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단 안에 있는 제단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옛 사직단, 임금이 친히 제사 봉행
조선총독부가 격 낮춰 공원 조성

문화재청, 중장기 복원 계획 발표
주민 마찰 “주민센터 이전 반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조선시대 국가 최고의 의례시설이었던 사직단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훼손된 지 110여년 만에 복원된다. 하지만 온전한 복원을 위해 주민센터와 치안센터 등의 시설 이전 문제가 겹쳐 중장기 복원 계획을 세운 문화재청과 주민들의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27일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왕실 사당인 종묘(宗廟)와 함께 국가 최고 의례시설이었던 사직단(社稷壇)의 상징성과 역사성 회복을 위해 사직단 복원정비계획을 마련하고 올해부터 복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종묘는 본래의 자리에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1995년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관리되고 있는 반면, 사직단은 일제강점기에 사직대제(社稷大祭) 폐지(1911년), 공원 조성(1922년) 등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게 훼손됐으며, 광복 이후에도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부지가 축소되고 각종 근대 시설물이 들어서는 등 본연의 모습을 잃어 복원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서울특별시와 종로구에서 각각 1985년과 2008년에 복원계획을 마련해 추진했으나 담장 설치 등 일부분에 그쳤다.

지난 2012년 1월 종로구로부터 사직단 관리 권한을 인계받은 문화재청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복원을 위해 복원정비 연구용역을 새롭게 추진했다.

문화재청은 이 과정에서 국회의 사직단 복원촉구 결의(2014년), 관계 전문가 자문, 공청회, 관계 기관 간담회 등 의견 수렴을 통해 복원정비 계획을 마련해왔다.

사직단 복원정비는 2015년도 제례공간인 전사청 권역 등 핵심영역(Ⅰ영역 제례 공간, 안향청·전사청 권역 등)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주요 전각(13동 복원, 3동 보수)과 지형 등을 복원해 나갈 계획이다.

▲ 사직단 복원정비 계획 영역별 배치도 (사진제공: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정한 복원정비 계획의 기준 시점은 20세기 초반이다. 숙종 때 연간 정비 이후 1911년 제례의 폐지 이전까지 건축·시설의 큰 변화는 미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역주민과의 상생 도모를 위해 제사 및 준비영역과 제례동선 등 핵심영역 중심으로 복원·정비되며, 인왕산과의 경관을 고려한 지형과 수림을 살린 복원, 변형·멸실된 건축물은 발굴조사와 고증을 토대로 원형으로 복원․보수, 문화재 보존관리와 관람객 편의와 문화재 활용 등을 고려한 영역별 정비계획 수립 추진, 장기(Ⅱ∼Ⅲ 영역) 복원 정비 사업은 단기·중기(Ⅰ영역) 복원정비사업 완료 후 협의체(지역주민, 관계기관, 관계전문가, 문화재청 등으로 구성) 운영을 통해 충분한 의견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하지만 복원 계획에 포함된 주민센터와 치안센터 등의 시설 이전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 해당기관과 마찰을 빚고 있다.

문화재청은 강제 철거가 불가하기 때문에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서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존치여부도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은 당장 주민 편의시설을 비롯해 아이들을 위한 공간마저 사라진다는 데 불편함과 우려 등을 호소하고 있다.

▲ 위에서 부터 사직단 주변 시설 현황(핵심영역 빨간선 구분)과 핵심영역(1영역) 복원정비 조감도. 문화재청 중장기 복원 계획대로라면 위에 사진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주민센터와 치안센터가 철거되야 아래 사진과 같이 복원될 수 있다. 이에 주민들은 역사 복원에는 찬성하나 편의시설 이전 문제나 존치 등의 결정이 나오지 않자 반발하고 있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한편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짓는 일인 ‘농경(農耕)’이 나라의 근본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백성을 위해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다. ‘사직단(社稷壇)’이라 명명한 이곳은 국가 최고의 의례시설이었다. 임금은 나라에 전염병이 돌거나 가뭄과 홍수가 나면 토지의 신은 ‘사단’에, 곡식의 신은 ‘직단’에 모시고 백성을 위한 제사를 지냈다. 제사는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그믐에 지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 1-28번지에 있는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는 한양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사직단도 함께 만들었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1902년 사직단과 사직단의 임무를 맡는 사직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제 때 조선총독부는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해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건물을 없애 공원으로 삼았다. 1940년 정식으로 공원이 된 사직공원이 옛 사직단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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