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기소 인부 절차 출석
직후 지지세력 결집·호소
“미국, 지옥으로 가고 있다”

출석 법원 앞에선 찬반 시위
“감옥으로” vs “바이든 탄핵”
내년 대선 앞두고 혼란 심화

(뉴욕시티 로이터=연합뉴스) 성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나와 맨해튼 형사법원으로 향하는 길에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날 법원 기소인부절차에서 34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플로리다의 마러라고 자택으로 복귀한 뒤 오후에 연설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2023.04.05
성 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나와 맨해튼 형사법원으로 향하는 길에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1776년 미국 건국 이래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정에 출석해 그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를 부정했다. 출석 이후엔 즉각 플로리다 자택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미국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기소 인부(認否, 인정 여부) 절차에 출석해 중범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성 추문 입막음’을 비롯해 모두 34개에 달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혐의마다 최장 4년의 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34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최장 136년형이 내려질 수 있는 셈이다.

유죄를 선고받아도 2024년 대선에 출마할 순 있다. 대선에 재출마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층의 의회 난입을 배후 조종한 혐의 등 수많은 사법 리스크를 떠안은 상태다. 그러나 전 대통령이자 차기 대권 도전자라는 점에서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실형이 선고될지 불명확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재판부는 오는 12월 법원에서 검찰과 변호인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검찰과 트럼프 변호인단 모두 차후 공판 일정을 내년 1월이나 봄 이후로 잡아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고 있어 실제 재판은 내년 이후가 될 공산이 크다.

이에 법적 공방이 길어지면 내년 11월 대선 때까지 양당이 극한 대치를 벌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울러 공화당이 지방 검찰 권력을 이용해 바이든 대통령을 각종 형사 기소로 역공할지 모른다는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기소인부절차를 밟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기소인부절차를 밟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날 기소 인부 절차는 1시간가량 진행됐다. 그는 전날 도착해 묵었던 트럼프타워를 나서며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면서 자신감을 내비쳤으나, 법정에 들어설 땐 굳어진 얼굴이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부 절차를 마치자마자 자택으로 돌아가 지지자들과 행사를 열고 자신이 직면한 형사 기소를 비난하며 “저는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조차 없다”면서 “제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미국을 파괴하려는 자들로부터 두려움 없이 미국을 지키려 한 것뿐”이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다음 공판 기일은 현재로선 오는 12월 4일로 예정돼 있다.

◆“마녀사냥” “재판 이제 시작”

미 건국 이래 약 240년간 대통령이 45명 나왔지만 전·현직 대통령이 기소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를 민주주의와 양당 협치를 저해하는 정치보복으로 간주해 자제해왔다. 이러한 암묵적 합의가 이번에 처음으로 깨지게 된 것이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불륜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피했던 ‘첫 형사 기소 대통령’이란 오명을 쓰게 됐다.

이에 미국은 둘로 갈라지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번 기소를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트럼프를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 트럼프 지지자는 “마침내 정의가 실현됐다”며 다른 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차례로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실제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석한 법원 앞 컬렉트폰드 공원도 찬 트럼프와 반 트럼프 시위대들로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최근 극대화되고 있는 미국의 분열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한쪽에서는 각종 피켓을 들고 “마녀사냥을 멈춰야 한다” “바이든을 탄핵하라” “트럼프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외쳤고, 다른 한쪽에서는 “트럼프를 감옥에” “재판은 이제 막 시작됐다”며 강 대 강으로 맞섰다.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출석한 뉴욕시 형사법원 앞 공원에서 경찰복을 입고 트럼프 전 대통령 인형을 체포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한 시위자. (출처: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출석한 뉴욕시 형사법원 앞 공원에서 경찰복을 입고 트럼프 전 대통령 인형을 체포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 한 시위자. (출처: 연합뉴스)

이들은 경찰이 설치해놓은 바리케이드를 중간에 두고 고성과 심한 욕설을 주고받기도 했다. 한 트럼프 지지자는 흑돼지 사진을 붙여놓고 이번에 기소를 추진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지검 검사장이 바로 그림의 돼지라고 적힌 인종차별적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수사를 지휘해온 앨빈 브래그 지검장을 “인종주의자” “짐승”이라고 공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뉴욕인만큼 반 트럼프 시위대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경찰복을 입은 한 여성 시위자는 수갑을 찬 ‘트럼프 인형’과 모형 돈 가방을 들고 마치 트럼프 전 대통령을 붙잡은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또 다른 반 트럼프 시위자는 주황색 죄수복에 ‘트럼프 가면’을 쓰고 공원을 누볐다.

이날 뉴욕 경찰(NYPD)은 트럼프가 배후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 의회 난입 사건과 같은 대규모 행위부터 게릴라성 돌출 행위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이번 사태가 각국 언론과 유튜버를 비롯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삼엄한 통제 속에 시위대 규모가 우려만큼 대규모는 아니었기에 무력시위까지로는 번지지 않았다.

◆‘34개 혐의’ 트럼프 어떤 혐의 받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표적으로 지난 선거에서 혼외 관계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입막음 돈(hush money)을 주고 쉬쉬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본명 스테파니 클리퍼드)다.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출석한 뉴욕시 형사법원 앞 공원에서 앨빈 브래그 맨해튼지방검사장을 비난하는 피켓 시위 벌이는 지지자. (출처: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출석한 뉴욕시 형사법원 앞 공원에서 앨빈 브래그 맨해튼지방검사장을 비난하는 피켓 시위 벌이는 지지자. (출처: 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직전 당시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시켜 대니얼스에게 13만 달러(약 1억 7000만원) 상당의 입막음 돈을 건넸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지만, 검찰은 이 돈이 대니얼스의 성 추문 폭로를 막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도움이 됐다는 점에서 선거 자금 관련법을 위반한 행위로 본다. 13만 달러를 회삿돈으로 처리하면서 회사 장부에 ‘법률 자문료’라고 허위로 기재했다는 혐의다. 이 액수가 연방 선거 기부금 상한을 초과하는 금액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34가지에 달하는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도 지목된다. 공소장에 따르면 각 혐의는 같은 유형의 별건 범죄가 34건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과거 트럼프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던 여성들을 변호한 적 있는 블룸 변호사는 트위터를 통해 “적용된 34개 혐의는 각각 최고 4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면서 검찰 측에서 확실한 물증을 가지고 기소에 나섰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호사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모든 잠재적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며 검찰이 제기한 혐의에 맞아떨어지는 법률이 없는 만큼 결국 공소 기각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