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초4이상·중학교·고등학교에 지난 2010년 도입된 교원평가제도는 동료 평가,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로 이뤄진다. 점수를 서로 후하게 줘 실효성이 떨어진 동료 평가는 지난해부터 폐지됐다.

현재 시행 중인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는 무기명으로 교사의 수업이나 생활지도에 대해 1점에서 5점으로 평가하는 객관식과 교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는 서술형 평가로 이뤄진다. 필자가 학교에 근무하던 당시에도 철없는 학생들이 쓴 서술형 교원 평가로 상처받는 교사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교원평가는 교원의 자기성찰 유도와 전문성 신장을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지만,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능력향상 연수’를 받는 문제성 교사는 한 명도 없어 평가의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다. 교사와 교원단체들이 ‘교원평가 폐지’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교육부만 “성과가 있다”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세종시의 한 고등학교의 교원평가 서술형에서 일부 학생이 여교사의 신체 부위를 비하하며 성희롱한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이르렀다.

서술형 평가에 99명의 학생이 덕담을 남겨도 1명의 악플이나 성희롱성 글을 남기면 교사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자신이 애정을 주며 최선을 다해 가르친 아이들이 생각 없이 남긴 악플이나 성희롱성 글로 인해 교사가 받는 스트레스와 충격은 상상조차 힘들 정도로 크다. 다음 학기에 아이들 얼굴 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트라우마가 돼 교단에 서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교사도 있다.

실명 평가라면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에 대한 정상적인 피드백을 제공해 교사의 역량과 전문성 신장을 유도할 수 있다. 익명의 교원평가는 성희롱 사건처럼 교사의 사기를 저하하고 인격을 모욕하는 사태까지 발생해 교사의 전문성 신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교육부는 필터링 시스템으로 성희롱성 글이나 모욕적인 글을 걸러낸다고 하지만 대부분 교사는 상처받는 게 두려워 서술형 평가 자체를 보지 않으니 평가 자체가 무용지물이다.

서술형 평가를 굳이 존속해야 한다면 실명제로 바꿔야 한다. 익명 서술형 평가를 존속시키겠다는 건 교육부가 요즘 학생들의 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손해다 싶으면 교육청, 112에 신고한다고 교사를 협박까지 하는 아이들이다. 실명제로 바꾸거나 성희롱이나 악플에는 본인을 특정해서 조사가 가능할 정도는 돼야 한다.

자신을 가르치는 교사를 마음껏 서술형 평가로 난도질할 수 있도록 놔두는 제도는 교권 회복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오죽하면 ‘합법적 악플달기 캠페인’이라고 할 정도다.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르자 연예 기사에 댓글을 아예 없앤 사실에서 교훈을 삼아야 한다. 교사가 감정노동자로 전락하도록 방치해서는 교육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교육부가 “교원평가가 전문성 신장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교사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재들이 교사가 돼 자괴감만 느끼고 사표를 내고 떠나도록 만드는 제도는 교육의 발전에 저해가 된다. 교대와 사대 지원율이 급감하고, 우수한 학생이 다른 과로 빠져나가는 이유로 교원평가 제도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교·사대 지원율이 떨어지면 우리나라 교육 수준의 하락도 불을 보듯 뻔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학생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행동들에 대해 교사는 항의가 두려워 생활기록부에 단 한 줄도 사실대로 쓰지 못한다. 학습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도 교원평가가 두려워 교사는 선의로 대해야 해 선량한 학생들의 수업권마저 침해받고 있다. 학생이 교사에게 익명으로 악플을 합법적으로 쓰게 만드는 교원평가제도는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폐지해야 한다. 교육의 정상화는 교원평가폐지부터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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