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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결혼부터 ‘묻지마식 주선’… 피해봐도 대책 없어
“계약서 안 주고, 신상정보 제공 꺼린다면 의심해봐야”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어머니는 충격으로 심장 수술을 받았고 저도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경남에 사는 안학동(가명, 57, 남)씨는 3년째 국제결혼중개업자를 고소하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는 국제결혼 피해자다.

안씨의 사연은 이렇다. 몇 년 전 그가 들른 한 담뱃가게에선 ‘국제결혼’에 대한 얘기가 한창이었다. 50대 중반인 ‘농촌총각’ 안씨도 이제 가정을 꾸려 남편, 아버지로 살고 싶었다. 안씨는 용기를 내 “나도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시켜주이소”라며 연락처를 남겼다. 얼마 후 안씨는 국제결혼중개업자 B씨를 만났다. B씨는 “국회의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봉사 차원에서 농촌총각들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돕고 있다”며 “바라는 게 있다면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때 아내와 함께 표를 찍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B씨의 말을 듣고 1000만원짜리 결혼중개 계약서를 쓴 안씨. B씨가 계약서를 자신에게 주지 않는 게 이상했지만 국제결혼 준비가 차질 없이 진행돼 문제 삼지 않았다. 드디어 안씨는 2012년 12월 네팔 예비 신부를 만나러 출국했다. B씨는 안씨의 네팔 예비 신부가 28살이며 어렸을 때 이혼한 경험이 있지만 새 출발을 하고 싶어 한다고 소개했다. 네팔에서 예비 신부와 만난 뒤 한국으로 돌아온 안씨는 더 가까워지고 싶어 전화통화를 자주 했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에겐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이 있었던 것.

나이도 더 많았다. 말끝을 흐렸지만 남편과도 이혼한 것 같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국제결혼 사기’였다. 안씨는 분한 마음에 B씨를 고소했다. 하지만 안씨에겐 계약서조차 없었다. 안씨에 따르면 B씨는 업체명을 바꿔가며 다른 농촌총각들에게도 사기를 치고 있다.

◆줄지 않는 국제결혼 피해

국제결혼 사기로 나이 든 ‘총각’들이 울고 있다. 평생 모은 돈도,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꿈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이들의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한 국제결혼피해상담사는 8일 전화인터뷰에서 “서로에 대한 충분한 신상정보도 모른 채 속성으로 국제결혼을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주요 피해 유형은 배우자 가출·이혼, 사업자의 추가비용 요구, 상대방 정보 부실·허위, 배우자 입국지연·거부 등이 있다. 이를 연도별로 보면 2010년엔 배우자 가출·이혼이 124건으로 가장 많았다. 사업자의 해지환급거부도 113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국제결혼 피해는 국제결혼중개업체의 무분별한 중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정부가 국제결혼 중개업 등록기준 등을 강화하면서부터는 이러한 피해유형이 줄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업체 측의 계약서 미지급, 미흡한 신상정보 제공으로 인해 피해를 봐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최근엔 결혼이민 비자 발급 심사기준 강화로 외국인 배우자 입국 문제에 대한 상담이 많아졌다는 게 국제결혼피해상담자의 말이다. 법무부는 앞서 ‘묻지마식 주선’을 예방하고 결혼이민자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2014년 4월 결혼이민 비자 발급 심사기준에 한국어 의사소통 요건을 포함시켰다. 이를 두고 아직 찬반 논란이 많은 가운데 지난 3월엔 최모(64, 남)씨가 부산 동구의 모 결혼정보업체 사장 이모(76)씨 몸에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최씨는 이 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베트남 여성의 국내 입국이 불허되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베트남 여성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 이유는 한국어능력 시험에서 떨어져서다.

◆사전에 ‘꼼꼼한 확인’ 필수

국제결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먼저 중개업체가 등록된 업체인지, 중개행위가 가능한 나라인지, 계약서에 불리한 조건은 없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

국제결혼 중개업소의 경우 예전엔 ‘영업을 하겠다’고 신고만 하면 됐지만 현재는 정부로부터 조건(자본금 1억원, 보증보험)이 검증돼 등록이 허가된 업체만 중개행위가 가능하다. 이는 매달 중개업체가 소속돼 있는 시청이나 구청,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공지되기 때문에 전화 또는 직접 검색하면 알 수 있다. 또 국제결혼 중개행위가 불법인 나라(베트남, 필리핀, 중국, 캄보디아 등)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후엔 계약서가 공정위에서 제시한 표준 약관을 준수하고 있는지, 추가 비용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중개업체는 한곳이 아니라 2~3군데 선택해 비교해보는 게 좋다.

계약서는 반드시 업체와 나눠 가져야 한다. 피해를 봤을 때를 대비해서다. 아울러 상대방과 서로의 신상정보를 정확히 공유해야 한다. 범죄경력이 있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과거 한국에서 불법체류 경험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또 사전에 업체와 계약서를 쓰기 전 비자발급 조건을 갖춘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특약을 제시해도 된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오해가 없도록 결혼 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직접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해 교환하는 게 좋다. 이는 맞선이 주로 통역사를 두고 이뤄지지만 업체 측에서 고용한 사람으로 정보를 왜곡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국제결혼으로 피해를 봤을 땐 불쾌감에 아무런 준비 없이 업체를 신고하면 오히려 낭패 보기 쉽다. 이에 국제결혼 피해 상담전화(02-333-1311), 소비자 피해상담센터(1372),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을 통해 자문하고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먼저다. 국제결혼피해상담사는 “평생 함께할 배우자를 찾는 것인 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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