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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두 차례에 걸친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해 사망자가 최소 3만 9천여명에 달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간 분쟁을 했던 국가도 지원에 나서는 등 외교적 관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의 유엔총회 연설 자료사진(왼쪽)과 지난 7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라왈핀디의 누르칸 공군기지에서 강진 피해가 발생한 튀르키예를 지원하기 위해 구호물자가 공군기에 실리는 모습. (편집: 천지일보/ 출처: 로이터, 연합뉴스, 신화, 뉴시스)

 

동용승의 글로벌 경제안보

전 세계 장악하는 ‘파워’

피의 무력이 대표한 ‘하드파워’

문화로 사로잡은 ‘소프트파워’

‘샤프파워’ 정보‧경제를 무기로

위기 상황에서 결집한 지구촌

코로나 팬데믹‧초 강진에 대등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변화

전인류적인 ‘뉴파워’ 탄생해야 

[핵심요약]

◆대자연의 습격에 인류 하나로

튀르키예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지원에 나섰다. 이란과 시리아에 적대적인 서방국가들도 직간접적인 지원을 모색하는가 하면 튀르키예와 적대관계인 그리스도 적극적 구호 의사를 밝히고 있다.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인식에 기반해 그 피해는 인류가 같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공유한다.

◆인류 공동 대처 파워결집 필요

안보의 개념이 확장됐다. 인류 전체가 힘을 모아 대상해야 하는 상대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국가, 집단 간 대결을 위한 파워의 결집과 활용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대에 파워의 결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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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 

튀르키예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난 6일 시리아 접경지역인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지역에 진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전 세계 국가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구호와 지원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구촌에 발생한 불행에 국제분쟁을 일단 접고 70여개국이 지원 의사를 밝혔고 그 숫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수천명의 구조 전문인력이 파견됐고, 한국도 118명 규모의 전문인력을 긴급히 파견해서 활동 중이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지원에 나섰다. 이란과 시리아에 적대적인 서방국가들도 직간접적인 지원을 모색하는가 하면 튀르키예와 적대관계인 그리스도 적극적 구호 의사를 밝히고 있다. 

불행 앞에 모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에 숙연해진다.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인식에 기반해 그 피해는 인류가 같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공유한다. 2004년 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의 개념을 발표했다. 군사력과 같은 ‘하드파워(Hard Power)’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하드파워는 힘에 의해 상대편을 강제로 굴복시키는 것이라면 소프트파워는 매력으로 상대편을 무장해제 시킨다. 하드파워에 비해 다소 추상적일 듯하지만 나이 교수는 정신적 가치, 문화, 외교 정책 등을 구체적인 자원으로 분류했다. 지금 튀르키예 대지진에 대응하는 세계 각국의 헌신과 노력은 소프트파워의 발현 그 자체다. 자연의 힘은 하드파워나 소프트파워로 맞대응할 수 없지만, 피해를 복구하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소프트파워에서 출발해 함께할 수 있다.

◆군사-문화로 대비된 하드-소프트

소프트파워를 평가하는 기관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소프트파워의 국별 순위는 하드파워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하드파워로 대표되는 군사력 순위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의 순인 반면 소프트파워의 국별 순위는 프랑스, 영국, 독일, 스웨덴, 미국 등의 순이다. 하드파워 상위 그룹 국가들 가운데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은 소프트파워 순위에서는 중하위권에 머문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OECD 국가들 가운데 스웨덴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균형을 이룬다. 한국은 군사력 6위인 반면 소프트파워는 19위다. 상대적으로 소프트파워가 약한 편이지만 꾸준히 오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 미국은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분야에서 단연 1위였지만, 최근에는 소프트파워가 약해지는 추세다. 소프트파워의 대표주자는 문화력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필두로 세계 문화의 꽃을 피워온 유럽의 문화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7~80년대까지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미국의 문화력은 최근 들어 다소 주춤해지는 추세다. 미국의 절대적 패권이 약화되는 한 측면을 보는 듯하다. 

