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가끔 택시를 타고 광화문주변을 지날 때마다 짜증이 난다. 시도 때도 없이 교통체증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승객이 조바심을 내면 택시기사는 한 술 더 뜬다. “저 놈의 겉만 번드르르한 광화문광장이 문제”라며. 4대문 안에서 택시를 탈 경우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을 아는 시민들이 택시를 기피하는 바람에 승객 또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완공한 지난 8월 이후 크게 두드러졌다.

서울시는 세종로를 ‘차량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 한다며 지난 해 5월 광화문광장 개조공사에 착공했다. 서울시는 세종로의 상징물이었던 수백년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중앙분리대를 제거했다. 시는 또한 기왕에 있던 왕복 16차도로를 10차로로 축소하고 도로 중앙 나머지 공간에 길이 557m, 너비 34m의 광장을 조성했다. 시의 이 같은 광장 개조 공사 계획에 많은 시민들은 변변한 시민광장 하나 없던 수도 서울에 새로운 광장이 들어설 것을 기대하며 환영했다. 마침내 광장이 완공되자 역시 많은 시민들은 새로운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환호했다. 특히 세종문화회관 앞에 마치 화룡점정(畵龍點睛)하듯 10월 9일 한글날 높이 9.5m의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서자 광장의 위엄은 더욱 화려해졌다.

하지만 광화문광장 개조공사는 조선시대 세종로의 옛 모습인 육조(六曹)거리 복원을 통한 역사문화 체험 공간으로의 복원이라는 취지에만 집착한 탓에 뜻하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우선 광화문광장은 유사 이래 광장이라는 공간이 지녀야 하는 ‘소통’의 기제로서의 기능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등장했다. 이는 광화문광장이 길 양쪽에 각 5차선의 도로로 분리돼 있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한다. 광화문광장은 가혹하게 평가한다면 5차선이나 되는 넓은 도로의 강 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섬’에 불과할 뿐이다. 원래 광화문거리 자체가 워낙 좁다보니 저 대평원 같은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광장 스타일의 초대형 광장을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마찬가지로 다소 규모는 작지만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이나 푸른 잔디로 뒤덮인 미국 워싱턴시의 ‘내셔널몰’ 같은 광장을 조성하는 것도 역시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지혜를 모았더라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괜찮은 광장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불만은 여전히 남는다. 일부 도시건축학자들은 현재의 광화문일대 차로를 모두 지하화 했더라면 광장의 면적이 넓어졌을 뿐 아니라 차도가 시민들의 광장접근을 가로막는 문제점도 해결됐을 거라고 주장한다. 필자도 이 아이디어가 절묘하다고 공감한다. 서울시에서도 당초 이 방안이 거론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방안은 사장됐다. 이 방안은 공기가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오세훈 시장으로서는 임기내 완공이라는 가시적 치적이 중요했을 것이다.

인류문명사에서 광장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로 꼽힌다. 그리스인들은 이곳에서 민회와 재판, 상업, 사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한마디로 그리스 시민들의 소통의 공간이었다.

현재의 광화문광장은 공간적으로도 소통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활용도 차원에서도 소통은 간 데 없다. 각종 전시성 이벤트만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 스노보드 점프대를 설치하고 스노보드 점프대회를 개회한 것은 ‘시민과의 소통무시, 일방적인 전시행정’의 표본이다. 전임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복원 브랜드로 대권에 오른 것을 벤치마킹하려는 것일까?

오 시장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광화문광장을 소통이 가능한 구조로 개조하는 공사를 다시 시작하고 시민은 그저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보여주기 행정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이제 국민은 ‘한 건’의 이미지신화로 정치적 승부를 노리는 얄팍한 정치인에게 두 번은 속지 않음을 오 시장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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