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산 열린문화공간 후소
백내과원장 매입 후 집 지어
오주석 선생 기념 공간으로
내·외부 리모델링해 개방해
“역사 이어갈 수 있어 좋아”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공방거리에 있는 열린문화공간 후소 전경. (제공: 수원특례시) ⓒ천지일보 2023.04.12.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공방거리에 있는 열린문화공간 후소 전경. (제공: 수원특례시) ⓒ천지일보 2023.04.12.

[천지일보 수원=류지민 기자] 옛 건축물의 기억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재생’의 의미를 살려 주요 건축자산을 활용, 새로운 만남의 역사 장으로 이어가고 있는 곳이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중 하나가 팔달산 아래 있는 ‘열린문화공간 후소’다.

본지는 현재 작은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열린문화공간 후소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19세기부터 이어진 건물 역사

수원화성의 관광 거점 화성행궁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수원시화성사업소와 수원문화재단 건물 사이로 열리는 행궁길은 공방 거리로 유명하다. 다양한 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 줄지어 들어서 있고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개성이 넘치는 카페와 음식점을 구경할 수 있다.

행궁길 약 200m 정도 걸어가다 보면 잘 꾸며진 정원을 갖춘 2층 가옥이 보인다. 입구에는 안쪽으로 뻗은 소나무와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잘 관리돼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공간은 1861년 이병진이 지었다. 이후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근택(1865~1919)이 의적에게 칼을 맞은 뒤 수원으로 이사해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22년부터 수원의 대지주였던 양성관(1867~1947)이 소유하며 ‘양성관 가옥’으로 불리기 시작한 남창동 99칸 집터였다. 팔달산 아래 5200여㎡ 넘는 대지를 차지했던 남창동 99칸 집 일부는 일제강점기 이후 수원지방검찰청, 남창동사무소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의 모습은 1970년대에 갖춰졌다. 양성관의 후손들이 소유하던 99칸 집을 매도해 38개 필지로 분리 매매가 이뤄졌다. 원래 가옥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10월에 한국민속촌으로 일부 옮겨져 지금도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백내과병원 원장이 필지 중 99-28번지(653㎡)를 매입해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현재 건물의 원형이다. 1977년 신축된 건물은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김석철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이후 40년간 건축주가 거주하며 백내과원장집으로 알려져 부촌 가옥의 상징으로 남았다.

열린문화공간 후소 2층에 마련된 오주석 선생의 서재. (제공: 수원특례시) ⓒ천지일보 2023.04.12.
열린문화공간 후소 2층에 마련된 오주석 선생의 서재. (제공: 수원특례시) ⓒ천지일보 2023.04.12.

◆오래된 공간 특징 살려 리모델링

99칸 집터에 들어선 구옥은 2017년 11월 수원시가 매입했다. 대지면적 1170㎡, 연면적 334㎡, 지상 2층 규모의 백내과원장집을 리모델링해 시민의 쉼터이자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건물의 문화적 재활용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끝에 수원시는 후소 오주석 선생을 기념하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내부 리모델링은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전시공간으로서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방 2개와 거실, 주방, 식당, 화장실을 갖춘 가정주택 구조의 1층은 문화 및 전시공간으로 만들어졌다. 건물 중앙 거실은 전시실로, 안쪽 방 2개는 터서 교육 및 회의실로, 입구 맞은편에 있던 주방은 사무실로 변신시켰다. 2개의 방과 복도, 계단, 화장실, 옥외공간이 있던 2층은 상설 전시공간 및 자료실로 바꿨다. 큰 방에 자료를 비치하고 작은방과 복도 및 발코니를 개축해 ‘오주석의 서재’를 꾸몄다. 현관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주택 구조를 그대로 보존해 집의 느낌을 살렸다.

외부는 개방감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줬다. 고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보였던 3~4m 담장은 허리께 높이로 낮췄다. 재료 또한 공방 거리에 어울리는 것으로 바꿨다. 입구에 별도로 존재했던 차고 건물도 철거한 뒤 작은 잔디밭을 만들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쉼터 분위기를 조성했다. 1층 거실 공간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나무 데크를 설치해 내부 공간을 확장하는 느낌을 연출했다. 정문은 제주도 전통주택에서 차용한 정낭을 세워 개방감과 열린 공간의 분위기를 풍겼다.

한 관람객이 열린문화공간 후소 1층 전시공간에 열리고 있는 테마전을 관람하고 있다. (제공: 수원특례시) ⓒ천지일보 2023.04.12.
한 관람객이 열린문화공간 후소 1층 전시공간에 열리고 있는 테마전을 관람하고 있다. (제공: 수원특례시) ⓒ천지일보 2023.04.12.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

열린문화공간 후소는 2018년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열린문화공간 후소는 오주석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공간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1층은 전시공간으로, 2층은 오주석의 서재로 꾸며져 행궁길 여행 중 가볍게 산책하듯 즐기는 친근한 문화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뒤 왼쪽으로 돌면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만큼 규모는 작지만 아늑한 공간에서 오롯이 작품과의 만남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은 테마전 ‘에필로그-어느 수원 연극인’이 전시되고 있다. 수원 출신의 연극인 고(故) 김성열(1954~2019)과 수원의 연극사를 재조명하는 내용이다. 대학 시절부터 수원에 살면서 연극 활동을 한 그는 1983년 극단 ‘성(城)’을 창단하고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 뮤지컬 ‘나혜석’ 등 수원의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한 연극을 만들었다. 또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을 맞은 1996년에는 제1회 수원성 국제연극제를 기획하는 등 수원지역 연극계의 발전을 이끌었다. 오는 8월 1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기증한 연극 홍보물, 극본, 사진, 영상 등의 기증자료들을 통해 수원 연극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 2층으로 들어서면 고서 특유의 책 향기가 가득해 서재에 왔음을 직감할 수 있다. 수원 출신 미술사학자 오주석의 서재를 재현한 공간이다. 다양한 저술과 전시기획으로 김홍도 등 옛 그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오주석이 남긴 저서와 연구자료 등이 이곳에 남아 있다.

창문에서 보이는 정원과 팔달산의 고즈넉한 풍경도 볼 수 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아담한 규모의 미술사 자료실에는 작은 테이블 2개가 놓여 건물보다 나이가 많은 고서를 구경할 수 있다. 또 계단 왼편에 있는 작은 방에서는 풍속화 등을 클래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영상물이 상시 상영된다.

열린문화공간 후소를 찾은 한 관람객은 “화성행궁과 팔달산을 방문했다가 알게 돼 가끔 쉬어가는 공간인데,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고 수원시의 노력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열린문화공간 후소의 입구. (제공: 수원특례시) ⓒ천지일보 2023.04.12.
열린문화공간 후소의 입구. (제공: 수원특례시) ⓒ천지일보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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