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남북이산가족협회 회장
“3월 중 방북 재신청… 초청 단체 정보당국 확인”
“北에 이산가족 생사 확인 할 수 있다, 맡겨달라”
“생존 가족들 거의 고령… 각종 행사보다 만날 때”
“30년간 한중 교류-이산가족 활동… 역량 활용해야”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 2일 서울 구로구의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류재복 회장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7.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 2일 서울 구로구의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류재복 회장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7.

[천지일보=이솜 기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저를 활용해 달라 이 말입니다.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상관없습니다. 정치가 아닌 인도적 문제가 아닙니까. 이제는 정말, 정말로 만나야 할 때입니다.”

지난달 통일부는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이하 협회)의 북한 방문 승인 신청을 반려했다. 류재복 협회 회장 등 관계자 3명이 북측으로부터 평양에 방문해 달라는 초청장을 받고 한 신청이었다. 이에 통일부는 신청을 반려한 이유로 “초청장이 북한 당국이나 단체 등에 초청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에 실질적으로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정전 70년, 이산가족은 여전히 생이별로 마음 한구석에 큰 상처를 안고 산다. 악화된 남북 관계와 코로나19 영향으로 정부 차원은커녕 민간을 통한 이산가족 생사 확인이나 서신 교환 등도 사실상 끊겼다.

지난 2일 서울 구로구 소재 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류재복 회장은 “방북 재신청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지 1년을 맞은 그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이 고령인 만큼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1998년 김대중 정부 당시 남측 이산가족 100명이 의뢰한 북측 가족 전원을 생사 확인하고 여러 이산가족 교류 실적을 낸 사실을 소개하며 “정부에서 나를 이용해 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 2일 서울 구로구의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 사무실에 있는 과거 이산가족 생사확인 자료. 왼쪽부터 우리 측에서 보낸 가족 정보와 북에서 남으로 온 답변과 가족사진이다. ⓒ천지일보 2023.03.07.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 2일 서울 구로구의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 사무실에 있는 과거 이산가족 생사확인 자료. 왼쪽부터 우리 측에서 보낸 가족 정보와 북에서 남으로 온 답변과 가족사진이다. ⓒ천지일보 2023.03.07.

◆“방북 재신청 계획… 초청 단체, 정보당국이 확인”

류 회장은 최근 통일부가 협회의 방북 신청을 반려한 데 대해 초청장을 받은 경위부터 설명했다. 그는 “재중유자녀무역집단평통이사회가 보낸 이 초청장은 작년 11월 1일에 받았다. 당시에는 남북 관계가 지금보다 더 안 좋았기에 바로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았다”며 “2월 초 통일부에서 이산가족 교류 계획도 나오고 분위기가 조금 바뀌는 듯해서 방북 신청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청장 발급을 주선한 분은 1992년 한중 수교 전까지 우리나라에 있던 대만 대사다. 그는 대만에 귀국 후 30년간 북한과 교류한 ‘북한통’”이라며 “작년 회장으로 선출된 후 그분에게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래서 그분이 북측에 제의를 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초청장을 보낸 단체의 신뢰성 자체를 판단할 수 없어 이를 반려했다. 이와 관련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국회에서 “초청장을 보낸 단체에 대해 통일부나 관계 기관에서 파악이 잘 안 되는 단체”라고 밝혔다. 또 “류 회장이 만나겠다는 사람도 이산가족과 별로 상관이 없고 모든 것을 중개했다는 제3국 사람도 통일부로서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류 회장은 “나는 초청장을 받고 우리 정보기관에 사실 여부를 의뢰하고 확인을 받았기에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한 것이다. 이 초청이 사실이 아니라면 북측에서도 가만히 있었겠는가”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신변보장에 대한 통일부의 우려에 대해서도 “초청장에 ‘평양을 방문할 때 이들에 대한 안전보장과 체류비용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류 회장은 “통일부의 반려 통보는 ‘불허’는 아니라면서 서류에 미비한 점이 있다면 이를 개선해서 다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반려 사유의 핵심인 단체에 대해 확실하고 상세히 보완해 3월 중으로 다시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북측은 우리 측 정부가 아닌 민간을 통해 이산가족 사업 논의를 제안했을까. 통일부는 이미 작년 9월 북측에 이산가족 당국자 회담을 제의했다. 류 회장은 이에 대해 ‘신뢰’ 문제를 언급했다. 우리 정부는 5년 마다 새로 바뀌니 북측과 신뢰가 빨리 쌓이지 않지만 본인은 30년 이상 어떤 정부에 있더라도 항상 한중 교류와 이산가족 상봉을 목표에 두고 일해 왔기에 북측도 이를 인정하고 신뢰한다는 설명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 2일 서울 구로구의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류재복 회장이 2008년 북측으로부터 받은 수급 위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7.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 2일 서울 구로구의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류재복 회장이 2008년 북측으로부터 받은 수급 위임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7.

