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현배 

까마득히 먼 옛날에 가장 먼저 생긴 것은 하늘과 땅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미륵이 태어났다.

하늘과 땅은 처음에 찰싹 붙어 있었다. 그런데 미륵이 있는 힘을 다해 하늘을 밀어 올렸다. 하늘은 땅에서 떨어져 위로 솟아올랐고 가운데가 솥뚜껑처럼 도드라졌다.

미륵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하늘과 땅이 붙어 있을 때는 답답했는데 하늘과 땅을 떼어 놓으니 시원하구나. 그런데 하늘과 땅이 다시 붙어 버리면 어쩌지?”

미륵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았다.

“하늘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기둥을 세워야겠어.”

미륵은 거대한 구리 기둥을 네 개나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구리 기둥을 땅의 네 귀퉁이에 박아 하늘을 받쳐 두었다.

“이제 됐다. 기둥을 세웠으니 하늘이 내려오지 못하겠지?”

미륵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뒤부터 하늘에 해와 달이 번갈아 떠올랐다.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떠올랐는데, 하나가 아니라 두 개씩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뜨거운 해가 둘이나 이글이글 타오르니 낮에는 더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차가운 달이 둘이나 떠 있으니 밤에는 추워서 얼어 죽기 직전이었다.

미륵은 견디다 못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먼저 달 하나를 떼어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달이 잘게 부서졌다. 미륵은 달 조각들을 하늘을 향해 던졌는데 북두칠성과 남두칠성이 되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미륵은 해도 하나 떼어내 주먹으로 쳤다. 해는 조각조각 부서졌다. 미륵은 해 조각들도 하늘을 향해 던졌는데 작은 조각은 작은 별이 되고 큰 조각은 큰 별이 되었다. 뒷날 작은 별은 백성들이 나이에 따라 운수를 알아보는 별로, 큰 별은 임금과 신하들의 별로 세상에 알려졌다.

미륵은 일을 마친 뒤 자기 몸을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벌거숭이였다. 그는 문득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 옷을 만들어 입기로 했다.

‘옷을 만들려면 옷감이 있어야 해. 옷감은 어디서 구하지?’

미륵은 생각다 못해 옷감도 스스로 마련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산 저 산에 뻗어 있는 칡덩굴을 캐내 그 껍질을 벗겨 실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하늘 아래에 베틀을 놓고 구름 위에 앉아 옷감을 짜냈다.

그렇게 해서 미륵이 옷감으로 만든 옷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미륵이 땅에 발을 디딘 채 구름 위에 앉고, 선 채로 해와 달을 떼어낼 정도이니 그 키에 맞는 옷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미륵은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드느라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래서 몹시 배가 고팠다. 그때는 물도 없고 불도 없었다. 따라서 곡식은 익혀 먹지 못하고 날것으로 먹어야 했다

‘날것으로 먹으니까 맛도 없고 소화도 안 되네. 물과 불을 찾아서 음식을 끓여 먹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미륵은 풀숲에서 메뚜기 한 마리를 잡아 물어보았다.

“얘야, 물과 불이 어디서 나는지 아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메뚜기가 미륵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아저씨도 참,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는 밤에는 이슬, 낮에는 햇빛이나 받아먹고 사는걸요. 개구리가 저보다 오래 살았으니 개구리를 잡아다가 물어보세요.”

그래서 미륵은 메뚜기를 놓아 주고 개구리를 붙잡았다.

“개구리야, 너는 메뚜기보다 오래 살아 아는 것이 많다지? 물과 불이 어디서 나는지 가르쳐다오.”

개구리가 대답했다.

“저는 밤에는 이슬, 낮에는 햇빛이나 받아먹고 사는 짐승이에요. 그런 주제에 물과 불이 어디서 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생쥐가 저보다 오래 살았으니 생쥐를 잡아다가 물어보세요.”

그래서 미륵은 개구리를 놓아 주고 생쥐를 붙잡았다.

“생쥐야, 너는 개구리보다 오래 살아 아는 것이 많다지? 물과 불이 어디서 나는지 가르쳐 다오.”

생쥐가 콩알만 한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물과 불이 어디서 나는지 가르쳐 드리면 저한테 무엇을 주실 거죠?”

미륵이 대답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쌀독을 너한테 주마.”

“좋아요. 가르쳐 드리지요. 불을 구하려면 금정산에 들어가세요. 그곳에는 차돌과 쇠가 있는데, 이 둘을 부딪치면 불이 날 거예요.”

“오, 그래? 그럼 물은 어디 가면 구할 수 있느냐?”

“소하산에 가셔야지요. 거기에는 물이 퐁퐁 솟는 샘이 하나 있거든요.”

미륵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르쳐 줘서 고맙다. 약속대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쌀독은 네 것이다.”

이리하여 생쥐는 사람들의 집을 아무 때나 드나들며 쌀독에 담긴 쌀을 배불리 먹게 되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미륵도 생쥐가 물과 불이 어디서 나는지 가르쳐 준 덕에, 곡식에 물을 부어 끓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미륵은 온 세상을 둘러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만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어. 사람을 만들어 여기서 살게 해야겠다.’

미륵은 금쟁반과 은쟁반을 구하여 양손에 받쳐 들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하늘에서 벌레들이 떨어졌다. 금쟁반에는 금벌레가 다섯 마리, 은쟁반에는 은벌레가 다섯 마리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벌레들은 쑥쑥 자라더니 사람이 되었다. 금벌레는 남자가 되고, 은벌레는 여자가 된 것이다.

미륵은 남자와 여자들을 짝지어 주었다. 그리하여 다섯 쌍의 부부가 태어났고, 이들이 아이를 낳아 세상에 많은 사람이 생겨났다.

