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홍합(紅蛤)은 익형아강 홍합목 홍합과에 속하는 조개로 일명 참담치, 동해부인(東海夫人), 해폐(海蜌), 희패(姬貝), 각채(殼菜), 주채(珠采), 열합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홍합보다 작은 것을 와룡자(瓦壟子)라고 한다. 홍합이라는 이름은 살의 색이 유난히 붉어서 붙여진 것이다.

홍합의 학명은 Mytilus unguiculatus(Valenciennes, 1858)이며, 영어로는 Korean mussel, hard-shelled mussel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주로 잡히는 홍합은 학명 Mytilus coruscus이나, 영어의 mussel은 이보다는 넓은 홍합과의 여러 조개를 이른다.

홍합의 형태는 장란형으로서 각정(殼頂) 쪽으로 가면서 좁아지고 뒤쪽으로 가면서 넓어지며 각정은 전단에 있고 뾰족하다.

조가비의 겉면은 흑색이나 때로는 갈색으로서 광택이 있는 두터운 각피로 덮여 있고, 성장선은 크고 확실하다. 조가비의 안쪽은 강한 진주광택이 있으나 연변부는 광택이 없는 흑갈색이고, 조가비는 두텁고 단단하다. 크기는 각장 80㎜, 각고 140㎜, 각폭 55㎜가 되는 대형 종이다.

세종32년(1450년) 정월 13일에 옥포(玉浦) 등지의 바닷물이 누렇고 붉게 흐리더니, 사람이 홍합을 캐 먹고 죽은 자가 7인이나 된다고 나온다(세종실록). 아마 당시에 남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출현해 해수 온도가 15~17℃일 때 나타나는 ‘마비성패독(Paralytic Shellfish Poisoning, PSP)’이었던 것 같다.

세종은 감사(監司)에게 유시하기를, “바닷물이 변색(變色)함은 예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가 죽었다는 것은 기왕에 들었으나, 사람이 먹고 죽었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이제 옥포의 바닷물이 누렇고 붉게 되어 홍합을 캐 먹은 자가 많이 죽었다 하니, 만일 물빛이 붉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면 어찌 홍합 때문에 죽게 된 것이겠는가. 그곳의 인민이 홍합만을 먹고 다른 물건은 먹지 않았는가. 다만 홍합을 먹은 자만 죽었는가. 홍합은 본시 독이 있는 물건이므로 홍합을 먹고 죽었다면 이치에 혹 그럴 수 있으나, 그러나 죽은 자가 많은 것은 또한 모두 홍합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니 나이 많은 노인에게 물어서 아뢰라”고 한다.

삶아 말린 것을 담채(淡菜)라고 하는데, 숙종 때 문신인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은 청나라 북경의 한 점포에서 ‘노주(老酒)를 얻어 마시고 안주로 말린 홍합을 씹으며, 조금씩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맛이 어떠냐고 묻고 “이것은 담채(건홍합)인데 동해의 조갯살은 사람을 보하게 한다”라고 설명했다는 내용이 그가 쓴 연행일기(燕行日記)에 나온다.

1778년 홍양호(洪良浩, 1724~1802)가 지은 북새기략(北塞記略)에 보면 매년 11, 12월에 청인(淸人)과 교시(交市)한다. 처음에 회령(會寧)에서 시장을 여는데, 이 장에도 홍합이 나와 청나라 상인들과 매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홍합(紅蛤)의 제철은 겨울에서 봄 사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바로 산란기가 오는데, 산란기의 홍합은 그 맛이 상당히 떨어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홍합이 가장 맛있는 시기는 10월부터 12월 사이이다. 제철의 홍합은 큼지막한 크기에 알도 크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며, 하얀 속살을 가진 것이 수컷이고, 붉은 속살을 가진 것이 암컷이다.

홍합은 달면서도 담백한 감칠맛과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커다랗고 까만 껍데기 안에 주황빛에 가까운 통통한 붉은 살이 있어 시각적으로도 매력이 있다. 영양 면에서도 단백질을 비롯해 칼슘과 철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건강에 좋은 식품이다.

우리는 일찍이 홍합을 가지고 다양한 요리를 해 먹었다.

세종11년(1429년) 7월 19일에 홍합젓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홍합으로 이미 젓갈을 담아 먹었던 것이다.

궁중 연회의 절차와 의식을 기록한 ‘진연의궤(進宴儀軌)’ 내외숙설소(內外熟設所)에 홍합찜, 홍합초, 홍합전이 등장한다.

영중추부사 김재로(金在魯), 영의정 이천보(李天輔), 우의정(右議政) 조재호(趙載浩)가 1756년에 편찬한 ‘천의소감(闡義昭鑑)’에는 홍합탕이 등장한다.

