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해요’는 조회 수 350만 건이라는 네티즌의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킨,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 이기호의 첫 장편소설이다.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져 버린 세상 그 사이의 공허함을 비웃는 작가의 간결한 목소리가 정형화에 길들여진 의식의 구조를 파고든다.

작가는 “어쩌면 핵심은 뒤집힌 곳에, 뒤섞인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확고하게 믿고 있는 어떤 것들의 이면이 궁금하다면 끝과 시작, 위와 아래를 뒤집어 볼 것. 그것이 내 소설 쓰기의 기조가 되어버렸다”고 고백한다. 무비판적인 순응과 획일화된 제도를 살짝 비틀어 보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시봉과 ‘나’는 소위 ‘모자란’ 인간들이다. 어린 시절 복지원에 맡겨진 후 복지사들에게 마구잡이로 맞으면서 자란 두 사람은 짓지도 않은 죄를 고백해야 하는 ‘룰’에 길들여진다. 시봉과 ‘나’는 죄를 고백하기 위해(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더 심한 구타를 당한다) 일부러 죄를 지어야만 하는 기이한 삶의 방식을 강요받는다.

복지원을 벗어나서도 이들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사과를 해주고 돈을 받는 일에 ‘사용’된다. 시봉의 여동생 시연과 함께 사는 뿔테 안경 남자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사과밖에 없는 어수룩한 두 사람을 이용해 ‘사과대행업’을 벌이게 된다.

죄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과하는 것이 ‘당위’이자 삶의 ‘목적’이 된 시봉과 ‘나’는 정상인들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죄’를 만들고 곧 그들의 자아를 붕괴시켜버린다. 받아낼 사과가 없으면 그저 죄를 만들어 내면 그만이다. 가령 도시락 반찬을 한 개 더 집어 먹는다든가 하는 것도 ‘훌륭한’ 죄목이 되니 말이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복지사 두 명이 풀려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흘러간다. ‘나’는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시봉과 이별을 하게 됐고, 또 다른 비주류 인생으로 대표되는 시연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점차 성숙해져 간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말없이 시연을 업고 걸어가는 길은 쓸쓸하다 못해 소름마저 돋는다. 죄와 죄의식의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소용돌이치는 상념은 속죄와의 달콤한 밀회를 부정하는 우리네 모습과 꼭 닮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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