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개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주제
도덕경 78장에서 주제 따와
물이 아닌 힘에 관한 이야기
32개 국가 및 작가 79명 참가
박서보 예술상, 엄정순 작가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축제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라는 주제로 오는 7월 9일까지 열린다. 사진은 블레베즈웨 시와니의 '영혼강림' 설치 작품.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축제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라는 주제로 오는 7월 9일까지 열린다. 사진은 블레베즈웨 시와니의 '영혼강림' 설치 작품.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물이 아닌 힘에 관한 이야깁니다. 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물은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가졌기에 이를 원동력으로 삼아 지구를 저항, 공전, 연대와 돌봄의 장소로 상상한 것이지요.”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축제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라는 주제로 오는 7월 9일까지 열리는 가운데 이숙경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은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따왔다.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질성과 모순을 수용하는 물의 속성에 주목해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현실에 나름의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 예술의 가치를 탐구해보게끔 한다는 취지다.

아시아 최초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는 관람객들에게 시대적 이슈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1995년 ‘경계를 넘어’라는 첫 전시 이래 단시간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32개 국가의 작가 79명이 참가한 가운데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예술 공간 집,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진행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탐구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블레베즈웨 시와니의 '영혼강림' 설치 작품.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블레베즈웨 시와니의 '영혼강림' 설치 작품.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는 지난 7일 광주광역시 북구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관을 찾았다. 이번 비엔날레는 4개의 소주제를 다루고 있는 ‘마디’로 연결된다.

처음 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블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 작품을 볼 수 있다. 어둠 속 천장에서부터 덩굴처럼 늘어진 색색의 밧줄들이 곳곳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약간의 으슥한 분위기와 독특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작가는 밧줄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의 연결을 형상화해 남아공의 전통적인 치유방식을 소개한다.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관람객들이 빔프로젝터에 나오는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관람객들이 빔프로젝터에 나오는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길을 따라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빔프로젝터에서는 한 흑인 여성이 물을 어루만지는 등 자연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 방영되는데 이 모습은 자연에 깃든 영혼을 상상하는 장면이다.

작가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 치유자로 훈련을 받으며 얻은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작품을 통해 제시한다. 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는 새로운 장소를 특정적 설치 작업으로 선보이며 소외된 전통방식 또한 가치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광주 정신’ 담은 작품도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알리자 니센바움 작가의 작품. 작가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 놀이패 '신명'의 얼굴을 담았다.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알리자 니센바움 작가의 작품. 작가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 놀이패 '신명'의 얼굴을 담았다. ⓒ천지일보 2023.04.10.

이숙경 감독은 “소수자들이 만든 승리의 역사는 광주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은은한 광륜’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이번 전시관에서 세계 각지의 민주화 운동을 다룬 작품들과 인종 및 성차별뿐만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불거지기 시작한 새로운 계층 차별 및 의료 불평등에 대한 작품들을 아우르는 것처럼 광주 정신은 끝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특히 ‘은은한 광륜’ 전시관에서는 광주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작품들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알리자 니센바움은 5.18민주화운동 2년 후인 1982년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가족을 잃은 슬픔과 일상 회복을 도우려는 ‘언젠가 봄날에’라는 마당극에 집중한다. 작가는 참혹했던 현실을 담은 예술에 집중해 삶과 예술의 겹침에 대해 그림으로 풀어냈다.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한 관람객이 박서보 예술상을 받은 엄정순 작가의 작품 '코 없는 코끼리'를 만지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한 관람객이 박서보 예술상을 받은 엄정순 작가의 작품 '코 없는 코끼리'를 만지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이어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을 받은 엄정순 작가의 작품 ‘코 없는 코끼리’가 나온다. 이 작품은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다. 작가는 코가 사라진 코끼리의 형상을 통해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와 함께 배제됐던 존재들을 드러내며 관람객들에게 편견과 선입견을 마주할 기회를 제공한다. 관람객들은 눈과 손으로, 혹은 눈을 감고 작품을 관람하며 ‘결핍’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세계 각지 전통 재해석 ‘눈길’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에드가 칼렐은 과테말라 지역 선주민인 카티켈 부족의 일원으로서 경험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조들에게 돌 위에 과일과 채소를 올려놓고 바치는 설치 작품은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를 선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한 시민이 에드가 칼렐의 작품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에드가 칼렐은 과테말라 지역 선주민인 카티켈 부족의 일원으로서 경험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조들에게 돌 위에 과일과 채소를 올려놓고 바치는 설치 작품은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를 선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한 시민이 에드가 칼렐의 작품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천지일보 2023.04.10.

