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국제 제재로 모든 교류가 멈췄지만, 드물게 잘 운영되는 글로벌 합작 프로젝트가 있다. 북한의 유일한 국제 사립대학이자 이공계 인재 양성소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이 바로 그것이다.

평양과기대는 지난 2001년 남북 정부 협약하에 한·미 기독교계와 과학계 지원으로 2010년 평양 중심에 개교했다. 지금도 미국·유럽 등 서방 교수진 60여명이 학부생과 대학원생 640여명에게 선진 과학 지식과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 그런대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다가가려고 몸부림치는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재미 공학자 박찬모(87) 명예총장은 평양과기대 건립부터 운영을 이끌어온 주역이다. 그는 2017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이후 미국인 방북이 금지되기 전까지는 1년의 절반을 평양에 머물렀다. 지금도 원격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사전 녹화 강의나 스카이프 영상 통화로 한다. 나는 석사논문 심사와 박사과정 학생 지도를 맡고 있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학부생은 1년, 대학원생은 6개월 영어만 집중적으로 배운 후에도 전 과목을 외국 교수가 100% 영어로 강의한다는 점이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해외 유학에 지장 없을 정도로 영어를 잘한다. 최근 대면 수업할 교수가 필요해 김일성종합대와 김책공대 교수들을 파견받았는데, 대부분이 조선말로 강의했다. ‘영어 대면 수업을 못 받는다’고 학생들 불만이 크다”라고 말하고 있다.

계속하여 그는 “‘미제(美帝)를 그렇게 미워하면서 왜 영어를 배우냐’고 물으면 ‘영어는 국제어이지 미국어가 아니다’ ‘우린 미국 시민은 미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에선 (비핵화와 연계된) 개혁·개방이란 말을 싫어하지만 ‘국제화’는 좋아한다. 국제화의 핵심은 영어 아닌가. 유치원 아이들부터 영어 열풍이다. 가상현실을 만드는 과제를 줘봤더니 인터넷에서 찾은 미국 워싱턴 거리를 배경으로 흑인 소녀의 힙합 댄스를 만든 학생도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평양과기대를 유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평양과기대는 북한이 원해서 만든 것이다. 주체사상에서 고등과학기술을 예외로 하고 ‘과학기술은 서구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책이 김정일 때부터 이어지고 있다. 젊은이들 유학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들고 체제가 흔들릴 우려도 있으니, 아예 서양 교수진을 불러들인 것이다.

해외 유학비용 10분의 1이면 평양과기대를 운영할 수 있는 데다, 영어 잘하는 외국 국적 교수들은 현재 무보수로 강의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해외 교수진에게 “MIT와 UC버클리 등 미 명문 공대 커리큘럼을 가져와 가르쳐달라”고 요구할 정도다.

북한의 과학·공학 인재 특별 대우는 유명한 이야기다. ‘과학자는 사상 문제 외엔 건드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전 국민의 이공계 지식을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공대생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주요 공대 교수와 연구원 등 핵심 인재에겐 집과 차를 주고 생필품도 싸게 사도록 해준다. 그리고 한국의 과학고·영재고에 해당하는 제1고등중학교를 나와 명문대에 가면 남자는 10년, 여자는 6년씩 해야 하는 군 복무가 면제된다.

특히 평양과기대에 오면 영어 배우고, 국제학술대회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만나고, 영국·스웨덴·스위스·브라질·중국 등에 유학 가고, 외국 합작기업에 취직할 수도 있어 매우 선망한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 길을 열어주려고 난리다. 자식을 향한 마음, 교육열은 어디나 비슷하다. 북한 아이들은 중국 대도시만 다녀와도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인다. 태영호 의원 가족이 영국에서 탈북할 때와 같은 생각이 왜 안 들겠나.

그러나 ‘과학 인재 대우는 본국이 좋으니 그래도 고국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평양과기대 출신 대부분이 북한 연구소와 대학에 정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 과기대 교수들은 교내에서 예배를 보고, 구글·유튜브 등 미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고, 해외 대학 전자도서관에서 학술 논문도 찾아보고 있다.

김정은이여! 북한의 다른 대학도 최소 10개만 이렇게 좀 해보소. 무보수로 가르쳐 주겠다는 교수들 한국 대학에 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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