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명동 사유의서재에서 진행된 전 주 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의 '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출판기념회에서 박 소장이 러-우크라 전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4.
3일 서울 명동 사유의서재에서 진행된 전 주 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의 '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출판기념회에서 박 소장이 러-우크라 전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4.

 

 

전 주 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

‘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출판기념회

우크라, 우크라계-러계 갈등 극심

러 침공 만든 전초전 ‘2014년 내전’

‘인종청소’ 논란 일으켰던 무력 진압

對우크라 외교, 미 대승 vs 러 참패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달로 1년을 넘겼다. 러-우크라 전쟁에 대해 국내 일반적인 시각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약국인 우크라가 희생 됐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 때문에 우크라는 지원을 받아야 하는 선한 나라이며 러시아는 없어져야 할 악한 나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국제 관계를 선악의 개념으로 단순화한 셈이다. 물론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배경을 알고 국익에 입각해 제3자로서의 한국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 주 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은 3일 ‘우크라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저서 출판 기념회를 열고 “전쟁이라는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현상을 단순하게만 바라보면 서방의 일방적 주장에 휘둘리게 된다”면서 “우리는 객관적으로 우크라 사태를 바라봐야 하며 그래야 제3자로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고 나아가 국익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서방 국가들의 정부와 언론이 하는 이야기가 과연 현재 우크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사실만을 말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고 화두를 던졌다.

박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현 러-우크라 전쟁은 2022년 갑자기 러시아의 영토 욕심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1990년 소련이 독일 통일에 동의했을 때 미국은 서방 군사동맹체인 나토의 동진 자제를 약속했으나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이 약속은 파기됐다.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끌어들여 병력과 전략 무기를 전진 배치했으며 이제 러시아와 나토 사이에는 우크라와 벨라루스만 남았다. 이번 전쟁은 사실상 러시아와 미국 간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됐지만 실제로는 이미 2014년 우크라 내전 발발 이래 미국이 우크라를 이용해 지속해서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의 수렁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날 박 소장은 2014년 우크라 내전이 발생했던 지도와 현재 전쟁이 진행되는 지역을 비교해서 보여줬다. 러-우크라 전쟁에서 격전지가 된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지역이 2014년 내전 당시와 겹쳤다. 이는 우크라 언어 분포도를 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된다. 내전이 발발했던 지역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80% 이상이었다.

러-우크라 전쟁이 2022년이 아닌 이미 2014년에 예고 됐다는 박병환 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 이 지도에서 2014년 내전이 발발했던 지역과 2022년 전쟁이 발발한 지역이 겹친다. (제공: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 ⓒ천지일보 2023.03.04.
러-우크라 전쟁이 2022년이 아닌 이미 2014년에 예고 됐다는 박병환 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 이 지도에서 2014년 내전이 발발했던 지역과 2022년 전쟁이 발발한 지역이 겹친다. (제공: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 ⓒ천지일보 2023.03.04.
러-우크라 전쟁이 2022년이 아닌 이미 2014년에 예고 됐다는 박병환 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 이 지도에서 오른쪽 청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러시아어를 주민 80%이상이 사용하는 지역이다. 현재  전쟁은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제공: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 ⓒ천지일보 2023.03.04.
러-우크라 전쟁이 2022년이 아닌 이미 2014년에 예고 됐다는 박병환 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 이 지도에서 오른쪽 청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러시아어를 주민 80%이상이 사용하는 지역이다. 현재 전쟁은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제공: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 ⓒ천지일보 2023.03.04.

이 때문에 1991년 우크라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역대 정부는 친서방, 친러 노선이 교차했는데, 우크라계가 다수인 서부와 러시아계가 다수인 동부는 지지하는 정파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러던 중 2014년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서부 지역 과격 민족주의 세력이 당시 친러 성향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합법 정부를 폭력으로 무너뜨리고 친서방 정권을 수립했다. 그 이전까지 우크라는 극단적인 친서방-친러 외교정책을 취하지 않았는데, 새 정부는 우크라 내 러시아어 사용 전면 금지 등 강경한 정책을 폈다. 동부 돈바스 지역의 주민들은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반기를 들었고, 우크라 당국이 무력 진압하며 내전이 발생했다.

박 소장은 이 과정에서 서방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우크라군이 소위 ‘반란 지역’에 대해 ‘인종청소’ 수준의 만행을 자행했고, 이에 지역 지방 정부들이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해 러시아가 반군을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내전 종식을 위한 민스크 협약이 체결됐다. 내용은 휴전 및 양측 간 완충지대 설치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자치권 허용을 위한 우크라 헌법 개정과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였다. 러시아는 직접개입을 하지 않고 이후 8년 동안 사태를 관망했다. 하지만 우크라군의 무력 진압이 계속됐다.

박 소장은 “민스크 협약의 당사자인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 대통령이 지난해 고백한 바와 같이 우크라와 서방은 민스크 협약을 준수할 생각이 없었고, 단지 러시아의 개입을 늦추고 우크라가 군비를 강화할 시간을 벌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동부 돈바스 지역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고, 러시아가 행동에 나선 것이라는 설명이다.

3일 서울 명동 사유의서재에서 진행된 전 주 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의 '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출판기념회에서 박 소장이 러-우크라 전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4.
3일 서울 명동 사유의서재에서 진행된 전 주 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의 '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출판기념회에서 박 소장이 러-우크라 전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4.

박 소장은 이번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 측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이 우크라에 외교로 대성공을 거뒀다면 러시아는 외교적으로 참패했다고 평가했다. 박 소장은 “러시아가 주변국들에 대해 소프트파워를 갖추지 못하고 지정학적인 관점에서만 문제에 접근하면 제2의, 제3의 우크라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의 모든 반러시아적 행동이 서방의 부추김과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말고 러시아를 과거 소련의 공화국들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게끔 하는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외교 전략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우크라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 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번 전쟁의 복잡한 배경을 고려하면 러시아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 “또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숨은 의도가 어떤 것인지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편을 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적인 지원을 넘어서 우크라 편을 드는 것도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 진출의 핵심 파트너”라며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미국‧중국과 달리 남북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소장은 소위 친러파라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서도 입장을 털어놓았다. 그는 “러시아에서 10여년 근무한 탓에 러시아 쪽에 경도된 것 아니냐 또는 친러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코 친러파가 아니다. 오로지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을 생각할 뿐이다.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복합적인 상황에 대해 선악의 관점에서 단순하고 편향되게 이해해서는 안 되고 냉철한 국익 계산에 입각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3일 서울 명동 사유의서재에서 진행된 전 주 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의 '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출판기념회에서 박 소장이 러-우크라 전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4.
3일 서울 명동 사유의서재에서 진행된 전 주 러시아 공사 박병환 유라시아연구소장의 '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출판기념회에서 박 소장이 러-우크라 전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3.04.

◆박병환 유라시아 전략연구소장은.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법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외교부에 입부(외시 19회)했다. 1987~1989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외교관 과정을 이수하고 2005~2007년 러시아 외교부 산하 외교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주 우즈베키스탄 공사, 주 이르쿠츠크 총영사, 주 러시아 공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4차례에 걸쳐 약 11년간 근무했다.

2016년 말 정년퇴직 후 상명대학교 글로벌지역학부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했다. 한러관계 등 4강과의 외교 이슈와 국제문제에 대해 언론에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저술로는 2009년 ‘시베리아 개발은 한민족 손으로’, 2020년 ‘한국 외교에는 왜 러시아가 없을까’, 2021년 ‘나침반이 잘못된 한국 외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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