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민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모습들. (사진제공:국립민속박물관)

속담·민화·동화 속 친근한 모습과 의학·생활·장식 등 다양한 쓰임새 현대문화 통해 한층 가까워진 이미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산군자(山君子)·산령(山靈)·산신령(山神靈)·산중영웅(山中英雄)으로 불러왔다. 또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로 인식하기도 했지만 주로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도 인식해 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각 동물마다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데 중국에서는 물고기가 재물을 상징하며 일본에서는 고양이가 복을 부르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어떤 동물을 가까이 해왔을까. 현재 우리나라에는 서식하고 있지 않아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호랑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 호랑이는 두려우면서도 늘 우러러보는 신적인 존재였다. 한국 민담과 전설, 신앙에서 호랑이는 으뜸 동물을 넘어 산신으로 신성화해 인간을 탓하고 가르치는 존재로 그려졌다.

또한 태몽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장차 태어날 아이의 신분, 인격, 운수, 명예 등을 예표하는 것으로 믿었다. 꿈속에서 호랑이에게 물리거나 또는 호랑이와 싸워 이기거나 죽이는 등 호랑이와 꿈속에서의 접촉은 명예, 권세, 승리를 상징해 길몽으로 여겨 왔다.

십이지신에도 호랑이는 빠지지 않으며, 종묘제례악에서 마지막을 알리는 호랑이 모양의 타악기 ‘어’와 조선왕릉을 지키는 석물인 석호(石虎)에서도 신성한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호랑이가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왔음은 중국 문헌을 통해 더욱 잘 알 수가 있다. 중국 문헌 ‘산해경(山海經)’과 ‘해외동경(海外東經)’에는 ‘군자국 사람들은 의복·모자 같은 것을 단정하게 걸치고, 허리에는 보검을 차고 있다. 그들은 아름다운 털을 가진 큰 호랑이를 두 마리 길러서 심부름을 시킨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삼재도희(三才都會) 13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호랑이는 신적 대상인 동시에 일상에서도 우리의 길동무였음을 알 수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등 익히 들어온 많은 한국 속담이나 ‘호랑이 형님’ ‘호랑이와 곶감’ ‘호랑이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등 전래동화에서도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호랑이형님’에서는 호랑이로부터 살기 위해 형님이라 부른 나무꾼의 거짓말을 믿고 매번 마을로 내려와 어머니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며 효도한 선한 호랑이의 모습과 떡을 팔러 다니는 어머니를 잡아먹고 변장해 오누이까지 잡아먹으려 한 ‘호랑이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전래동화에서는 호랑이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또, 호랑이는 털에서부터 배설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위가 유용하게 쓰였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호랑이의 각 부위가 약재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호랑이의 뼈는 사악한 기운과 병·독의 발작 등을 멈추게 하는 풍병의 치료제로 쓰였고, 눈은 마음이 산란한 환자에게 쓰였다. 이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도 인광을 발하는 호랑이 눈이 사귀(邪鬼)도 놀라 달아나게 해 마음을 진정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호랑이는 일상적인 생활용품과 장식 등 다양한 곳에도 쓰였다. 호랑이로 만든 생활용품 중에서도 특히 호랑이 털로 만든 붓은 예서를 쓰는 데 최상품이었으며, 호랑이 문진은 책상 또는 종이쪽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눌러준다.

이같이 호랑이 모양으로 장식한 벼루·필통·지통·인장은 남성의 권위와 벽사 등의 상징이었다 또한 신부의 가마 위에 덮던 호랑이 가죽은 재해를 방지한다는 상징이었고, 호랑이 발톱 모양으로 장식한 노리개는 여성의 호신을 상징했다. 돌이나 명절에 아이들이 쓰는 두건인 굴레 뒷면에도 호랑이 문양을 수놓아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뿐 아니라 용맹함의 상징인 호랑이는 무관 관복의 흉배를 장식했던 쌍호, 군대 시설물의 장식 병풍인 호렵도(虎獵圖) 등 무관들의 용맹함을 과시하기 위해 쓰였을 정도로 무인들과도 가까웠다. 나아가 오늘날 현대 속에서의 호랑이는 더욱 친근한 존재로 등장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로 세계에 알려진 호돌이는 무섭고 용맹스런 이전 이미지와 달리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호돌이는 1982년 응모 결과 한국인에게 전통적으로 친숙한 동물인 호랑이가 모델로 선정됐고, 이어 2295개에 달하는 호랑이 마스코트안 중에서 많은 경쟁작들을 제치고 뽑혔다.

이렇게 탄생된 호돌이는 농악대의 상모(돌림모자)를 쓰고 상모의 긴 끈으로 서울의 영문 첫자 S를 표현해 우리 민족 전통의 멋을 돋보여 세계인들에게 귀여움을 받았지만 디자인계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성찰 없이 자와 콤파스로 점철된 공공미술의 한계’라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팝아트 비평가 피터 하틀라웁이 예술적 측면과 마스코트가 주는 친근함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베스트 5에 호돌이가 3위로 뽑혔다.

1998년에는 서울시의 캐릭터로 호돌이와 여성형인 호순이의 아들 설정인 왕범이가 탄생됐다. 그러나 지난 4월 왕범이가 글로벌 도시인 서울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 다소 미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11년 만에 호랑이 형상과 비슷한 해치로 변경했다.

정의를 지키는 상상 속의 동물 ‘해태’의 원래 이름인 해치가 서울시의 상징이 되면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에 해치 조형물을 설치해 국내외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그 외에도 대한축구협회의 호랑이 엠블럼, 육군 군부대 ‘호국이’ 마크를 비롯해 기아 타이거즈(야구), 울산현대 호랑이(축구)의 팀 이름에도 쓰이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프로야구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일본야구의 한신 타이거스 등 해외에서도 쓰이는 등 호랑이는 세계적으로 용맹하면서도 친숙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한편, 지난해 대표적으로 소를 마케팅으로 한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큰 성공을 거뒀듯이 올해 각 업체마다 호랑이를 내세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호랑이가 경인년을 맞는 우리나라에 어떤 복을 가져다 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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