이렇듯 우리는 예부터 홍합을 주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해 먹는데, 우선 밥을 지을 때 멥쌀에 홍합살을 넣고 간장 쳐서 짓는 간단한 홍합밥(紅蛤飯)이 있고, 또 쌀 360g(2컵), 홍합 350g, 강된장찌개 적량, 물 400mL(2컵)의 재료를 준비한 후 고추장 3큰술, 식초 3큰술, 설탕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깨소금 1작은술로 초고추장을 만들고 쌀은 깨끗이 씻어 30분 정도 불리며, 홍합은 껍질째 깨끗하게 씻는다. 불린 쌀과 홍합을 넣고 홍합밥(紅蛤飯)을 짓기도 한다. 홍합밥에 강된장찌개와 초고추장을 곁들인다.

홍합밥(紅蛤飯)에 보리쌀을 섞어 밥을 짓기도 하며, 밥은 강된장찌개에 비비고, 홍합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홍합으로 담근 식해(食醢)인 홍합해(紅蛤醢), 마른 홍합을 불려 푹 삶아 내어 양념해서 만든 홍합초(紅蛤炒), 국물을 적게 잡고 홍합을 넣어 끓인 홍합탕(紅蛤湯), 홍합죽(紅蛤粥)을 담채죽(淡菜粥)이라고도 한다. 만드는 법은 마른 홍합 20개, 쌀 3분의 2컵 정도의 비례로 한다. 먼저 마른 홍합을 깨끗하게 손질하고 작게 썰어 간장·참기름, 마늘 다진 것으로 삼삼하게 간을 해 맑은 장국을 끓인다.

홍합의 맛이 우러났을 때쯤 쌀을 넣고 죽을 쑨다. 홍합은 기름기가 없고 맑은 맛이 있어 감칠맛이 크며 소화되기 쉬워 우리나라에서는 유아의 이유식으로서 널리 활용됐던 음식이다. 이유식으로 홍합죽을 끓일 때에는 홍합을 잘게 부수어 곤 다음 쌀을 넣고 무르게 끓여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홍합의 속살을 데쳐 낸 홍합백숙(紅蛤白熟)은 술안주로 좋다. 홍합을 쇠고기와 함께 간장에 양념해 조린 홍합장아찌 등이 있다.

그리고 홍합젓(紅蛤鮓)은 통영의 전통 젓갈로 가을, 겨울에 담아 1~2주일 익혀 낸 반찬이다.

홍합을 삶아 대꼬챙이에 꿰어 말리고 삶은 물로 홍합젓국을 만들어 간장대용으로도 이용하고 밥에 비벼 먹기도 했다.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최근에는 천연산 홍합을 구하기 힘들어 거의 만들고 있지 않다.

만드는 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홍합살 200g(1컵), 무 50g, 마늘 20g(5쪽), 대파 20g(1/2뿌리), 생강 20g, 고춧가루 4큰술, 소금 3 1/3큰술을 준비하고 홍합은 잔털을 제거하고 소금(1/3큰술)으로 문질러 깨끗이 손질한 후 물기를 뺀다. 다음에 무는 나박썰기(2×2×0.5㎝)하거나 0.5㎝ 두께로 채 썰어 고춧가루를 넣고 고루 색이 들게 버무리며, 대파는 3㎝ 길이로 곱게 채 썰고, 마늘, 생강도 곱게 채 썬 후, 준비된 홍합, 무, 대파, 마늘, 생강, 소금 3큰술을 버무린 후 작은 항아리에 담고 서늘한 곳에서 일주일 정도 숙성시킨다.

외국에서도 홍합은 다양하게 쓰인다.

일례로 이탈리아의 수프인 ‘주빠(zuppa)’에 홍합이 들어간다. 홍합으로 유명한 벨기에에서도 홍합을 푹 쪄낸 음식이 별미로 꼽히는데, 냄비에 홍합을 넣고 화이트 와인이나 레드 와인, 맥주, 크림, 토마토소스 등을 넣어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벨기에 전통 요리로 인기가 높은 홍합 요리는 대부분의 벨기에 레스토랑에서 만날 수 있다. 음식을 먹을 때 홍합을 하나 먹은 뒤 홍합의 껍데기를 집게처럼 사용해서 나머지 홍합의 살을 꺼내 먹는 것이 하나의 재미이다. 홍합과 함께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고, 맥주와 와인을 함께 즐긴다.

홍합에는 비타민 A와 B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반면 C는 부족한데, 시래기와 함께 먹으면 시래기의 비타민 C가 홍합의 부족한 영양소를 보완해주어 궁합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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