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 이후 첫 번째 '옥공양경'
388매의 옥판에 사경체로 각자해
도각, 금니자 옛 옥기 제작방법 나타나

image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월인석보 옥책 유물 공개' 행사에서 공개된 '월인석보 옥책' 일부 ⓒ천지일보 2023.02.16
image
ⓒ천지일보 2023.02.16
image
ⓒ천지일보 2023.02.16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홍산문화박물관(관장 김희일)이 10년 전 공개한 월인석보(月印釋譜) 옥책(玉冊)이 최근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민족사적 유물로서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이후 첫 번째로 소헌왕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조성한 ‘옥공양경(玉供養經)’임이 밝혀졌다. 

이 유물은 1447년(세종 29년/ 명 정통(正統) 12년) 간행된 월인석보 구권 8권을 토대로 388매의 수암옥판을 연마하여 사경체로 각자한 유물이다.

이와 관련 ㈔동아시아문화유산보존관리협회는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월인석보 옥책 유물 공개' 행사를 열고 옥책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두 번째 주제발표로 나선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이재준 고문은 옥책의 각법 연구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image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월인석보 옥책 유물 공개'가 진행된 가운데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이재준 고문이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2.16

이 고문은 “개성 불일사에서 이 같은 불사를 단행한 것은 이 절에 소헌왕후의 위패가 봉안됐기 때문이며 제8권은 인생의 영화와 고난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불설관무량수경’과 안락국 ‘태자경’을 저본으로 한 것으로 이 경에 나오는 마가다국 빔비사라왕(頻婆娑羅王)의 비인 위제희(韋提希)는 바로 소헌왕후를 비유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세종은 아들 수양대군에게 하명해 귀한 옥을 다듬어 388편에 달하는 옥판에 새로 창제한 한글로 불경을 새기도록 했다”며 “이 옥책의 각자는 당대 최고의 각수들이 참가했음을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image
포문에 겹쳐져 있는 금니와 쇠녹소 ⓒ천지일보 2023.02.16
image
옥 각자 사경체 세부도 ⓒ천지일보 2023.02.16

지난 10여 년간 중국 옥기 전문가들과 만나고 박물관을 순례하며 옥기의 각법을 연구해 온 이 고문은 “월인석보 옥책의 도각(刀刻)은 옥을 장방형으로 얇게 연마하여 상면과 하단 끝에 모두 2개씩의 구멍과 3개의 정연한 원문을 음각했다”며 “두 개의 투공 안에는 고대 옥기 제작방법인 나선문(螺旋紋)이 확인되며 일부는 철이 녹슬어 확인되지 않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 “천각(淺刻)을 이룬 3개의 원문도 50배 확대경으로 관찰하면 나선문이 나타난다”며 “홍산 석기를 비롯해 고대 석기의 구멍은 대개 나선문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글은 훈민정음체로 모서리에 원점을 찍고 도각(刀刻)으로 긁어 연결했다. 이 같은 방법은 중국 옥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월인석보만의 독창적 방법으로 한자 또한 사방에 점을 찍어 각자했으면서도 사경체(寫經體)의 품위를 가장 잘 살렸다”고 덧붙였다.
 

image
옥책 월인석보 상단의 구멍. 나선문이 보인다. ⓒ천지일보 2023.02.16
image
옥책 월인석보의 용문 옥봉. 고대 옥기 제작의 독특한 방법을 보여준다. 고대 옥기 조각의 단면을 보여주는 포문(蒲紋) ⓒ천지일보 2023.02.16

한편 이날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월인석보 옥책에서 고대 도각법이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은 24개에 달하는 용문(龍紋) 옥봉(玉鋒)의 조각이다. 이 옥봉은 28㎝ x 2㎝, 두께 1.5㎝의 크기로 황옥(黃玉) 혹은 백옥을 소재로 삼았는데 용문 조각에서 고대 한팔도법의 각법이 가장 두드러진다. 직선에서 보이는 음각선과 세선(細線)은 고대 진품 옥기에 보이는 일반적인 양태다. 또한 용의 비늘은 포문(蒲紋)을 이루고 있으며 직각과 가로선을 그은 각법은 고대 옥기에 나타나는 양태와 동일하다. 

이에 대해 이 고문은 “만약 근대에 위작으로 만들었다면 이런 문양을 만들 수 없다. 가로세로 겹친 포문을 확대경으로 촬영해 보니 금니와 철의 녹소가 완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대 옥기 각법에 나타나는 특징은 음각선(陰刻線) 안의 세로줄 문양이다. 이 선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도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 옥기를 감정하는 필수적인 참고 요소”라면서 “월인석보 옥책의 문양과 글자의 세로선에는 음각선이 선명하다. 이는 금니를 칠한 부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발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image
옥책과 같은 형식으로 조각한 용문합(개인 소장) ⓒ천지일보 2023.02.16

이날 이 고문은 한 수장가가 가지고 있는 고려말 조선초기 추정의 용문합을 예로 들며 “이 유물은 월인석보 옥책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22장의 옥판을 얇게 만들어 접합해 원형의 합을 만들었으며 한팔도법 양태가 나타난다. 음각 문양 안에 금니로 장식한 것도 동일한 수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월인석보’가 천순(天順) 3년(1459년), 세조 5년에 간행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정통(正統) 12년, 세종 29년(1447년) 각기(刻記)가 있는 월인석보 옥책(玉冊)이 찾아져 학계를 놀라게 했다. 

한편 이날 발표회에서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세조가 쓴 ‘월인석보서(序)’에 원래 월인석보는 부왕인 세종이 지은 구권(舊卷, 녯 글월)이 있고, 자신이 편찬하는 것은 신편(新編, 새 ᄆᆡᆼᄀᆞ논 글)임을 분명하게 밝혔다”면서 “그러나 이 서문은 일제(日帝)의 어용학자 에다 도시오(江田俊雄)에 의해 세조가 부왕인 세종에게 양보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학계에 통용돼 오늘날까지 모든 교과서에 ‘월인석보는 세조 5년에 간행된 것’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월인석보 옥책으로 세조의 서문대로 세종 때에 이미 월인석보가 완성돼 세상에 나왔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image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월인석보 옥책 유물 공개' 행사에서 ‘월인석보’ 구권, 신편 그리고 옥책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맡은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 ⓒ천지일보 2023.02.16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