◆“여론 떠밀려 대책 내선 안 돼”

학교폭력 가·피해학생들을 만나 상담하는 정승훈 스마트에듀빌더 대표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학폭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전날 학폭 기록 보존기간을 졸업 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뿐 아니라 가·피해 학생 즉시 분리 기간을 3일에서 7일 이내로 연장하며, 피해 학생 전문 지원기관을 303곳에서 내년 400곳으로 확대하겠다는 대책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모두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대책들이 학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여론이나 국민감정에 의해서 ‘숫자놀음’하듯이 대책을 만들어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숫자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대책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지금 학폭이 크게 이슈되고 국민정서가 가해학생에 대한 엄벌주의만 말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국민의) 관심이 떨어지면 또 잊히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잘못된 정책으로 계속 힘들게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지금도 학폭 문제를 놓고 학부모들의 치열한 법적다툼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번에 엄벌주의가 강화된 대책이 나오면서 앞으로 갈등은 더 심해질 것”이라며 “대화로 풀 수 있는 갈등까지 학폭으로 신고되고 사법적 개입이 이뤄지면서 학교가 아니라 재판장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학생 학부모 소송도 늘 것”

학생부에 기재되는 학폭 가해 기록이 고등학생뿐 아니라 초등학생과 중학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엄중처벌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대표는 “문제는 대입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특권층 집안의 학폭 가해 중학생이 특목고에 진학하려고 할 경우 그 부모는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학폭 기재를 막으려고 할 것”이라며 “결국 소송을 걸고 시간을 끄는 문제가 초·중학교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정부가 피해학생 중심의 편향적인 대책을 내 부작용이 있을 것이란 지적도 내놨다. 억울한 가해자가 나왔을 때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은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정 대표는 “계속 피해만 당해왔던 한 학생이 한 번 실수를 저질러 학폭 가해학생으로 신고된 적 있었다”면서 “학생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학폭위는 그 모습을 보고 ‘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학생이 어떤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선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학폭 문제 대안에 대해 정 대표는 상담교사를 학교에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것과 위기 학생 학부모에 실직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아이들에게 학폭 신고하는 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생활 속에서 갈등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풀 수 있는지, 분노의 감정이 들었을 때 그것을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를 교육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상담교사를 학교에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교육에 대해선 “학폭으로 신고되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갈등 상황을 만들었던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있었다”면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 아이가 잘못한 부분이 있었지만 학부모는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두둔하기만 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도 아이지만 학부모가 교육을 통해 올바른 교육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면 그 아이의 인생도 망치고 학폭도 막을 수 없다”며 “학폭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예방에 있다”고 강조했다.

(자료제공: 교육부)
(자료제공: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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