다음으로 등장하는 ‘조상의 목소리’는 원주민 문화 등과 같은 세계 각지의 전통을 재해석해 서구적 근대성에 도전하는 예술적 실천을 탈국가적으로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에드가 칼렐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는 돌 위에 각종 과일과 꽃이 올라와 있는데, 이는 작가가 조상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향을 피우고 과일과 채소를 바친 의례의 흔적이다. 모형이 아닌 실제 과일과 꽃들이 전시돼 있어 진한 과일향을 느낄 수 있으며 관람객들 또한 돌 위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고 큐레이터에게 ‘진짜 과일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에드가 칼렐은 과테말라 지역 선주민인 카티켈 부족의 일원으로서 경험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조들에게 돌 위에 과일과 채소를 올려놓고 바치는 설치 작품은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를 선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에드가 칼렐은 과테말라 지역 선주민인 카티켈 부족의 일원으로서 경험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조들에게 돌 위에 과일과 채소를 올려놓고 바치는 설치 작품은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를 선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비엔날레 관계자는 “작가가 과테말라 지역에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실제 경험한 내용을 전시한 것”이라며 “전시된 과일이나 꽃은 모형이 아니며 부패한 과일들만 교체한다”고 부연했다.

본 마디는 ‘예향’이라는 광주의 역사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에서 출발해 다른 문화권에서도 발견되는 조상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서구의 근대주의와 식민주의적 관점을 비평적으로 재평가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전통’이나 ‘토속’으로 경시된 문화적 교훈이 비서구 원주민 문화의 큰 장점이자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사회 통념에 대한 질문 던져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산티아고 야오아르카니 '위토토 세계관'을 관람하는 시민. 이 작품은 콜롬비아 남부와 페루에 거주하는 위토토 민족의 지식 체계를 보존하고자 하며 강제 이주, 식민화, 집단학살을 겪은 선주민의 삶에서 지속되고 있는 트라우마를 묘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산티아고 야오아르카니 '위토토 세계관'을 관람하는 시민. 이 작품은 콜롬비아 남부와 페루에 거주하는 위토토 민족의 지식 체계를 보존하고자 하며 강제 이주, 식민화, 집단학살을 겪은 선주민의 삶에서 지속되고 있는 트라우마를 묘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일시적 주권’은 후기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사상이 이주, 디아스포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전개된 방식에 주목한다.

본 마디는 20세기 이전부터 진행된 유럽 국가들의 침략과 식민지화뿐만 아니라 일본의 아시아 강점, 미국의 군사적 간섭 등 시대의 주권 침해를 다루는 작품들을 포함한다. 특히 식민주의가 일어난 오래된 역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 삶과 정치, 경제의 각 분야에서 다문화주의, 이주민 문제, 계층 차별 등의 이슈들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춘다.

본관에서는 고려인마을의 역사,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것, 강제 이주와 식민화, 집단학살을 겪은 선주민의 삶에서 지속되고 있는 트라우마 등을 묘사한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연대의 중요성 일깨워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멜라니 보나조 작가의 '터치미텔' 작품을 누워서 관람하는 시민. 작가는 영상, 퍼포먼스, 사진 등을 통해 황폐해지고 기술화되는 세계에서 고립과 서서히 무너져가는 내밀함을 작품의 주제로 가져오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천지일보 광주=서영현 기자] 멜라니 보나조 작가의 '터치미텔' 작품을 누워서 관람하는 시민. 작가는 영상, 퍼포먼스, 사진 등을 통해 황폐해지고 기술화되는 세계에서 고립과 서서히 무너져가는 내밀함을 작품의 주제로 가져오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0.

‘행성의 시간들’은 생태와 환경 정의에 대한 행성적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적 관점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본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연재해 등 환경오염으로 인한 인류 생존의 위기는 불평등한 생산과 소비 시스템, 경제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함과 동시에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동시대 미술, 나아가 문화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94일간의 현대미술 축제로 광주와 아시아, 세계가 연대하고 화합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이 잊혀진 과거와 역사를 현재로 소환하며 그동안 변방이었던 서사를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작업들을 펼쳐낼 광주비엔날레 전시회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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