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2주전 프로골퍼 배경은의 골프볼업체 (주)볼빅과의 메인 스포츠 계약 체결식에 초대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는 체결식 수일 전 제주도 스카이 힐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 ADT 캡스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한 배경은의 뒷얘기가 최고의 화제였다.

배경은은 17번 홀에서 8번 아이언으로 샷한 것이 홀인원이 돼 홀인원상 부상으로 우승상금 6000만 원의 3배가 되는 시가 1억 8000만 원 정도하는 고급승용차인 BMW 750 Li 1대를 받았다. 이 대회에서 공동 4위를 한 배경은은 “전날 밤 방에서 8번 아이언으로 스윙연습을 하다 천정 유리를 깼는데 바로 그 8번 아이언으로 홀인원을 했다”고 후일담을 밝혔다. 또 “이날 10번 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내게는 8번째 홀이었으며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의 가격에도 8자가 들어갔다”며 우연치고는 신기한 경험을 들려줬다.

배경은의 홀인원 얘기를 듣고 홀인원과 행운, 그리고 실력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홀인원은 순전히 행운으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실력이 덧붙여져 나오는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홀인원은 골퍼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홀인원을 한 사람은 그 순간에 전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홀인원의 신비스럽고 황홀한 기회는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골프 경력 17년의 필자는 홀인원을 기록한 적은 없으나 동반자가 홀인원을 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경험을 갖고 있다. 93년 리베라CC(구 관악CC)에서 배구인 친선골프대회 도중 이인 전 남자배구 국가대표 감독이 홀인원을 하는 것을 보았다. 6번 아이언으로 친 볼이 그린에 떨어진 뒤 홀컵으로 빨려들어 갔다. 스포츠계에서 싱글골퍼로 이미 소문이 난 이인 감독은 홀인원을 기록한 이날 73타로 메달리스트를 차지했다. 사람 좋은 이인 감독은 라운딩이 끝난 뒤 동반자들에게 저녁턱을 톡톡히 냈다.

필자와 친한 주위 사람 중 홀인원을 한 이가 남녀 2명이 더 있다. 모두 80대 중반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 주말골퍼들이다. 하지만 골프 실력이 부족해도 순전히 운으로 홀인원을 한 경우도 있다. 이른 바 골프를 한 지 한 달 뒤 머리를 얹은 날 홀인원을 했다는 언론계 선배도 있었다. 그 선배는 홀인원을 한 이후 수년 동안 ‘보기 플레이어’를 면하지 못했지만 홀인원의 추억 때문에 현재도 골프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동안 프로골퍼와 관련한 홀인원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2004년 국내 유일의 미 LPGA대회인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에서 박지은이 프로암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한 뒤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미 PGA에서 공식적으로 3번 홀인원을 했으며 6살 때 첫 홀인원을 포함하면 총 18번의 홀인원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올해 미 LPGA 상금왕와 신인상을 휩쓴 신지애는 2006년과 2008년 국내 대회에서 두 번 홀인원을 세운 바 있다. 이에 반해 사상 최연소로 골프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 박세리는 공식대회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적이 없다.

유에스 홀인원 닷컴(US Hole in One.com)의 분석에 따르면 주말골퍼들이 홀인원을 할 확률은 1만 2500분의 1. 프로골퍼가 홀인원을 할 확률은 7500분의 1이라고 한다.

홀인원은 골프의 재미와 맛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축구의 승부차기, 농구의 버저비터, 테니스의 타이브레이크 등과는 다른 흥분과 감동을 준다. 누구나 하고 싶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정상을 위해 노력을 쏟는 프로골퍼나 주말 라운딩을 하는 아마골퍼나 홀인원 열병을 앓고 있다.

홀인원 작성은 행운만도 아니요, 실력만도 아닌 것 같다. 홀인원을 ‘행운의 산물’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일단 볼이 깃대를 향해 잘 나아갈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또 실력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박세리 같은 대선수도 홀인원을 한 번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행운과 실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홀인원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성공적인 사회생활이 실력만 갖고도 안 되고 운만 갖고도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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