과거 세계 GDP의 1/3을 차지하던 중국은 군사력보다 문화력으로 주변국들을 동화시키며 세계 패권을 유지한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명나라 왕조시대의 정화 장군이다. 정화 장군은 15세기초 7차례의 대규모 남해 원정을 통해 인도양 연안 국가와 아프리카 대륙 동쪽 지역까지 진출하며 상업을 확장한 바 있다. 군사력을 통한 정벌이 아니라 무역을 앞세운 문화력의 전개였다. 15세기 후반 콜럼버스의 대서양 원정 규모에 비해 초거대 규모였다. 중국에 대한 유럽의 문화적 동경이 더욱 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K-컬쳐는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받는 질문은 “일본사람? 중국사람? 그럼 어디?”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곧바로 ‘강남스타일’, ‘BTS’가 뒤따르면서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문화의 힘은 강하다.

◆정보전쟁 우위 갖는 ‘샤프’

그러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칼로 무자르듯 명확하게 구분 짓기는 어렵다. 군사력을 기반한 힘을 동경하며 문화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도 하드파워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경제제재는 군사력과 경제력이 동시에 작동한다. 파워라는 관점에서 보면 하드 파워나 소프트파워 모두 당사자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경계의 모호성에서 변형된 ‘샤프파워(Sharp Power)’도 등장했다. SNS가 정치를 좌우하기 시작한 IT 시대에 맞춘 파워 형태인데 가짜뉴스 유포, 악의적 선전, 한한령 등이 대표적이다.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장면을 노출하는 것 역시 샤프파워의 한 형태다. 제재 당사국이 해당국에게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제재를 취하는 것도 일종의 샤프 파워라고 할 것이다. 튀르키예 정부를 필두로 각국 정부는 튀르키예 대지진에 대한 사프파워의 움직임을 사전 차단하고 있다. 자극적 영상과 사진의 유포 금지, 불필요한 추측성 발언 자제 등을 적극 요청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대처할 수 없는 비극적 사태에 대해 대부분 동조하고 있다. 이전의 참사에 비해 튀르키예 대지진과 관련한 자극적 전달물은 적다.

이번 튀르키예 대지진에 보인 각국의 모습은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파워라기보다 인류애에 근거한 포용과 협력의 파워다. 새로운 파워의 개념이 나올 법하지만, 군사력과 문화력 모두 인류애에 근거한다고 보면 각국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하나의 목표로 결집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미-중 대결이 격화되는 와중에 양국은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동원해 서로에 대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이합집산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미-중 대결에서 당사국들도 피해를 보지만, 전 세계가 피해를 보고 있다. 공급망의 불안정성, 시장의 분할 등 혼란스럽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역시 에너지와 식량을 비롯해 전 세계가 악영향을 받는다. 전쟁의 진상을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가짜뉴스는 판치고 있다. 공격자를 막기 위해 방어자는 수많은 자원을 쏟아붓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술의 발전, 경제의 활성화 등을 도모해 볼 수도 있지만, 점점 인류애는 사라지게 된다. 

미-중 대결로 패권의 향배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고, 이해관계에 따라 줄서기가 횡행한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와 같은 일극체제를 예상하기보단 다극체제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 미국, 중국, 유럽, 중동,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지역 단위의 결집과 영향력이 커진다. 세계는 더 복잡해질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종래의 파워 게임이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길이 튀르키예 대지진에서 보였다. 팬데믹 선언 이후 전 세계는 코로나라는 전혀 다른 상대와의 대결에 힘을 모았다. 안보의 개념이 확장됐다. 인류 전체가 힘을 모아 대상해야 하는 상대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국가, 집단 간 대결을 위한 파워의 결집과 활용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대에 파워의 결집이 필요하다. 바이러스, 환경, 우주, 지진, 태풍, 화산폭발 등 이념과 진영의 대결과는 차원이 다른 도전들이 현재와 미래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젠 안보를 위한 파워의 개념을 발전시켜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인류애에 기반한 ‘지속가능파워’로 전환해야 한다.

[용어설명]

◆하드파워

군사력, 경제력 따위를 앞세워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게 하거나, 저지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을 가리킨다.

◆소프트파워

물리적인 힘보다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중심으로 드러나는 힘을 의미한다. 정치·외교·경제·사회학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다. 정치학자들은 한 나라가 보유한 국력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로 나누기도 한다.

◆샤프파워

권위주의 정권이 다른 나라의 내정이나 국제기구의 운용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외교 전략이다. 소프트파워가 상대를 설득해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것인 반면 샤프파워는 막대한 음성자금이나 경제적 영향력, 유인, 매수, 강압 등 탈법적 수법까지 동원해 상대로 하여금 강제로 따르도록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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