◆“나는 北 임명 특사… 내 역량 이용해달라”

류 회장은 “북측이 나를 신뢰한다”는 게 단순 주장이 아니라고 부연하며 2008년 북측으로부터 받은 위임장을 내보였다. 이 위임장은 당시 북측이 남측의 지원을 받겠다는 의향을 나타내면서 보낸 것이다.

류 회장에 따르면 2008년 6월 이명박 당시 정부가 북한에 옥수수 5만톤 지원을 제안했는데, 북한 당국은 이를 거절했다. 그런데 몇 달 후 류 회장에게 북측에서 연락이 왔다. 북측은 당시 길림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내고 있던 류 회장에게 거절했던 옥수수 5만톤을 받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당시 이상득 전 의원의 참모였던 고 정두언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했다고 한다. 이후 이상득 전 의원은 류 회장과 만나 “북측 사람들에게 의향서를 받아오라”고 했고 류 회장은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과 접촉해 이런 내용을 전했다.

이틀을 기다려 받은 의향서에는 남측으로부터 지원을 받겠으며 이를 류 회장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향서 뒷면에는 북한 인공기가 붙었다. 위임장을 받은 류 회장은 국정원에 연락을 했다. 그는 “내가 오늘 베이징에서 북한측으로부터 뭘 받았다. 이걸 내 손으로 가지고 인천공항을 나가기가 어려우니 당신들이 갖고 나가라”고 했고 다음 날 공항에서 만난 당시 국정원 언론 담당 직원들이 이를 보고서 “이건 보물이다. 북에서 남으로 온 최초의 패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의 거부로 옥수수 지원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류 회장은 “내가 남쪽 사람이지만 북한에서 나를 특사로 인정한 게 아니냐”며 이번에 북측에서 자신을 초청한 데에는 이 같은 신뢰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또 “정부가 방북을 승인하고 이산가족 명단을 주면 북한 측에 이들의 생사 확인을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당시 통일부 강인덕 장관의 요청으로 남측 이산가족 100명이 의뢰한 북측 가족 전원에 대한 생사 확인을 했으며 가수 현미와 소설가 이문열 등의 북측 가족들도 상봉시킨 바 있다.

류 회장은 “할 수 있으니까 믿고 맡겨달라. 우리 정부와 함께 협력해 진행을 하고 싶다”며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상관하지 않고) 나는 과거의 역량을 발휘해서 이산가족협회 회장 직무를 충실하게 한 번 해보고 싶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로 정부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어렵다면 민간을 통해서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산가족들은 이제 더 늦기 전에 일단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2일 서울 구로구의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류재복 회장이 1998년 당시 받았던 이산가족 명단을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7.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 2일 서울 구로구의 사단법인 남북이산가족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류재복 회장이 1998년 당시 받았던 이산가족 명단을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7.

◆한중 교류부터 이산가족 교류까지

류 회장과 이산가족과의 인연은 3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한중 교류 사업에서부터 시작한다.

한중 수교 2년 만인 1994년 8월 그는 중국의 동북 3성을 15일간 돌아본 후 심양에서 김포로 귀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 마지막 날 한 호텔 광장이 요란해 나가보니 서른명 정도 되는 조선족 노인들이 삼베 저고리를 입고 장구, 꽹과리, 북을 치며 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를 자세히 본 류 회장은 놀라고 말았다. 그들이 치던 장구, 꽹과리, 북이 모두 낡아 깨지고 찢어져 몇 번이고 덧대고, 꿰맨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귀국한 류 회장은 그 길로 서울 인사동에 들려 북, 장구, 꽹과리, 징 등을 각각 구입, 2개월 만인 그해 10월에 다시 노인들을 찾아 새 악기들을 선물했다. 류 회장은 “당시 그 사건이 내 운명을 바꿨다”며 “노인들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우선 먼저 한국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활발히 한중 교류 사업을 진행했고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북측도 그의 진정성을 인정하며 접촉해 왔다고 전했다.

이 같은 민간 외교 활동을 30년 이상 해 온 그는 “이러한 나 자신의 성격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낸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무슨 일이든 한 번 손을 대면 끝을 봐야 하는 사람”이라며 “도중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회장 선출 1주년을 맞은 류 회장. 이산가족들을 위해 계획된 행사 등도 있지만 당사자들이 모두 고령이라 거동도 쉽지 않고 자녀들은 크게 관심이 없어 이제 실효성 있는 활동은 ‘이산가족 상봉’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념을 떠나 우리는 한민족임을 잊지 맙시다. 옛 동서독도 통일 전에 교류를 이어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협의해 하루빨리 소통의 장을 열길 바랍니다.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줍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