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혼거시설 전체 절반 차지

장애아동, 학대 피해자 되기도

아동-장애인복지법 이원화돼

연령별 지원 빠진 장애인법

후견인 지정 안 된 사례도 多

 

인권위, 복지부 제도개선 권고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 위해

지원체계 구축·법 보호 나서야”

종사자 대상 인권교육도 주문

“소수까지 포용하는 사회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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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동 재활시설인 경기도 용인 양지바른복지원에서 생활 중인 한 장애아동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정부가 아동복지법에 따라 장애를 비롯한 아동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않도록 통합지원을 추진한다고 밝혔으나, 장애아동 다수는 법에 따른 보호 대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을뿐더러 지원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장애아동은 지난 2021년 기준 총 7만 7961명으로 그중 1486명은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복지시설에 입소해 지내고 있다. 그러나 다른 1928명은 ‘아동복지법’이 아닌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성인들과 함께 생활 중이다.

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같은 해 장애 영유아 거주 시설을 제외한 시설별 장애아동 수는 ‘1명~3명’인 시설이 51%, ‘성인과 혼거하는 시설’이 47.9%로 집계됐다. 그리고 ‘개인 책상을 갖추지 않은 시설’은 47.9%, ‘개별학습 공간이 없는 시설’이 29.8%, ‘실외 놀이터·놀이기구가 없는 시설’이 52.1%이었다. 이에 장애인 거주 시설 내 아동의 경우 현행 사회복지체계에서 소외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 차별시정국 장애차별조사과 조사관은 본지에 “장애아동들은 이들을 꺼리는 아동시설에 들어가지 못해 장애인시설에서 성인과 섞여 생활하고 있다”며 “장애인시설에서는 한두명만 아동이고 나머지 수십명은 와상 장애나 지적 장애가 있는 성인인데, 조사 결과 이곳 아동들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대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확인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아동 그룹홈은 지원금을 통해 학습지를 한다거나 한 공간에서 피아노·미술 등을 배울 수 있다. 이처럼 아동 특색에 맞는 서비스를 받으면 좋은데 인력·예산 등의 문제로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전년도 보건복지부 장애인 거주 시설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아동들은 하교 후 주로 ‘게임, TV시청, 핸드폰·컴퓨터 사용(75.6%)’으로 일과를 보냈고 응답자의 52.7%가 ‘학습에 대한 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장애인 거주 시설의 경우 ‘장애아동에 대한 지원 서비스가 없는 시설’은 약 30%, ‘장애아동을 위한 지원 인력이 없는 시설’이 약 38%에 달했다.

그러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영국과 호주에서는 원 가정에서 살 수 없는 보호 대상 아동·청소년의 경우 서비스 전달 체계상 장애를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두 나라 모두 장애아동에 대한 정책과 서비스를 비장애 아동·청소년과 동일하게 지원하고, 장애에 대한 추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이면 아동, 장애인이면 장애인 서비스 영역에 맞춰 장애아동을 지원하는 방식이라면, 선진국의 경우 사람에 초점을 두고 아동·장애인 등 해당하는 모든 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 인권위 조사관은 “선진 사례를 보면 만일 홍길동이 장애인이고 실업자라고 한다면 먼저 장애인으로 등록해서 지원을 받는 등 구분된 서비스 영역에 맞춰 지원받는 게 아니라 홍길동이라는 사람에 맞춰 종합적으로 지원받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선진 사례를 들어 “배리어 프리(무장애)를 추진해 기존에 만들어놓은 턱을 없애는 것과 장애인 비장애인 동등하게 배려하는 문화와 교육 속에서 처음부터 턱을 만들지 않는 것과는 천지 차이”라고 강조했다.

◆“국가 차원서 서비스 개발·도입해야”

이에 인권위는 이달 복지부에 장애인 거주 시설 내 장애아동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실제 장애아동의 경우 성년 이후의 자립을 돕기 위한 적절한 교육을 시설 내에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동복지법과 달리 장애인복지법에는 연령별 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서다. 아동복지시설 입소 아동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자립지원 표준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으나, 장애인시설 입소 아동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시설 서비스를 우선 적용받고 있다.

이에 인권위는 장애아동의 탈시설 우선지원 정책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자립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시설 내 준비과정을 거쳐 지역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자원연계·사후관리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장애아동의 발달과정을 이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누락 없이 제공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된 발달지원 프로그램을 개발·도입해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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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열린 '프로젝트A-장애아동 일일 미술 멘토링 이벤트'에서 장애아동들이 바디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장애인시설과 원 가정(연고가 있는 경우) 및 학교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역사회 내 장애인복지관·자립지원센터·장애아동지원센터 등 복지시설과의 연계를 통해 장애아동의 발달과정에 따라 표준화 프로그램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 시설 이용이 자연스레 가능해지고 성인기 이후에도 지원을 지속 받을 수 있는 지지망이 구축되는 동시에, 원활한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을 도모할 수 있다고 인권위는 내다봤다.

장애아동의 욕구에 따른 자립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복지부 장애인 거주 시설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금 사는 시설에서 나가서 살고 싶다’라는 장애아동의 응답률이 성인에 비해 높았다. 시설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로는 ‘나가서 어떻게 살지 방법을 몰라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자신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장애아동에 후견인이 지정되지 않아 이로 인해 각종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는 문제도 거론된다. 후견인은 아동의 권리 주체성을 실현하는 일차적 의무이행자인 친권자를 대신하는 자로, 단순한 법률관계 이상으로 돌봄의 책무를 부담하고 아동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인권위 실태조사에서 장애인시설 내 무연고 장애아동은 31% 수준이었다. 그중 53%의 장애아동에 대해선 미성년후견 지정에 대한 시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고자가 있는 장애아동 중 친권자와 연락되지 않는 장애아동은 27.9%, 연고자가 있지만 친권 정지·상실로 미성년후견인이 지정된 인원은 19.4%이었다.

이들이 후견 미지정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은 ‘금융거래 시 어려움’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친권남용’ ‘전원·자립 준비 시 친권자 연락 두절’ ‘서비스계약 불가’ ‘개인정보 관련 업무 불가’ ‘수술 지연’ 등 일상생활의 제약으로 인해 생존과 보호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아직 이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적 없는 복지부에 전수조사를 벌여 장애인시설 장애아동의 후견인 지정 현황과 문제점·개선방안을 진단하고, 후견인이 없는 경우 법적 보호 강화를 위해 후견인 지정을 지원할 것을 권고했다.

또 인권위 실태조사 결과 장애아동 거주시설 종사자의 39.7%가 최근 1~2년 사이에 장애아동 인권과 관련된 전문적 교육을 받을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시설 종사자의 가치와 철학이 아동에 대한 서비스 지원에서 큰 영향을 미치므로, 종사자를 대상으로 장애아동의 기본 권리와 인권침해 예방, 권리구제 등 종합적인 교육과정을 의무적으로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누구나 어떤 그룹에선 대수가 되더라도 또 다른 그룹에선 소수가 되기도 한다”며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느라 소수가 고려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는 아니라는 말처럼 우리 사회가 처음부터 소수까지 포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과 법 제도에 대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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