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행령 등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가 연일 갈등을 겪고 있다. 청와대 기류를 파악한 당내 친박계 의원들마저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와 당내 친박계가 합심해서 김무성·유승민 대표체제와 대결하는 형국이다. 물론 명분은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권 내 패권다툼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새누리당이 요청한 ‘당정청 협의’마저 거부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정청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대통령 비서실장을 교체하고 현역의원 3명을 정무특보로 임명했던 청와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공개적으로 당청 간 협의마저 거부하는 모습이다. 오죽했으면 이재오 의원이 지난 3일 “이 정부가 생각이 있는 정부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 지금은 자고나면 숫자가 바뀔 정도로 ‘메르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국민은 불안해하고 있으며 정부에 대한 신뢰도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문제로 당정청 협의를 하자는 새누리당 요구를 이토록 딱 잘라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국회법 수정안 때문이라면 과연 국민이 청와대를 어떻게 보겠는가. 국회법 수정안이 위헌인지 아닌지는 국민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메르스 사태에 대한 당청 협의마저 거부한 청와대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국회법 개정안은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결의로 성사된 것이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통과된 사안이다. 설사 국회법 개정안에 큰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당이 책임질 문제이지 유승민 원내대표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자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유 원내대표를 공격하고 사퇴까지 주장하는 것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만약 유 원내대표가 정말 사퇴를 해버린다면 그 자리에 친박계 의원을 앉히고 원내 패권을 쥘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지금은 여권 내 패권을 두고 다툴 일이 아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든지,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여권 내 민심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 것이다. 집권세력의 분열, 과거 노무현 정부 때를 생각해 보면 이는 최악의 결과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집권 3년 차의 이 골든타임을 여권 내 갈등으로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청와대는 한 발 물러나고 새누리당 내 친박계는 자중해야 한다. 지금은 어떤 경우에도 국회법 수정안을 명분으로 여권 내 파워게임을 할 때가 아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