미륵은 세상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모두가 착하고 순수했다.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사이좋게 살았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을 속이는 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석가는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군침을 흘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로구나. 내가 이 세상을 차지해야겠다.’

석가는 세상으로 내려가 미륵에게 말했다.

“이 세상을 나한테 넘겨주시지. 네 시대는 이제 끝났다.”

“무슨 소리. 내가 이 세상을 얼마나 다스렸다고 그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썩 물러가.”

“물러가지 않겠다면 할 수 없군. 강제로라도 빼앗는 수밖에.”

석가는 금방이라도 덤벼들 기세였다.

일월성신(무신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일월성신(무신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미륵은 석가와 싸우고 싶지 않아 이런 제의를 했다.

“누가 이 세상을 다스릴지는 내기를 하여 결정하자. 지는 쪽이 깨끗이 물러가는 거다.”

“좋아. 내가 이길 것이 뻔하니 보따리부터 싸 두시지.”

그리하여 첫 번째 내기가 시작되었다. 병에 줄을 달아 동해 바다에 던져 줄이 먼저 끊어지는 쪽이 지는 것이었다.

미륵은 금병에 금줄을 달고, 석가는 은병에 은줄을 달았다. 그래서 나란히 동해 바다에 던졌는데 석가의 은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석가는 첫 번째 내기에서 졌는데도 두 번째 내기를 하자고 우겼다. 미륵은 입씨름하기 싫어 다시 한 번 내기에 응했다.

두 번째 내기는 더운 여름철에 성천강의 강물을 누가 먼저 얼게 하는지 겨루는 것이었다.

미륵과 석가는 성천강의 강물을 얼게 하려고 부채를 준비했다. 미륵은 동지 부채이고, 석가는 입춘 부채였다. 미륵이 먼저 동지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자, 성천강의 강물은 금세 얼어붙어 버렸다.

석가는 성천강의 강물을 녹인 뒤 입춘 부채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강물은 얼어붙지 않았다.

석가는 두 번째 내기에서 졌는데도 또 내기하자고 졸랐다. 세 번째 내기는 한 방에 누워 자면서 누가 무릎 위에 모란꽃을 피우는지 겨루는 것이었다.

미륵은 방 안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러나 석가는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미륵의 무릎 위에 모란꽃이 피어나자 그것을 꺾어 자기 무릎 위에 꽂아 두었다.

잠이 깬 미륵은 이 사실을 알고 이렇게 탄식했다.

“네가 이 세상을 차지하려고 못된 짓을 했구나. 아마 그 모란은 열흘도 못 되어 꽃이 시들어 버릴 거야. 땅에 심더라도 십 년을 넘기기 어려울 테고.”

미륵은 이 세상을 석가에게 넘겨주고 이렇게 말했다.

“엉큼하고 못된 석가야. 네가 이 세상을 다스리면 마을마다 솟대 서고, 집마다 기생 나고, 집마다 과부 나고, 집집마다 무당 나고, 집마다 역적 나고, 집마다 백정 난다. 네가 이 세상을 다스리면 중 3천 명에 거사 1천 명이 난다. 이런 세상이 말세가 아니고 무엇이냐?”

미륵이 예언한 대로 이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범죄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신화 이야기 해설>

이 신화는 민속학자 손진태가 1923년 함경도 지방에서 채록한 <창세가>다. ‘김쌍돌이’라는 무당이 부른 노래를 듣고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무당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부른 노래라고 해서 ‘무가(巫歌)’라고 부른다.

<창세가>에는 이 세상과 사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자세히 밝혀 놓았다. 여기에는 ‘미륵’이라는 신이 등장한다. 하늘과 땅에 이어 태어난 미륵은 서로 맞붙어 있는 하늘과 땅을 떼어 놓는다. 그리고 구리 기둥을 땅의 네 귀퉁이에 박아 하늘을 받쳐 둔다.

 

미륵은 북두칠성, 남두칠성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별들을 만든 뒤, 하늘 아래에 베틀을 놓고 구름 위에 앉아 짜낸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또한 미륵은 사람도 만드는데, 그 방법이 흥미롭다. 미륵은 금쟁반과 은쟁반을 양손에 받쳐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하늘에서 금쟁반에 금벌레 다섯 마리, 은쟁반에 은벌레 다섯 마리가 떨어진다. 그런데 그 벌레들이 쑥쑥 자라나 금벌레는 남자, 은벌레는 여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여섯 쌍의 부부가 태어나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다.

이 신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미륵이 물과 불이 어디서 나는지 메뚜기, 개구리, 생쥐 등에게 묻는 대목이다. 미륵은 하늘과 땅을 떼어 놓을 만큼 거대한 신이다. 그런데 눈에 보일까 말까 할 작은 동물들을 붙잡아 도움을 청하니 얼마나 우스운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조상들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물과 불이 어디서 나는가?’ 같은 세상의 중요한 일은 미륵 같은 거대한 신이 아닌 생쥐 같은 작은 동물이 더 잘 안다고 했으니 말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 신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미륵과 석가의 대결이다. 석가는 갑자기 세상으로 내려와 미륵에게 이 세상을 누가 다스릴 것인지 내기를 하자고 한다. 그래서 석가는 세 번째 내기에서 미륵을 속여 이 세상을 빼앗아 버린다. 그런데 그 결과로 이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니 정말 그럴듯하고 재미있다.

이런 이야기가 생겨난 것은 석가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미륵이 다스리는 좋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선조들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미륵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었다. 어려운 세상을 사는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그것이 큰 소망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미륵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미륵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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