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차엑스포 출품작 준비
2000년 7월 ‘낙죽장’ 지정
창작의 기쁨 시집에도 담아
장인이 만든 물건이 문화재
각 분야 장인과 새로움 창출
궁금함 끊긴 자리 글로 표현
시집 2권·17권 작품집 발간
전통문화 계승·후학양성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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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미애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김기찬 낙죽장이 경남 하동군 적량면 중서리 구재봉 자연휴양림 인근에 마련된 낙죽 공방(삼화실) 앞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가운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2.20

지역명인을 만나다 ┃국가무형문화재 김기찬 낙죽장

[천지일보=이미애 기자] “내 그림 솜씨 가난해서 자연에 의지했네.” 
국가무형문화재 김기찬 낙죽장의 작품에 새겨진 글이다. 짧지만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묻어난다.

김 낙죽장은 작품에 “나는 인간문화재입니다. 무형문화재라고도 합니다. 사람이 문화재가 아니고 만든 물건이 문화재이나 ‘손재주’로 이뤄지기에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라고 있는 그대로를 시로 노래하듯 표현했다. 작품의 주재료는 대나무다. 마른 죽순도 등장한다. 장인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작품마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다. 또 각 분야에서 능숙한 장인들과 협업한 작품에는 비장함까지 묻어난다.

본지는 최근 경남 하동군 적량면 중서리 구재봉 자연휴양림 인근에 마련된 낙죽 공방에서 “자나 깨나 낙죽 작품 생각만 한다”는 김기찬(70) 낙죽장을 만나 무궁무진 쏟아지는 창작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낙죽은 대나무의 표면을 인두로 지져 무늬를 그리는 장식 기법이다. 필통·차통·비녀·합죽선 붓대 등 다양한 공예품을 만드는 전통예술이다.

김 낙죽장은 “어려운 작업 환경을 극복하고 깊이를 더할수록 재밌다”며 창작의 기쁨을 시를 통해서도 표현하고 있다. 달궈진 인두 온도와 미묘한 운용으로 농담을 표현해내는 낙죽은 고도의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는 “늘 지금이 가장 좋다”며 “지리산 자락 삼화실(복숭아 꽃, 배 꽃, 자두 꽃)삼씨방(솜씨 꽃, 글씨 꽃, 맘씨 꽃)에서 장인으로서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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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미애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김기찬 낙죽장 작품(낙죽 반야심경). ⓒ천지일보 2023.02.20

◆마른 대나무에 생명 불어넣는 낙죽

낙죽은 온도를 맞춰 인두가 식기 전에 무늬나 글씨를 새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오랜 경험과 적당한 기교가 필요하다. 공방 내 집무실 앞에 걸린 액자 속 ‘마른 대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낙죽장은 오늘도 뜨거운 화로 앞에서 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소리를 듣습니다’라는 글만 봐도 그의 인내와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작품에 합당한 대나무를 직접 찾고, 낙을 놓을 때까지의 과정은 역시 수행에 가까울 정도다. 그만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김기찬 낙죽장은 “1983년 낙죽을 시작했다”며 그동안 “왜 낙죽을 했을까 라고 스치는 생각으로도 후회해본 적이 없기에 천직으로 여기고 있다”고 힘있게 말했다.

백발의 긴 머리카락을 상투로 말아 올린 모습에 날렵한 몸짓은 예술의 혼에 불타오르는 열정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다.

그는 욕심의 껍질을 벗고 장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세월의 내공으로 텅 빈 대나무 표면에 자신의 영혼이라도 투영시키듯 “작품마다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국가무형문화재’ 답게 체력 또한 강인하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팔굽혀 펴기를 십 수회 씩 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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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미애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김기찬 낙죽장 작품(낙죽 다관). ⓒ천지일보 2023.02.20

그는 일찌감치 한문과 서예·사군자 등 전통예술에 심취했었다. 주변인들의 눈에도 전문가의 기질이 보였다. 광양의 박용기(장도장)선생의 추천으로 1983년부터 전남 담양 이동연(1대 낙죽장)문하에서 공부했다. 이후 국양문 2대 낙죽장의 조교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다 스승의 소천 이후 자연스럽게 2000년 7월 3대 낙죽장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경기도 위례가 고향이지만 전남 순천 송광사와 인연이 깊다. 송광사 경내 금죽헌에서 29년간 작품활동을 했다. 그러나 2007년 12월 ‘텅 빈 충만’이란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던 중에 갑작스러운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다.

김 낙죽장은 “그 사건으로 인해 이 세상에 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이 몸까지도 내 것이 아닌 것을 크게 깨달았다”며 “그 이후 마음이 열려 250여편의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당시의 심정을 털어놨다.

또 “대신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궁금함이 사라지고 만사가 감사했다”며 “충만함의 환희가 작품과 글로 쏟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잃고 산 넘고 물 건너 보성의 서재필기념공원 계심헌으로 옮겨 새로 시작했다. ‘새 옷 입고 부르는 노래’란 부제로 변화된 마음으로 전라남도 보성 계심헌에서 13년 동안 13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동안 1편의 논문과 단행본 ‘낙죽장’(공동집필)을 출간했으며 2권의 시집과 17권의 작품집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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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미애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김기찬 낙죽장 작품. (사진은 삼화실에 전시된 낙죽 찻통) ⓒ천지일보 2023.02.20

◆하동에서 작품활동 이어 가다

김 낙죽장은 보성에서 뿌리를 내리려고 했지만 인연은 하동으로 옮겨졌다.

보성군에서 전수관을 짓기로 기획 설계했지만 어떤 이유로 보류됐고 하동야생차가 한국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는 하동군수가 최고의 차를 최고 솜씨의 찻통에 담아 선물하겠다는 생각으로 수소문하던 중에 낙죽장이 거론됐다.

하동군에서 계장과 과장이 계심헌을 방문했고 세계차엑스포가 열릴 것 등 대화 중에 낙죽장의 근황을 알게 된 하동 군수가 문화재청에 직접 요청해 국비·군비 포함 15억 5000여만원을 들여 지난해 11월 25일 낙죽장 공방을 개관하게 된 것이다.

하동에서는 올해 5월 4일부터 6월 3일까지 열리는 세계차엑스포를 앞두고 있다.

낙죽장 공방은 연건평 464.9㎡의 철근콘크리트 슬라브구조물 2동으로 공방·수장고·사무실·강의실·숙소 등의 시설을 갖췄다. 이곳에서는 앞으로 김 낙죽장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낙죽을 전승하고 작품활동을 통해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며 낙죽 인재도 육성한다.

김 낙죽장은 1994년부터 태국 왕비 탄신기념 아·태지역 대나무공예작품 초청전, 미국 10개 주 25개 도시 순회전, 독일 하노버박람회 참가, 프랑스 보르도시 전시회 등 각국의 작품전시와 함께 다양한 시연회를 통해 낙죽의 멋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또한 전통기술의 체계적인 전승을 위한 인재 육성과 전통문화의 보전·계승 활동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으며 전수자·전수 장학생 등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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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미애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김기찬 낙죽장이 경남 하동군 적량면 중서리 구재봉 자연휴양림 인근에 마련된 낙죽 공방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가운데 자신이 쓴 작품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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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미애 기자] 경남 하동군 적량면 중서리 구재봉 자연휴양림 인근에 마련된 국가무형문화재 김기찬 낙죽장(삼씨방) 공방. ⓒ천지일보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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